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쵸콜렛과 식당 아주머니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8. 12:43

( 2002-02-14 )

밥 생각이 별로 없었으나 끼니는 떼워야 할 것 같아서
터덜거리며 식당으로 갔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식사를 하러 온 모든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공손히 하며
식판에 500원짜리 쵸콜렛 한 봉지를 얹어 주십니다.

오늘이 바로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쵸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라고 합니다.
나는 아직도 이 날의 유래는 물론 의미조차 잘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받는 여유로움을 갖고 사는 것도
좋을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 쵸콜렛은 살이 찐다해서
가능한 먹지않으려는 과자 중에 하나라
앞자리에서 식사를 하고있던 동료에게 건네주고 나왔으나
글쎄 이 아주머니가 초콜렛을 두개나 인편으로 보냈습니다.

기왕 줄려거든 직접 건네 줄 일이지
인편으로 보내면서 "다음에 꼭 갚으라"는 말까지 첨부해서 보냈다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원하지도 않았던 빚을 진 셈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밸런타인데이와 반대로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도 있다고 하던데
행여 그날에 갚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론
식당에 가면 늘 식판에서 눈길 한번 떼지않고
식판에 얹어주는 밥만 다소곳이 먹고 나오곤 해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 정도는 하고
밥을 받아 먹을 줄 알라는 메세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주 대수롭잖은 일상적인 일 하나를 가지고
내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떻거나 오늘부터는 식당 갈 일이 꽤나 불편스럽게 생겼습니다.
인사를 하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지만
안하던 짓을 초콜렛 받은 뒤로 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아무런 인사도 하지않는다는 것도 뻔뻔할 일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회사 버스가 지나가버린 줄도 모르고 기다리다가
택시로 부랴부랴 출근을 했던 일로부터 시작해서
식당의 쵸콜렛까지 몸과 마음이 정신없던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쫓기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가 봅니다.

'글 - 허공에 쓴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싸움  (0) 2007.07.28
13, 애기사과  (0) 2007.07.28
11, 귀성길  (0) 2007.07.28
10, 준비하는 마음  (0) 2007.07.28
9, 포플러나무와 까치  (0) 2007.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