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쥐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으리라는걸 뻔히 알면서도
성취감이란 오직 그 "느낌" 하나를 얻기 위해
체력이 바닥을 다 드러낼 때까지 수족을 고생시키는 일은
물질을 우선시 하는 나와 같은 통속적인 사람에게 있어선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런 짓은 이번으로 마지막이라며 수도없이 다짐을 했으면서도
그 뒤로 서너번 씩이나 같은 짓을 되풀이 한다는 건
'미련스러움' 말고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산행을 하는 동안
이런 내 자신을 심하게 책망하는 순간이 두 세번씩이나 있었다.
출발지점인 화엄사에서 경사진 산길 7km를 올라가는 3시간 동안
옆구리가 결려서 숨을 내쉴 수 없을만큼 고통스러울 때가 그랬었고
천왕봉에서 중봉을 거처 대원사 계곡의
거칠고 기나긴길을 내려오면서 그랬었다.
집을 나서기 전부터 왠지 기분이 가볍지 않았던 게 걸리긴 했어도
처음부터 그런 고통을 겪으며 심난스러워 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우면 등에 짊어진 짐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다시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함께 간 동료가 고통스러워 하는 나를 보며
"이제 시작인데 통증이 계속되면 성삼재에서 하산을 하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레 내 의향을 살핀다.
심하게 결리는 오른쪽 옆구리를
쉼없이 문지르며 걷는 속도를 조금씩 늦춰보지만
풀릴 듯 하면서도 풀리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진통제 두 알을 먹었다.
만약 노고단재에 도착할 때까지도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면
혼자서라도 되돌아 설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함께 간 일행들에게 짐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때문에 세 사람 모두 산행을 포기하고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하산을 해야하는 일이 생길 땐
이 일이 기억에서 사라질 때까지는 두고두고 미안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화엄사에서 토끼봉까지 산행지도)
진통제 효과가 있었는지
노고단 대피소에 이를 무렵 옆구리 통증도 차츰가라앉기 시작하고
숨을 쉬기가 조금 수월해지니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시 15분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2시간 50분만에 노고단재에 올라서는 순간
우리 일행을 화엄사까지 바래다 주고 집으로 돌아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리산 종주 여섯번을 하는 동안
다섯번이나 같은 짓을 되풀이 하다보면 짜증도 나련만
그런 내색같은 건 조금도 하지 않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 한 마디는 꼭 하고 싶었다.
'집에 잘 도착했고 잠을 조금 더 잘테니
사고없이 잘 다녀오시라'는 아내의 말에힘이 불끈 솟아나는 것 같고
오늘따라 아내의 목소리가
노고단의 아침 바람만큼 시원하고 좋다.
빠른 걸음으로 임걸령에 도착해 마른 목을 축인 다음
반야봉 갈림길이 있는 노루목을 지나 삼도봉에 이르니
노고단에서 2시간이 걸렸다.
각자 챙겨온 짐을 풀어 20여분 쯤 아침식사를 간단하게 마치고
뱀사골로 내려가는 화개재를 지나 토끼봉에 오르니 아홉시 25분이다.
산행 계획을세울 때
웬만큼 산행에 능숙한 일행들이라서
첫날 산행의 목표지점을벽소령이 아닌
조금은 부담스럽게 여겨지는 도상거리 6km 남짓에 있는 세석으로 정했으나
지금 산행 속도로 봐선 오히려 세석에서 1시간 반 거리인 장터목으로 정했더라면
다음날 천왕봉 일출까지도 기대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운 마음도 생긴다.
(토끼봉에서 세석대피소까지 산행지도)
토끼봉을 오르고 연하천에서 식수를 챙긴 다음
형제봉과 벽소령까지 쉼없이 걸으니 12시 정각이다.
아직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선비샘을 향해 1시간쯤 걷다가
비탈진 숲속에서 점심을 폈으나 배는 고픈데도 밥맛이 없어
아내가챙겨 준 초밥 서너개를 먹다말고 남은 건다시 베낭에 넣었다.
칠선봉을 지날 무렵 1500고지 능선이라서 시원할 줄로만 알았으나
오늘따라 바람이 닿지 않는 곳에선 숨조차 쉴 수 없을만큼 무덥다.
오늘은 목적지인 세석까지만 가면 될 일이라서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숨이 찰 때마다쉬엄쉬엄 걸으니
항상 지치게 만들었던 영신봉의 경사진 계단이
오늘따라 여유롭고 녹록하다.
영신봉을 지나 세석평전에 이르러가을꽃인 구절초를 만났다.
노고단의 원추리와 쥐손이풀, 청초한 모싯대와 언제봐도 귀엽기만 한동자꽃,
궁궁이인지 어수리인지 늘 헷갈리게 만드는 수많은 종류의 산형과와
향긋한 배초향과 맑고 깨끗한 참취꽃,
그리고 아주 가끔씩 눈에 띄는 곰취도 노랗게 꽃을 피고
며느리밥풀도 지천으로 피어있는 한 여름의 산길에서구절초를 만난다는 건
내게 있어선 신선하고 상큼한 충격이었다.
하필무더위가한창일 때만을 택해서지리산 종주를 되풀이 한 건
휴가 일정에 맞추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세석평전을 지나천왕봉으로 가는 길섶에서
맑은 이슬을 촉촉히 머금은 채 피어있는 구절초를 만날 때면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시작되고 있다는 걸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으니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오후 네시 반이면 여름이라서 해가 중천이다.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넉넉히 장터목까지 가고도 남음이 있겠으나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에 단단해 조였던 긴장의 끈이 풀리고
적잖은 연륜을 등에 지고 열 세시간 동안이나 쉼없이 걸었으니
일행들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모초롬 여유를 되찾고
대피소 아래의 계곡으로 가서 몸을 씻고 새옷으로 갈아 입으니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개운하다.
대피소 안엔 막바지 휴가철이라서 그런지
잠자리가 듬성듬성 비어 복잡하지 않으니실로 마음이 편안하다.
준비해 간 귀마개를 꼽고 자리에 눕자마자 죽은 듯 떨어졌으나
산행객 누군가가 다리에 쥐가 난 듯 고통스러워 하는 소리에
1시쯤 잠을 깨고 말았다.
산행이 허용되는 3시 남짓에 출발하기 위해서
라면이라도 끓여 아침을 떼우려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오니
촛대봉으로 향해 가고 있는 불빛 몇 개가 보인다.
"야간산행 시 과태료 부과"라 쓰인현수막이신경 쓰이긴 해도
산지기들의 숙소에 불이 꺼져있는 걸 확인을 하고선
망설이지 않고 촛대봉으로출발한게 2시 45분이다.
날씨만 좋다면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으련만
장터목이 가까워 올 수록 안개가 짙어지니
한반도 어느 한 곳이라도 구름이 끼어있을 땐 일출을 볼 수 없다는 천왕봉의 일출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옳을 일이었다.
세석을 출발한 지 1시간 반 만에 장터목에 도착하여
그동안 내 베낭속에서 무겁기만 했던 복숭아를꺼내
일행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는 사이에
일행들의 물통을 가지고 50여 m 아래에 있는 산희샘으로 내려가
물을담아 다시 올라오며헉헉대다 보니
이곳을 지날 때마다 이 일을 도맡아서 해 줬던 친구 복영이 생각이 간절하다.
많은 산행객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천왕봉으로 향하고 있었다.
짙은 구름 때문에 일출은 기대할수없다는 추측을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산행객들 틈새에 끼어천왕봉에 오르니
세석에서 출발한 지 2시간 35분만인 다섯시 20분이다.
천왕봉엔 한 여름인데도 차가운 바람이 불어 와
땀에 젖은 옷을 스치니 몸이 오싹하고 한기가 느껴지나
짙게 드리워진 구름 탓인지 어둠이 쉽게 걷히지 않는다.
일출을 맞이하는 일은 일찌감치포기하고 표지석에서 기념사진 몇 장 찍은 다음
목적했던 대원사 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한 시간이 다섯시 50분,
중봉을 지나 써리봉에 이르러선 길이 사납고 쉼없이오르락 내리락하며
지친 몸을 더욱 힘들게 한다.
(세석대피소에서 천왕봉과중봉을오른 다음대원사 계곡으로 하산하는산행지도)
한 때 곰취가 많이 자란다 해서 붙여졌다는 치밭목으로 내려오는
2시간 남짓 동안 동료의 무릅에 통증이 적지않은 모양이다.
출발 전부터 걱정했던 일이라서 무릅보호대도 새로 준비를 했으나
피로가 누적되고 산길마져 순탄하지 못하다 보니
그 고통은 갈 수록 커지겠지만
나눠서 짊어질 수 없는 일이라서 안타까울 뿐이다.
어제 세석에서 저녁식사 때 먹다남은 햇반 하나와
라면 세 봉지와 남은 김치를 함께 넣고 끓여 아침을 떼우고
여덟시 50분에 출발하여 한 시간 쯤 내려오니
새재마을과 대원사로 가는 갈림길이다.
제 작년에 친구들이랑 이곳으로 하산을 할 때
퀵써비스 배달원에게 승용차 열쇠를 넘겨받기 위해서
엉망인 산길을 정신없이 뛰어 내려와
새재마을까지 달음질 쳤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마음 같아선 그곳에서 3km 거리인 새재마을로 하산을 해서
차를 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어차피 고생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김에
망설이지 않고 대원사 계곡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이 지긋지긋한 짓을 왜 또 다시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후회를
계곡을 벗어나오는 2시간 동안 계속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하산길임에도 불구하고계곡을 가운데 두고 뻗어내린 작은 능선을
쉼없이 오르내리느라 일행들 모두가 지칠대로 지쳤다.
수많은 지리산 산길 중에 인적이 가장 적은 곳이라서 그런지
사다리나 로프가 꼭 있어야 할 곳은 수도 없이 많은데도
그런 손질을 해 놓은 곳이라곤 겨우 몇 군데 뿐이다.
거칠은 산길을 걷는 동안 힘에 부치다 보니
내일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도
다시는, 그리고 절대로 종주같은 건 하지 않겠노라되뇌이지만
이런 생각은 산길을 벗어나는 순간의 성취감과 희열속에
흔적도 없이묻혀버릴 게 뻔하다.
마을 가까이에 이르렀는지
계곡에 주둥이를 담근 채 산길을 따라 누어있는 큼지막한 파이프는
마을 사람들이 사용할 물을 나르는 게 틀림없다.
치밭목에서 출발하여 두 시간 반 만인 11시 20분에 유평마을에 도착하고 나니
마치 내 집에 다 온 듯 싶다.
대원사까지는 앞으로도 1.5km가 더 남았지만
포장된 길이라서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목표했던 지리산 화대종주를 완성하는 순간이자
종주라는명분으로지리산을 다녀갔던횟수에 하나를 더 얹어
여섯번이되는 순간이다.
동료들 서로에게 이틀간의 수고를 함께 해준데 대한 고마움과
작은 일 하나를 해냈다는 기쁨을 함께 누렸다.
산길을 막 벗어난 맨 첫 번째 집에서
동료들이 하산을 기념하며 맥주를 들이키는 그 순간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키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고
한켠에 임시로 지어놓은 샤워장에서찬물에 몸을 씻으니
무겁디 무거웠던 몸이한결 개운하고 가볍다.
더구나 출발하기 전부터 쌓여서 무척이나 무거웠던 것들을
어제 세석에 도착하기 직전에
큰맘먹고 다 내려놓고 나니그렇게 홀가분 할 수가 없다.
속세의업으로 인한심난스러움을
그대로짊어진 채 되돌아가기가 너무 싫다는나 혼자만의 몸부림이었다.
산에서 내려 온지 단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내가 걸었던 산길과 그곳에서 피어나 나를 반겨주는 수많은 들꽃들과
맑은 바람과 아름다운 풍경들이 벌써 눈에 선하고 그립다.
내 인생에 있어 지리산 종주는 이제 정말 그만 할 생각이지만
아직 시작도 되지않은 내일 일을 두고 장담을 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일 뿐이다.
일상을 살면서 쌓인 게 많아 힘겨울 때면
훌훌 털어 버리고 싶은 생각에
떠날 준비를 다시 할런지도 모를 일이니까........
2008년 8월 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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