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紅島야 우지마라 (2, 그녀와 만남)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4. 18. 07:28

며칠 전,
내가 만들어 놓은 초등학교 동창들이 모여있는 인터넷카페에서
오랜만에 그녀를 만났다.

그녀와 난 손꾸락으로 의사를 표현하여 전달할 수 있는 타자가 조금은 되는지라

카페에서 만날 때면 으레 서로의 안부와 옛날 이야기 등의 일상적인 이야기는

편하게 하고 지내는 사이다.

그녀의 친정은 우리집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다는 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친정에 갈런지도 모르겠어"
"내려오면 꼭 한번 만나, 기왕이면 술도 한 잔 곁들이면 좋겠지?"

그것은 서로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즉 내가 여행을 떠나려는 바로 전날 그녀는 친정에 왔고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 켜질 무렵에 친정과 우리집의 한 중간에서
단 둘이서 만났다.
비가 내리는 날 밤에 단 둘이서.......

나는 평소에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마시는 순간만큼은 그 분위기를 최대한 즐기는 편이다.
또한 입에 댄 김에 크나큰 등치가 어느정도 흥건히 젖을 만큼 마시곤 한다.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피곤한 스타일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내 자신을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빈틈과 모순 투성이이다.

남들 앞에 설 때마다 그 약점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버릇처럼 마음의 끈을 질끈 조이다 보니
일상에 있어서는 경직된 표정이 얼굴에 투영되곤 한다.

술이란 놈은 참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내 안의 정돈된 질서를

아무렇게나 마구 헝클어 놓고도 마음을 편하게 하는 힘이 있다.
마음이 느슨해지니 짙누르고 있던 것들이

내 입을 통해서 밖으로 마구 튀어나온다.

옛 성인(聖人= 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께서
"어려운 말을 많이 쓰거나 아주 예의바른 사람들은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을 하셨다기에 그 가르침을 실천할려고 무지 노력을 했던 결과인 듯 싶다.

접시에 빨판을 붙힌 채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있는 낙지발,
비록 최후의 발악이긴 해도 나의 고집센 집념을 꺾을 수는 없는 일이다.
꿈틀거리는 낙지발을 악착같이 떼어내 고소한 참기름장에 듬뿍 찍어서
쉼없이 쏟아지는 빗소리를 권주가 삼아 한 잔 또 한 잔...........

"내일 각시랑 홍도가는데 같이 갈겨?"
"내가 같이가면 각시가 무진장 눈총을 쏠건데 다 막아줄겨?"
"눈총 쯤이야 날아오거든 잽싸게 피하면 되는거 아닌겨?"
성인의 말씀을 의식하며 두 사람이 쉬운 말만 골라서 하는 동안에
밤 열시가 가까워 온다.

"따르르릉~~!!!" (내 휴대전화 벨 소리는 아직도 이렇다.)
발신자 표시창에 "각시"라고 떠있다.
"밖에 비가 오는디 시방까지 뭣하요?"
새벽이 될 때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전화라곤 하지않던 아내가
두번씩이나 전화를 해 오는 것은
함께 있는 이가 여자친구라서 뭔가 불안했던 때문은 아닐까?

"왜 전화했어? 금방 갈라고 했는디...."
"아그덜이 아빠 안 오신다고 걱정하요~!"
참으로 기특한 녀석들이다.
"언제부터 즈그덜이 아부지 귀가시간을 챙겼다냐?"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은 오래살고 볼 일이다"라고 하는가 보다.

아그덜 핑계를 대면서 서방이 빨리 들어오기를 바래는
아내의 속마음을 모를리 없는지라
마지막 술병의 술을 쪽~! 소리가 나게 마시고서 술집을 나섰다.
밤거리엔 여전히 비가 후줄근히 내리고 있었다.

( 2004, 9,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