병원에 들어서자 마자
거의 보름만에 나를 본 간호사 아짐께서 불쑥
"잘 좀 드시지 그래요, 얼굴이 너무 안돼보이네요"라며 인사를 건넵니다.
항상 환자들로 복잡하고 분주한 병원에서
가끔씩은 의사들에게 짜증도 거침없이 해대는 나이많은 간호사 아짐이
며칠만에 나타난 나를 보며 건네는 말 한마디가
참으로 고맙게 와 닿습니다.
핏기없는 누런 얼굴에
세월이 지나며 그어댄 주름살이 요즘들어 더 깊게 패인 느낌이 드는 건
이래저래 시달림의 뒤끝이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간호사 아짐한테
내 안에 걱정으로 얼룩진 어두운 그림자까지 보여버린 건 아닌지 당혹해 하며
"며칠간 못 본 새에 겁나게 이뻐진 걸 보면 존일이라도 있는갑다"라는 우스갯소리로
받아 넘겼습니다.
일상에서 상대방에게 덕담을 건네거나 우스갯소리를 할 때는
마음의여유가없어선 여간해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나에게 그런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게참으로기분좋을 일입니다.
주치의에게이젠죽 대신 밥을 먹어보고 싶다하니
질기거나 딱딱한 것을주의해서조심히 먹어보라고 합니다.
아직 식욕을 되찾지 못한상황이라서
밥 한공기 먹는 일보다 죽 한 그릇삼키는게 훨씬편할 일이지만
음식을 이로 씹으며삶에 대한욕구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몸이 불편하거나마음에 병이 든 사람에게 있어선
의사가 처방해 주는 약도 좋지만
진통을견뎌내는 인고(忍苦)의 시간만큼은 꼭 필요하다는 걸
요즘들어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선지 오늘같은 날 해질녘이면
또 하루가 지나갔다는 생각에 기분이 참 좋기만 합니다.
죽 대신 하얀 쌀밥과
바삭하게 구워진알밴 조기와
구수한 바지락된장국이 차려진저녁상을미리 상상합니다.
드디어 오늘은
죽이 아닌 밥을 먹는 날입니다.
2009, 6, 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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