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紅島야 우지마라 (4, 고향의 정취 )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4. 18. 08:10

점심 한 끼를 먹기 위해서 무안읍을 한 바퀴나 빙글 돌았다.
사람들이 먹는 것이라면, 아니 혐오식품만 아니라면 뭐든지 잘 먹는다지만
외식을 할 땐 무얼 먹을 것인지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음식을 주문할 때면
"뭘 먹고 싶다"가 아닌 "아무거나"라는 말을 주로하곤 한다.
그 이유는 음식의 종류가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개성이 없는 탓이다.

결국 우리가 들어간 식당은
얼큰하고 개운해야 할 병어찌게가 맛도 분위기도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그녀 역시 "아무거나"라며 "무엇이든 잘 먹는다"고 해서 마음이 편하긴 했지만
실제론 국물이 흥건한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식사가 끝난 다음의 일이었다.
그녀가 내게 베푸는 배려이기도 했지만
함께 있어서 좋았고 마음편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무안 일로 회산의 연꽃방죽)

무안읍,
넓디넓게 자리잡고 있던 예전의 저수지는 흔적도 없이 메워지고
그 자리에 들어선 건물과 아파트,
옛 장터라곤 아무런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는 읍내의 풍경이 낮설기만 한 탓인지
오랜만에 고향에 찾아온 그녀의 표정이 차라리 무덤덤하기만 하다.

읍내를 벗어나와 해제쪽으로 잘 뚫린 왕복 4차선 도로를 잠깐 달렸는데
어느새 현경면 소제지다.

오는 길목의 어귀에 있는 고향마을을 지나치는지 조차 몰랐다는 그녀는
훌쩍 커버려서 낮설게 느껴지는 아름드리소나무와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플라타나스 나무 말고는
옛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우리들이 6년동안 다녔던 초등학교의 풍경에,
감회가 아닌 다소 생경스러움을 짙게 느끼는 표정이다.


"이쯤에 누구집이 있었으며 이쯤엔 무슨 가계가 있었다"는
그녀의 옛날 기억들을 더듬거리면서 면소제지를 벗어나니
송정리 언덕너머로 멀리 물이 빠져나가 갯벌을 훤히 드러낸 바다가 보인다.

학교다닐 적에 유일하게 1반, 2반, 3반에 골고루 나눠져서 다녔던 동네,
이곳에 살았던 남자친구들은 모두 다른반으로 가고
여자친구들만 우리반에 있었던 것이 싫지않을 일이었다면
내가 너무 솔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들었던 고향도 오랜만에 찾아올 땐 조금 낯설게 느껴지는데
하물며 내가 살았던 동네가 아니라면 낮설 수밖에 없는 일이다.
송정리는 지리적으로 읍내나 도외지로 나가는 반대방향에 있기에
현화나 외반리에 살았던 사람들에겐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람에 실려오는 고향의 갯내음을 맡으며 신작로를 달린다는 것은
가슴 뭉클하고 상큼하며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와 그녀가 옛 고향과 옛 친구들의 이야기에 흠뻑 젖어있지만
아내에겐 흥미도 재미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차를 타고나서 10분이면 곤히 잠에 취하는 아내는
나와 그녀만의 대화가 아내에게 자장가가 되었는지 잠에 흠뻑 취해있다.
재미없는 이야기에 지루하거나 식상함을 느끼는 것 보다는 오히려 잘 된 일이다.

송정을 지나서 한참을 더 가니 홀통유원지다.
예전에 몇 번 왔었지만 피서철엔 한번도 와 보지 않았던 곳이라서
피서철에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몰려드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예전에 없던 주차장 시설을 꽤나 넓게 해 놓은 것을 보니

홀통에도 여름 휴가철엔 적잖은 사람들이 오는 모양이다.



( 무안반도의 지도-- 지도에서 현경면이라 쓰여진 곳에서 오른쪽으로 815라 쓰여진 곳쯤에내 고향마을이 있다.)

홀통의 소나무 숲을 지나 신작로가 끝나는 곳에있는 몇몇의 횟집엔
피서철이 지난 뒤라서 그런지 손님들은 없고 주인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은배를 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조그마한 콘크리트 선착장에서
세사람이 모여앉아 뭔가를 부지런히 손질하고 있다.

보나마나 바다에서 막 잡은 생선일 것 같아
돈을 주고서 조금 사고싶은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니
막 잡은 전어, 새끼돔, 운저리, 모치의 배를 가르고 회를 뜨고 있다가
그 중에 한 사람이 "가까이 와서 드시라"고 권한다.


이럴땐 사양을 해선 손해라는 것을 잘 안다.
체면을 차릴수록 나만 불편할 뿐이다.
눈치껏 안면 몰수하고 틈바구니에 낑겨 먹고싶은대로 먹어야 한다.
다만, "아~! 정말 맛있습니다" "이런 맛 처음입니다."라는 말을
빠뜨려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노하우가 아니다.
그렇고 보면 내 머리가 아직 빛나리가 아닌 것이 참으로 신기할 일이다. ^^*

실례무릅쓰고 가까이 다가가 떠놓은 회를
깻잎에 고추와 마늘을 놓고 초고추장 듬뿍 발라서
볼테기찜을 하다가 멀리서 지켜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던
아내와 그녀에게 함께 먹기를 권했다.
내것도 아니면서.........

몇번의 볼테기찜을 정신없이 하고있는데
"안주만 주고 술을 안주면 욕먹는다"며
정력에 최고라는 연주(蓮酒=연으로 담근 술)를 종이컵에 가득부어 내게 권한다.

고향의 후한 인심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지만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면 주는 그들 또한 기분좋을 일일 것 같다.

생전 처음 마셔보는 연주가 독하긴 했지만
정력에 좋다고 하니 술은 주는대로 받아 마셨다.
차 운전할 일만 아니라면 그곳에서 허리띠 푸는 것인데.....

읍에서 점심을 먹고 홀통에서 갖잡은 회로 공짜술을 몇 잔 마셨으니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

시골에서는 대낮에도 음주운전 단속을 하는 경우를 몇 번 봤던지라
시간적인 여유를 갖을 겸 해서 도리포로 향했다.
횟집엔 몇몇 사람들이 무리지어 술을 마시고는 있었지만
한가롭기는 홀통과 다를바 없다.

새해 첫 날이면 사람들이 해맞이를 하러 온다는 도리포,
고려청자가 물속에 가라앉아있어 바닥을 긁는 고기잡이를 못하게 하는 도리포,
하늘과 바다와 술잔과 님의 두 눈동자 등
다섯개의 달이 뜬다는 도리포에서 기분내며 술 한잔 하고싶은 생각도 없질 않았으나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가야 할 일 때문에
아쉬움만 남긴 채 길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2004, 9,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