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포플러나무와 까치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8. 12:07

(2002-02-03)

산이나 들녘, 길섶이나 집 울타리 등
어디에 서 있든 어떤 나무이든 이들에 대한 관념은
나무들에 대한 느낌은 잘 생겼던 못 생겼든
어떤 편협한 선익감없이 호감을 가지고 보고 또 대합니다.

잘 생긴 나무는 보며 감상하는 즐거움을
못생긴 나무는 제자리에서 나름대로의 제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숲을 이루고 있는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 인접한 학교를 사이에 두고 그 경계의 작은 숲에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포플러나무가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그루 두 그루 잘려나가고
운이 좋아서인지 아직 남아있는 나무들은 해가 묵은 탓에
주변의 나무들보다 훨씬 위로 불쑥 솟아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데
그 나무는 내가 별로 호감으로 대하지 않는 나무 종류 중의 하나 입니다.

꽃이 피는 5월엔 쉼없이 꽃가루를 날려 보내 숨쉬기조차 불편하게 하고,
뜨거운 여름엔 위로만 훌쩍 솟아서
편히 쉴 수 있는 오붓한 그림자 하나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하면서도
거센 폭풍우에 제 몸 하나 버티지 못하고 맥없이 쓰러지기 일쑤입니다.

더구나 가을엔 단풍 조차 가을빛 이라곤 어느 한 군데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거무튀튀한 어두운 빛으로 퇴색된 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비바람에 떨어져 떼를 지어서 휩쓸려 다니는 광경도 눈에 거슬릴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재목이 특별히 귀한 용도로 활용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해 늦은 가을 무렵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우연히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포플러나무의 맨 꼭대기쯤에
까치집이 세 개씩이나 나란히 얹혀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작년 봄 가지에 새순이 돋아 날 때까지는 분명 없었던 까치집인데
여름을 지나는 동안에 지어졌는지 나뭇잎에 가려져 보이질 않았었나 봅니다.

까치는 오래 전부터 알게 모르게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반가운 손님이 올 것을 미리 암시해주는 일과
길복을 가져다주는 이로운 일을 하는 새로 오랫동안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어릴 적 즐겨 불렀던 '설날'의 동요 속에서
친구처럼 늘 함께 하고 있는 새 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에도
어른들께서는 먹고싶어 칭얼대는 철부지 아이들의 마음까지 다독거려가며
잘 익어서 빨갛고 탐스러운 마지막 감을
까치밥이라 하여 가지에 매달린채 놓아두고
추운 겨울날에 날아와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도록
오직 까치의 몫으로 남겨놓기도 했었던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 처럼 까치는 다른 새들에 비해
우리의 선조 때부터 특별대우를 받고 호강하며 살아왔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세상사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지
요즈음 들어서 까치란 놈은
어디에 가나 푸대접을 받고 쫓겨다니는 천덕꾸러기입니다.

과수원에선 제일 크고 곱고 맛있는 과일만을 골라서 쪼아대는 것 까지는 좋으나
쪼아놓은 과일을 그대로 놔두고 또 다른 과일을 쪼아댑니다.
집 지을만한 좋은 나무는 하고많은데도 그냥 놔두고,
하필이면 전봇대에 둥지를 틀어 정전을 시켜서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합니다.

이런 미운 짓만 골라서 하는 새에게
예전처럼 감상적인 아니면 호의적으로 바라 볼 사람들은 없습니다.
지금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는 푸대접은
어느 하루아침에 괜히 생긴 일이 아닐뿐만 아니라 자업자득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과수원이나 곡식이 있는 들녘이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필이면 이곳 포플러나무 맨 꼭대기에 둥지를 틀어놓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아서 갸우뚱거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외출을 했다가 집에돌아오는 길에
아파트의 쓰레기 저장소 근처를 지나올 때
까치 두마리가 쓰레기 봉투를 발기발기 찢어
음식물 찌꺼기를 뒤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서
까치가 왜 이곳 포플러나무에 집을 짖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꽃가루만 뿌려대며 그리 쓸모없는 포플러나무가
쓰레기 봉투를 발기발기 찢어서 먹을 거리를 찾는 까치에게
보금자리를 틀 수 있도록 넓은 어깨를 빌려 내준 이유는 나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나
사람에 유익하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베어내고 쫓아버려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함께 살아있는 한
그들도 그들만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조금은 불편할 때도 있지만
포플러나무에 얹혀진 까치집이 어우러져 있는 풍경은
인위적으로 연출된 것 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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