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 밥먹고 싶은 날.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9. 6. 6. 19:50

병원에 들어서자 마자

거의 보름만에 나를 본 간호사 아짐께서 불쑥

"잘 좀 드시지 그래요, 얼굴이 너무 안돼보이네요"라며 인사를 건넵니다.

항상 환자들로 복잡하고 분주한 병원에서

가끔씩은 의사들에게 짜증도 거침없이 해대는 나이많은 간호사 아짐이

며칠만에 나타난 나를 보며 건네는 말 한마디가

참으로 고맙게 와 닿습니다.

핏기없는 누런 얼굴에

세월이 지나며 그어댄 주름살이 요즘들어 더 깊게 패인 느낌이 드는 건

이래저래 시달림의 뒤끝이라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간호사 아짐한테

내 안에 걱정으로 얼룩진 어두운 그림자까지 보여버린 건 아닌지 당혹해 하며

"며칠간 못 본 새에 겁나게 이뻐진 걸 보면 존일이라도 있는갑다"라는 우스갯소리로

받아 넘겼습니다.

일상에서 상대방에게 덕담을 건네거나 우스갯소리를 할 때는

마음의여유가없어선 여간해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나에게 그런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게참으로기분좋을 일입니다.

주치의에게이젠죽 대신 밥을 먹어보고 싶다하니

질기거나 딱딱한 것을주의해서조심히 먹어보라고 합니다.

아직 식욕을 되찾지 못한상황이라서

밥 한공기 먹는 일보다 죽 한 그릇삼키는게 훨씬편할 일이지만

음식을 이로 씹으며삶에 대한욕구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몸이 불편하거나마음에 병이 든 사람에게 있어선

의사가 처방해 주는 약도 좋지만

진통을견뎌내는 인고(忍苦)의 시간만큼은 꼭 필요하다는 걸

요즘들어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선지 오늘같은 날 해질녘이면

또 하루가 지나갔다는 생각에 기분이 참 좋기만 합니다.

죽 대신 하얀 쌀밥과

바삭하게 구워진알밴 조기와

구수한 바지락된장국이 차려진저녁상을미리 상상합니다.

드디어 오늘은

죽이 아닌 밥을 먹는 날입니다.

2009, 6, 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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