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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31 205, 야간산행 8
  2. 2008.05.26 바람부는 들녘에서(18, 終結 이별 그리고.....)

205, 야간산행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8. 5. 31. 01:59

초저녁부터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던 게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넉넉하게 잠을 자고서 마음먹고 있었던 시간에 맞춰 깨어나니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어서 좋을 일입니다.

며칠동안 몸으로 떼우는 일로 무리했던 탓에
휴일 하루쯤은 편히 쉬고 싶은 생각도 없지는 않으나
마음먹은 일을 그냥 지나쳤다간
몇 날을 두고 집착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 한 채

답답해하는 짓을 되풀이하기 싫어서
미리 챙겨 뒀던 베낭을 메고서 집을 나섰습니다.

시내를 빠져나와 산길로 접어들어 산중의 절집 앞에 승용차를 세울 때까지
살아서 움직이는 것들의 그림자 조차 볼 수 없었던 길을 오는 동안
평소 같으면 그 호젓함까지도 즐겼겠지만
왠지 오늘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이 더 넓게 느껴지고
어스름한 달빛에 보이는 차창 밖 풍경들이 생경스럽기만 합니다.

바람도 잠들었는지 풍경소리 조차 끊긴 채 침묵 속에 갇혀버린 절집 안에
지금쯤 단잠에 취해있을 스님이 깨어날까봐
살금살금 담장을 돌아나와 산길로 접어드니
떼죽나무 가지 마다 무수히 피어난 하얀 꽃들이
어둠을 배경으로 고운 자태와 가느다란 향기로 산객을 반겨줍니다.

새벽 3시 30분,
지루하게 경사진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이르니
이마에선 땀방울이 맺히고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곳 약수터에서 물 한 바가지를 받아 벌컥벌컥 마시고 나서
곧 바로 어둠속에 묻힌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 걷기 시작합니다.

내 스스로 부끄러울 일이지만
나는 덩치만 컸지 겁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싸움 하나만 예로 들자면
상대방에게 먼저 주먹을 뻗어 기선제압을 하거나
어렸을 때의 싸움에선 쌍코피만 먼저 터뜨리면 승자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방을 표시나게 때려 보기는 커녕
오히려 얻어맞고 쌍코피가 터져서 볼쌍사나운 신세일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내게 있어서 싸움이란
상대방이 누구든 간에 싸움 뒤의 후환을 미리 생각하게되고
주먹을 내 뻗어서 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주먹을 막겠다는 몸짓에 불과할 뿐이라서
'공격이 곧 승리'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싸움의 속성으로 볼 때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인적없는어두운 산길을 홀로 걷는 것과 싸움은
서로 상관없는 별개의 일일 수도 있겠으나
익숙치 않은 일상의 일들을 접할 때마다두려움이앞서는건
담이 적다는이유말고는 달리 설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야간산행을 처음 해 보는 것도 아니면서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짙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선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비록 산 속이지만
등산로 보다 훤하게 트인 신작로를 가면서도
터벅터벅 걷는 내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귓전에 쟁쟁하고,
어떤 곳에 이를 때면 갑자기 공기가 차가워 져서몸이 움추려지거나,
길가에 누워있는 바위 위엔

누군가가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이럴 때마다 소름이 오싹 끼치거나 신경이 곤두서곤 합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동안 누구보다 더 부지런히 산엘 다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산과 내가 하나되지 못해서 오는 이질감 때문은 아닌지
그리고 내가 자연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는 한
이런 느낌은 계속되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산새들의 울음소리 조차 끊어진 산길을
긴장한 채 한참을 걷고 있을 때 절집 쪽에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어둠이 걷힐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아있어
차라리 온 길을 다시 되돌아 가고픈마음도 없지는 않지만
빛은 산 아래가 아닌위에서 부터 밝아 온다는 생각이 들자
정상쪽으로 향하는걸음걸이가 한층 더 빨라지는 것만 같습니다.

구불구불한 신작로를 걷는 동안
산 아랫쪽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이를 때면
새벽 안개를 비추는 시내의 불빛을 바라보며 거칠어진 숨을 고른 뒤
다시 산길을 재촉하곤 합니다.

신작로를 만들 때 생겼을 거라 여겨지는 바위절벽 부근에 이를 무렵
멀리 절집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와 함께
산새들도잠에서 깨어난 듯우짓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동쪽으로 부터 산과 하늘의 경계선이 차츰 뚜렸해집니다.

아! 드디어 동이 튼다는 생각에
어둠에 갇힌 신작로를 걷는 동안 나를짙누르고 있던 두려움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사라지고 기분은 날아갈 듯 가벼워집니다.

정상까지는 아직도 한참이나 더 남아 있음에도
마치 그곳에 올라 선 것 처럼
산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 올라서서
온 세상을 다 마시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 뱉습니다.

내가 왜 밝은 낮이 아닌 한 밤중에 산엘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무얼 하기 위해서이무거운 베낭을 메고 왔는지

그 이유를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다시 돌아간다 해도,
정상에 올라서서 지평선 위로 치솟는 태양을 바라볼 수 없다고 해도
결코 아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같은 날은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늦잠을 즐겨도 좋을아내에게
아침 밥짓는 일 하나는 덜어 준셈입니다.

2008, 5, 24.

바람부는 들녘에서(18, 終結 이별 그리고.....)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8. 5. 26. 16:46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의 하늘을 빙글빙글 맴돌다 쏜살같이 내려 와
들쥐를 낚아 재 비상하던 솔개의 무리들도
차츰 눈치를 먼저 채고도망치기에 익숙해져버린들쥐잡이에
별 재미가 없었는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등에 자루를 짊어지고 벼이삭을 줍는 이삭꾼들마져 발길이 끊긴 들녘엔
낫에 잘리고 남겨진 벼 포기들만 서로 키재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바다 쪽에서 불어 오는 차가운 바람에
시커먼 먹구름 틈 사이로 부챗살처럼 멋지게 뻗어내린 햇빛이
텅빈 들녘을 가로질러 감방산 너머로 사라지곤 하는 광경 말고는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추운 겨울이 지난 다음 내 형님이 고향으로 돌아 오겠다던 새 봄이 올 때까지는
누더기 옷을 걸친 채 쓰러져 가는 허수아비가 홀로 지키는 황량한 들녘을
바다에서 불어오는 삭풍만이 할켜대며 지나갈 것이다.

외롭고 고단하여 지루할 때마다
녀석이 있어 힘든 줄 모르고 지나왔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내 고향 들녘......

처음 이 들녘에 오던 그날,
가마니 틀 옆에 앉아 부끄럽게 웃던 모습에서 부터
가을걷이가 끝나고 들녘에 찬바람이 불어 올 때까지
녀석과 함께 했었던 일들이 하나 하나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설에 집에 올는지 모르겠다만 너는 그 때 집에 가겠구나?"
".............."
"아버지께 대들지 말고 어머니께 잘 해드려라!"
"..........."
"고향에 가시지 못하는 아버지를 네가 더 크면 이해 할 수 있을 거야!"
".........."
"책도 열심히 읽고 글쓰기도 부지런히 해서 나한테 편지도 쓰고 그래라!"
"........."
"너는 착하니까 앞으로 네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거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듣고만 있던 녀석이
옷소매에 눈물을 쓱 훔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 지고 만다.

만나서 헤어짐은 인간사에 있어필연이라고 들 하지만
아픔의 크고 작음이야 어찌 똑같을 수가 있을까?
녀석에게남겨줄 만한 것 하나 없이
이별을 해야만 할 일이라서 미안한 마음뿐이다.

생각타 못해 선물로 받아 아끼며 몇 번 쓰지 않은 만년필을
이별에 대한 아쉬움의 징표로라도 남겨놓고 싶어

녀석의 손에 쥐어줬다.
바람부는 들녘에서 아이와 마지막 밤은
미래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하지 못한 채
심난한 마음으로 지샐 수밖에별 도리가 없다.

아침 바람이 차다.
어느 때 아침과 마찬가지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작두 샘에서 물을 품어 후적후적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는데,
그가 좋아하던 통통한 갈치토막에 젓가락질 한번 안하고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는 밥이 평소의 반도 안 된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듯한 들녘에
갓 돋은 보리가 긴 겨울잠을 준비하려는 듯
찬바람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풍경이
흡사 코 끝 시리고 입술 파래진 용재의 모습과 같다.

올 때 가방하나 덜렁 가지고 온 것처럼
떠나갈 때도 이와 별로 다를 게 없는데,
배웅할 심사로 가방을 들고 대문 밖으로 나서는 가엾은 녀석이
또 한번 내 가슴을 시리고 아프게 한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 왔다가
이제 새로운 겨울이 시작되는 문턱에서 이곳을 떠나지만,
이 들녘에서 머물었던 시간 동안 빈 가슴속에 채워서 보듬은 따스한 정 보다도
떠나야 하는 이 순간의 서글픔이 더 크다.

고향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이 언덕을 내려간 뒤엔
떠나가는 내 뒷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용재도
나를 보듬어줬던 바람부는 들녘도
이제 내 추억의 보따리 속에 차곡차곡 담아 놓아야만 한다,

초가지붕들이 옹기종기 마주 기대고 있는 고향마을과
바람만 맴돌다 지나가는 텅빈 들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한 줄기 초겨울의 스산하고 찬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신작로를 한참을 걸어와 바닷가 백사장을 지나서 올 무렵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하얀 눈방울이 길게 사선을 그으며 내리기 시작한다.
첫 눈이다.
.
.
.
.
.
나는 바람부는 들녘을 그렇게 떠나왔었다.
그 해 설날 하루를 앞 두고서 고향에 갔었지만
용재와 내가 쓰던 방은 고향으로 돌아 올 형님을 위해
새 벽지로도배하여 단장을 한 채 텅 비어있을 뿐
나와 용재의 흔적이라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로는
내가 떠나서 온지 한 달이 채 안되던 어느 날엔가
피난민이 우리집에 와서 용재를 데려가고 난 뒤
쌀 한 섬을 받기로 하고 어디론가 일꾼살이를 떠났다는 소문 말고는
더 이상 용재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다고 하신다.

용재와 함께 보리밭도 긁고 꿩알도 주었던 곳,
파란 보리가 겨울잠을 자는 언덕베기 밭에 와서 보니
용재네 집이 있었던 곳 솔밭은 개간을 위해 나무들이 베어져 없어지고
그 자리엔 피난민이 살던 집터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피난민은 또 어디로 떠나갔을까?

그로부터 6년이 더 지난 여름날
바다를 끼고 있는 아담한 도시의 작은 건물 안에서
공부가 싫어 진학을포기했거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취직을 원하는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 몇 명을데리고
부두에서 가까운 제빙공장으로 견학을 갔다.

암모니아 압축기의 굉음때문에 도무지 시끄러워
아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서
냉동기란 무엇이고얼음이 만들어지는과정을 설명하고 있을 때
얼음을 담은 리어커를 끌고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은
바로 그 '피난민'이 아닌가?

곧 뒤따라 가겠다며 아이들을 먼저 돌려보내고
제빙공장에서 가까운 대포집으로 용재의 아버지를 모셨다.
농삿일이라곤 거들떠 보지도 않던 그가

이곳에 와서 얼음을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된과정 보다도
용재의 소식이 궁금해다그치듯 물었으나
그에게서는 아무런 소식도 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용재가 머슴살이를 떠난 뒤 3년동안은
받은 쌀을 꼬박꼬박 집으로 보내오곤 했었다가
그 뒤론아무런 소식이 없고, 또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며
대폿잔을 단숨에 들이키는 피난민의 눈엔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맺힐 뿐이다.

그 도시에서 1년 쯤 더머물 때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제빙공장엘가끔씩 가 봤으나
피난민을 본 것은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 도시를 떠나오던해 추석을 하루 앞두고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님께선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불쑥 꺼내셨다.

"그 소문이 참말인지 모르겠다만

어른도 끌기 힘든 딸딸이를

어린녀석이 끌다가 사고를 당해서 그만......"

만약 바늘로 가슴을찌른다면 그통증은 어떨까?

그날대폿집에서 피난민을 만났을 때

그가 흘렸던 눈물과 그가 했던 말의 뜻을

비로소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모님께선 바람부는 들녘의 그 언덕베기 보리밭을내게 물려 주시고 나서

내가 심은 단감나무가 내 키보다 훨씬 크게자랄 무렵세상을 뜨셨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훤칠하게 자라버린 나무를 관리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해질 무렵

부모님 생전에잠시나마 일손을 보태며 살았던 이에게

농사를 지어 먹으라고 내어주고 말았지만

고향에 갈 때면 부모님의 땀이 베어있는 밭을 들러보곤 한다.

내 젊은 시절 잠시나마 함께 했던

안쓰러운 녀석도 생각하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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