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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신체유감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8. 6. 22. 12:36

내 고향마을의 해가 뜨는 감방산 중턱엔
검바위라 불리우는 넓고 경사진 바위가 있어
어릴적엔 가끔씩 동무들과 함께 올라 가
산 아랫녘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놀다
해가 바다에 빠질 무렵에야 내려오곤 했었습니다.

내 청년시절 고향에서 잠시나마 상록수의 꿈을 꿀 때
어릴적 친구들 두명과 함께
한 겨울날 얼음으로 덮힌 그 바위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족히 50m도 더 되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을 뻔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함께 갔던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불행 중 다행으로 낭떠러지에 선아름드리 소나무가지로추락하는 바람에
머리에서 피가 날 뿐다른 외상이 없는 것같아
허겁지겁 산 아래까지 업고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매부한테 예일곱 바늘 쯤 꿰멘 머리의 상처가 아물어 갈 무렵
내가 어떻게 떨어졌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그곳에 다시 가 본 뒤에서야
"천운을 타고나지 않았다면 영낙없이 죽었을 거다"라고 하셨던

동네 어르신들의 말씀이실감나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 때 겪었던 사고로 인해서 매사에 조심성이 더 많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날 이후에도 발을 헛딛어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또는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내 정신적 신체적 문제를 함께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상에서크고 작음과 길고 짧음을 비교하는 경우에 있어
비교의 대상이 사람의 키나몸무게일 때면

수치의 차이가 유별나게 크게 느껴지곤 합니다.

타고난 마른 체격이라서 '갈비'이고
키가 커서 '꺽쇠'라불리어 속이 상하던 시절,
따지고 보면 다른 친구들과 기껏해야 5kg, 5cm의

이쪽 저쪽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데도

하필이면 유난스레 작은 녀석들에게

그렇게 불려진다는사실이 참으로 억울할 일이었습니다.

버스를 탈 때마다허리를 굽혀야 하거나천정의 공기통을찾아야 하고

익숙하지 않는 문을 드나들 때면머릴 부딛치지 않으려 전전긍긍 하는 등

당시의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해도

일상에서 불편스럽기만 한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내가 고스란히 감내를 해야 할 일이자
나 혼자만의 속앓이 일 뿐이었습니다.

중력이 작용하는 곳에선

길이가길 수록무게 중심이 위에 있기 때문에

길이가 짧은 이들에 비해

길을 걸을 때작은 돌부리만 걸려도쉽게 넘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자연의 법칙까지 들먹거릴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청년시절 검바위 절벽에서 추락했던 사고는 물론이고
최근들어 한라산에 갔을 때 나무 계단의 돌출부위에 걸려 넘어졌던 일과
엊그제 폭포에서 미끄러졌던 일은

방심을 했을 땐 언제든 생겨날 일이라는걸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사고가 빈번히되풀이 되는게마냥 답답할 일입니다.

추락할 때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있는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날렵하여 충격을 적게 할 능력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무얼 믿고 방심했다가 사고를 당하고선
그 때마다 온몸으로 후유증을 감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아침,
취미삼아 모이는 곳에 들러
폭포에서 추락했던 이야기와 더불어
행여 그곳에 가거든 모두들 조심하라고 일렀더니
같은 장소에서같은 일을 먼저 치뤘던 몇 몇 사람들이
자기들이 겪었던 상황들을 앞다퉈 이야기 합니다.

1~2년 전 그곳에서 손가락을 다쳐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는 이도
카메라와 랜즈를 망가뜨리고 병원 치료비까지 적잖게 들었다는 이도
자기들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위로를 보내줍니다.

집에 있는 시간 동안

가끔씩 오는 통증을 겉으로 드러내기라도 한다면
걱정 보다는 타박이 돌아올까봐
신음소리를 안으로삼키는 짓도 쉽지가 않습니다.

만약 내게 날개가 달려 있었다면

추락할때마다퍼덕거려 보기라도 하련만.......



끙~~!( = 속으로 삭히는 신음소리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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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비금도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8. 6. 12. 10:43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정치나 종교에 관한 것들이 소제가 될 때는 가장 어리석은 일은 사람들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고, 답답할 일은 입은 닫았으되 귀로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어느 한 편으로 기울어지는 일이고, 가장 지혜로운 일은 함께 휩쓸리지 않고서 그 자리를 떠나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요즘 세상사 돌아가는 꼴은 그 나라에선 먹지도 않은 쓰레기같은 고기를 들여와선 안 된다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국민들과 이런 뜻을 헤아리기는 커녕 국민들이 무지한 탓이라 치부해 버리고선 기어이 들여오겠다는 위정자들과 촛불을 든 사람들을 "사탄의 무리" 또는 "사탄의 계략"이라고 몰아 세우며 권력자에게 기댄 채 기득권을 누리려는 일부 종교 지도자들을 바라보면서 평상심을 흐트러뜨리지 않을려고 발버둥치는 내 자신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나도 한 때나마 논쟁의 가장자리에서 지켜 보는 건 비겁하다며 그 한 가운데로 나가길 주저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으나 눈을 뜨고 귀를 열 때마다 보고 듣는 권력자의 오만과 독선에 침묵하거나 그 주위에 기생하며 기득권을 누리는 무리들을 바라만 보고 있다는 건 비겁함 보다는 나이가 들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내 스스로를 변명해 댈 뿐이다.
이럴 때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기는 어떻게 식혀야 좋을 지 답답해 하고 있을무렵 옆자리의 동료가 "한 이틀 섬에 다녀오지 않겠냐"고 묻는다.


지금으로 부터 5~6년 전 쯤 여름날, 내 친구의 옛 고향이자 이 동료인 낙진의 처가가 있는 비금도에 가서 하룻밤 톡톡히 신세를 지고 온 적이 있었다.
아직도 그 때의 기억들이 생생하기에 "새우잡이 철이라 바쁠 텐데 손님으로 가기가 그렇다"고 대답을 했더니 그런 건 조금도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한다.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미리 준비하고 떠나는 여행보다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여행이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을 일이라서 훨씬 더 좋다.

섬으로 출발하는 날 새벽, 며칠 전에 개통된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상큼하기 그지 없던 건 이 고속도로가 개통되므로써 내 고향가는 길이 훨씬 수훨해졌다는 생각에서 만은 아니다.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과 잘만 하면 속으로만 마음먹고 있던 일 까지도 챙길 수 있을 것 같아 어릴 적 소풍을 가던 날 만큼이나 마음이 들뜨기에 충분했다.



날아가는 새의 형상을 갖췄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비금도는 우리나라에서 천일염 생산을 맨 처음 시작한 곳으로써 염전이 호황을 누릴 땐 돈이 날아다니는 섬이라고 했을 정도 주민들의 살림이 넉넉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수입산에 밀려 난 소금을 대신해서 해풍을 맞으며 자라는 시금치가그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니 아무레도 돈(金)자가 붙여진 섬의 이름덕이 아닌가 싶다.

목포에서 승용차를 배에 싣고 출발한 지 2시간 여 만에 비금도와 마주하고 있는 도초 선착장에서 내린 후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는 연도교를 건너 비금도에 도착하니 비릿한 갯내음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지고 새우잡이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낙진의 처남 내외와 장모님께서 반겨 맞아주신다.



낙진의 처가엔 지난 해 까지만 해도 손 아래 처남인 두 형제들이 함께 새우잡이를 하고 있었으나 동생이 배를 사서 형으로 부터 독립해 어장을 시작했는데 새우가 많이 잡힐 뿐만 아니라 새우값이 좋아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기름값을 대처하고도 빚을 갚아 나갈 수 있다니 바쁠 때 손님으로 온 내 입장에서도 그 처럼 다행스러울 일이 없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지만 마당에 햇빛가리게를 쳐 놓고 새우 고르는 일이 한창이라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일을 거들려고 나서는 아내가 고맙기 그지없다.
그렇잖아도 어젯밤 잠자리에서 아내에게 "바쁠 때 손님으로 가는 게 조금 걸리지만 새우 고르는 일 쯤은 우리들도 거들 수 있으니 편한 여행, 구경하는 여행은 처음부터 기대하지말자"고했지만 아내 또한충분히 이해 하고 있었기에 걱정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몇 해 전 이곳에 와서 새우잡이 배를 타고 어장에 갔을 때  그믈에 걸려서 올라온 싱싱한 병어를 술 안주 삼아  맛있게 그리고 푸짐하게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내가 와 있는 비금도와 맞은 편에 바로 보이는 도초도 사이는 흑산도와 홍도를 오가는 길목이라서 가끔씩 쾌속 여객선이 물 위를 날으는 듯 질주하는 광경은 도시 사람들에겐 좋은 구경거리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바다 한 가운데선 낙진의 처남이 새벽녘에 건져 온 새우를 바닷물에 선별하느라 바쁜 모습이지만 배가 와서 우리를 데려가 주지 않는 한 도와 줄 수도 없는 일이고 새우 고르는 일 또한 아낙들의 일이라 내가 거들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처음 왔을 때 둘러보지 못해서 줄곧 아쉽기만 했던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심사로 카메라를 챙겨서 나왔다.

섬 내륙으로 향하는 길목엔 예전에 염전이었다는 논 마다 모내기를 막 끝내고 난 뒤라서 어린 모들이 조금씩 생기를 찾아가는 듯 한 광경은 육지의 어느들녘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내 어릴적엔 섬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공을 차면 바다로 빠져버릴 것 만큼이나 작은 곳인 줄 상상하고 있던 중 우연히 이름도 없는 작은 섬에 갔을 때그 섬을 한 바퀴 돌면서 어릴적 상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생각하며 웃었던 일도 있었다.




면 소재지를 지나는 신작로 군데군데엔 밭에서 베어 낸 시금치 대가 널려져 있어 승용차가 지나갈 때 바퀴에 깔려 으스러지는 소리가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조심스럽다.
행여 시금치 씨가 깨질까봐 걱정스러워 엉금엉금 가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주민이 걱정말고 지나가라는 듯 손짓을 해 댄다.
예전엔 도리깨를 이용해서 시금치 씨를 털었지만 지금은 오가는 차들의 바퀴에 짙뭉개져 씨가 털리고 남은 건 손으로 털어내는 작업을 하면 된다니 그런 줄 알았으면 시금치 대 위를 몇 번씩 더 오갈 것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산마루에 올라서니 내 친구의 고향인 내촌리와 넓다랗게 펼쳐진 들녘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능선의 반대쪽으론 하트 모양을 하고 있어서 유명하다는 하누넘 해수욕장을 안고 있는 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여름 휴가철이 아니라서 그렇겠지만 바닷가 피서지마다 여행객들은 물론 인적조차 끊어진 한적한 풍경을 혼자서 독차지 한 듯 오히려 좋기만 하다.



해안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려 원평 해수욕장에 다달으니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
분명익숙한 향기라서 모가지를 길게 빼어 두리번거리니 저만큼 백사장 가장자리에 한 무리의 해당화가 부끄러운 듯 화사하게 피어나 끊임없이 향기를 보내고 있었다.

내 어릴적 내 고향 바닷가 백사장에도 잘 자라던 해당화였으나 언제부턴지 감쪽같이 사라져버려 늘 아쉽던 해당화다.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고 사진 몇 장을 찍고 있을 때 아내로 부터 점심을 먹으라는전화다.



나 한 사람 때문에 점심상을 마주한 채 기다리고있을지도 몰라 서둘러 되돌아 오니 푸짐한 병어회와 갑오징어회, 하나만 먹어도 배가 터질만큼 크고 오동통한 꽃게와 막 잡아서 무친 새우와 생선 구이로선 제일(?) 맛있다는 밴댕이 구이 등등 차려놓은 점심상을 보는 순간 눈으로만 보고 먹지 않아도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직접 잡을 수 있는 것들이라서 가능하겠지만 꽃개 1kg에 3만원씩, 병어 1상자에 20만원씩이나 한다는 말을 미리 들었던지라 설령 배가 고프다 해도 선뜻 젓가락질을 해댈 수가 없어 망설이고 있던차에 낙진의 부인께서 그 크나큰 꽃개를 반으로 쪼개어 내 밥그릇에 올려 놓는다.
무슨 일이든 익숙하게 될 때까지는 눈치를 보거나 망설이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면 금새 자연스러워 질 일이라서 비금도를 떠나오는 날 점심 때까지 네 끼의 밥상을 받을 때마다 배가 부를 때까지 쉼없이 젓가락질을 해 대댔다.





점심 식사 후 새우를 잡으러 떠난다기에 작업복을 챙겨입고 배를 탓으나 내심 일 하는데 방해나 되지 말았으면 마음이 앞서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마침 새우 그믈을 설치 해 놓은 곳이 도초도 인근 바다라서 배를 타고 도초도 해안을 구경할 수 있었던 건 내게 있어서 행운이었다. 멀미를 할까봐 귀 밑에 멀미약을 미리 붙여 놓았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파도가 일렁이지 않고 잔잔한 바다라서 어장까지 가는 동안 해안의 기암괴석을 구경하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새우잡이도 때가 있어서 제일 많이 잡히던 시기는 지났다고 하는데도 그믈을 올릴 때마다 잡힌 새우의 무게가 적잖은 것 같아 구경하는 것 만으로도 재미가 있는데 그믈 속에는 갑오징어, 병어, 꽃개, 돔 새끼 등등 온갖 고기들이 다 들어 있어서 밥상이 푸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잡아 온 새우 선별 작업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니 하룻동안 쌓였던 피곤이 밀려와 도무지 몸을 주체할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마당 한켠에 세워둔 승용차에 들어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잠에 골아 떨어졌다가 아내가 부르는 소릴 듣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에 취한 채 아침을 맞았다.




새벽녘이 되자 어제 돌다 만 섬을 한바퀴 돌아보고 싶어서 승용차를 가지고 나와 염전이 끝없이 펼쳐진 들녘을 지나 가산 선착장에 이르니 날이 훤하게 밝아온다.
어쩌면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가산 선착장에 이르러서 접고 말았다. 하늘에 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을 뿐만 아니라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섬과 섬들이 떠 있고 안개마져 자욱해서 해가 뜨는 시간까지 기다린다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염전이나 구경할 셈으로 그곳을 되돌아 나왔다.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염전에서 바쁘게 서두르고 있어서 그곳으로 가까이 다가가 물으니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를 듣고서 서둘러 물을 가두는 중이라며 내 손에 들려져 있는 카메라를 보고선 "석양에야 소금을 거두는데 오늘은 그런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어쩌냐?"고 걱정해주니 그 순박하고 포근한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 와 닿는 느낌만으로도 좋다.



아침 한 나절을 새벽에 걷어 온 새우 손질하는데 보내고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니 우리가 타고 갈 뱃시간이 아직 여유가 있다며 숭어를 잡으러 가자고 한다. 투망을 잘 하는 사람이기에 숭어를 잡는 건 그리 어려울 문제가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배를 운전해야 하는 건 낙진의 처남만이할 수 있는 일이라서 바쁜 사람을 귀찮게 하지 말자고 만류를 해도 막무가내다.

숭어란 바다에서 아주 흔한 고기라서  어민들에게 있어선 돈이 되지 않아 관심밖의 고기일런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같은 사람들에게 있어선 비싼 병어나 갑오징어나 돔과 다를 바 없다.



처남이 숭어가 몰리는 곳으로 배를 대고 낙진이 기회를 노려 투망을 던지니 처음 던진 투망에 걸려나온 팔뚝보다 더 굵은 숭어가 여섯 마리나 되어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그믈을 던질 때마다 묵직하게 걸려 올라오는 숭어가 주체하기 조차 힘들었다. 


배가 떠날 시간도 다가오고 여러 사람들이 충분히 나눠 먹을 만큼 잡았다는 생각에 배를 돌려 뭍에 대니 어떻게 알았는지 인근에 사는 주민인 듯한 사람이 다가와 그물에 걸린 고기를 뜯어내 주는 척 하며 "몇 마리만 주라"며고기를 한쪽으로 챙기기 시작한다. 처남이 승낙은 했다곤 하나 '몇 마리'가 서너 마리도 아닌 열 마리도 더챙겨가는 광경을 보며 벌건 대낮에 도둑을 맞은 듯 황당한 기분이었지만 주고 안 주고는 내가 할 일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뜻밖에 횡재를 하거나 황당한 일을 겪을 때가 더러 있다. 이 상황만 놓고 볼 때 횡재는 숭어를 얻어 간 사람의 일이고 눈치 살펴가며 애써 잡은 숭어를 눈앞에서 빼앗겨야만(?) 하는 건 분명히 황당한 일이다. 아깝다는 생각을 다 떨쳐내지 못한 채 뱃시간에 맞춰 나서는 우리들에게 마른 새우와 큼지막한 꽃게와 갑오징어 등 온갖 생선을 챙겨주시는 낙진의 처가 식구들이 고맙기 그지없다.



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마음이 시원섭섭한 건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아서 시원하고 혼탁하기만 한 세상사 다 잊고 마음편히 머물렀던 곳을 떠난다는 생각에 서운할 일이다. 해당화와 갯메꽃이 피는 섬이 비록 내 처가는 아니었지만 평소에 바램하거나 그리고 있었던 장모님의 사랑을 내 가슴 안에 듬뿍 안고 오는 느낌이라서더없이 좋았다.
그 곳에 머물렀던 짧은 시간과 순간들이 내안에 또 하나의 추억거리로 자리메김 되어 세상사가 나를 짜증나게 할 때마다 썩 괜찮은 되새김질 거리가 될 것 같다


2008,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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