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이사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11:25

( 2006년 12월 03일 일요일 )

도시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가지 사정과 목적을 갖고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니곤 하지만
나는 여러가지 불편스러운 일까지 감수하며
17년을 한 곳에 눌러앉은 채 살았으니
아내는 물론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참으로 답답하고 무던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집을
재산 형성의 대상으로앞세워 추구하는 세상이다 보니
대부분의사람들에겐 이삿집을 싸고 옮기는 불편쯤은

기꺼이 감수를 하거나당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지는 모양입니다.

새로운 변화를 싫어하여
바꾸는 일에 관해선 답답하리 만큼 무디게 살아 온 나를 향하여

"무능"으로, 그리고 "답답함"으로결국엔 "불만"으로 비춰져 오는 아내의 눈빛을
모르는 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뒤엔 남학교가 앞엔 여학교가 있어
내 아이들이학교를 오가는 일 하나만큼은

남들처럼 불편을 겪지 않아서 좋았던면도 없질 않았습니다.

코흘리며 아장거리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줄곧 마음 붙이고살아왔었던 곳,
이제 녀석들은 제 삶을 찾아 떠나간 탓에
꿈틀거린다 해도 몸짓이 조금은 가벼울 것 같아서
큰 맘을 먹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고자 결정을 했습니다.

첫눈 내리던 어젠
새로 이사를 갈 마을에 들러
마무리가 다 되어있는 집에도 들러보고 난 뒤,

남편이 평소에 식당밥은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궂이 남이 차려주는 따끈한 국물이 먹고싶다길레

오랜만에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사를 가게되면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한쪽 구석지에 쳐박아 놨던
원격조정 조차 되지않은 TV와 아이들이 쓰던 헐거워진 책상은 버리고
원성을 사곤 했던 불편한 냉장고는 바꿔야만 할 것 같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어느새 거리엔 어둠은 내리고 갓 떨어진 은행잎 위에 흰눈이 살포시 덥히는 거리엔
우산도 받지 않고 거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습니다.

집에 돌아와 그래도 내 집이라서 마음이 편해
소파에 누었더니 스르륵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고구마 익어가는 냄새가 참 좋다는 느낌이었는데
두어시간 만에 깨어보니 머리맡엔 잘 익은 고구마가 놓여있습니다.

어린시절 부터 변함없이 좋아했던 고구마가 있고
허름해진 잠옷을 입고서 TV앞에 앉아 연속극에 빠져있는 아내가 곁에 있으니
마음같아선 그냥 이대로 눌러앉아 죽을 때까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병이 들어 지치고 마음까지 약해 진 내 친구녀석도
이 도시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멀리 떨어진다는 게 싫었던지
"그곳에 그대로 살지 뭐하러 멀리 가냐?"며 서운해 했던 일도 있고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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