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귀성길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8. 12:42

(2002-02-10)

설을 쇠러 오가는 천리길이 쉽지만은 않을진데
줄을 서서 가다 서다를 되풀이하며 가는 길이
평소보다 더 짜증이 날만 할텐데도
해질녘이면 으레 집을 찾아 돌아가는 새들처럼
명절이면 으레 천리길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복을 많이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하루 이틀쯤 고단하고 지쳐있는 마음을 편히 기댈 수도 있으니
가는 길이 짜증나고 힘이 들더래도
고생 감수하며 돌아갈 고향이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나도 오늘은 복받고 행복한 사람인냥하며
다른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가다 서다를 되풀이하는 길을
넉넉한 마음으로 고향에 다녀 오려고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도,
마음 기대어 놓고 쉴만한 포근함은 없어도,
아침에 서둘러서 갔다가 부모님 산소에 성묘도 하고
그분들의 땀이 베어있는 들녘도 돌아보다가
해질녘에 다시 되돌아오려고 합니다.

텅 비어있어서 허름해져버린 고향집을 보며
또 다시 마음이 울적해지겠지만
살아 계실 때 많이 저지른 불효에 용서를 비는 뜻에서라도
어머님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 가득 담아서 돌아올려는 생각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살아계실 때 더 잘 해드리지 못한 일들을
뒤늦게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짓이지만
용서라도 받아서 마음의 무거움이라도 덜어내고 싶은 심정은
세월이 가도 변할 줄 모릅니다.

한 여름 그 무덥던 날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비오듯 땀을 쏟으면서도
십년이 넘도록 혼자서 벌초를 해오고 있는 자식의 심사를
내 부모님께선 헤아려 주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반겨 맞아 줄 사람이 없는 고향을 둔 사람들은
명절을 앞두고서 늘 가슴앓이를 하곤 합니다.
이른 아침이면 마당을 쓰는 아버지와, 밥을 짓는 어머니와,
동이 훤하게 틀 때까지 늦잠을 자는 형제들과,
외양간의 누렁이와 송아지와,
홰를 치며 울어대는 벼슬이 빨간 숫탉과,
어미를 쫓아서 삐약거리는 노란 병아리들까지도
눈을 감으면 훤하게 떠오르는 애틋한 모습들입니다.

고향에 반겨주는 이가 있는 사람들은
비록 오고 가는 길이 힘들고 지루하더래도
가고보면 만나는 기쁨도 있기에
정말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나도 오늘 하루만큼은
그런 사람들처럼 고향으로 갑니다.
해질녘에 쓸쓸함을 가득안고 되돌아 올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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