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紅島야 우지마라 (3, 그녀와 나의 고향 )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4. 18. 07:41

다음날,
목포항에서 홍도행 배를 타기 위해선
늦어도 집에서 새벽 다섯시 반쯤엔 출발을 해야한다.

들뜬 마음에 밤잠을 설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릴적 학교 운동회나 소풍가는 날이면
짖굳게도 비가 오곤했던 지워지지 않은 기억 때문에
날씨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연인가? 아님 하늘의 심술인가?
전 날에 시작되었던 비가 출발해야 할 시간까지도 줄기차게 쏟아진다.

홍도로 갔다가 유람을 하고 흑산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려했던 거창한(?) 계획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접을 수밖에 없다.

하늘이 앞길을 막으니 서운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여행도 좋지만 비를 맞으며 다닌다는 것은
남 보기에도 청승맞을 일 아닌가?

날씨 때문에 기대했던 여행을 떠나지 못했을 때
서운한 것은 애들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내가 서운함을 애써 감추려 하지만
22년을 살 맞대며 함께 살아왔는데
눈짓 하나에도 무얼 뜻하는 것인지 어찌 모를 리 있겠는가?
아쉬운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진데....^^*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엔 뭘하면 좋을까?
아내랑 눈, 코 맞대기(?) 시합하는 것도 하루종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집에서 특별히 소일거리가 없으니 어딜 가긴 가야 하는데.......

앞뒤 베란다로 오가며 쉼없이 굴리는 잔머리...
내 머리가 돌인데 굴려봤자 자갈밭에 자갈 굴러가는 소리밖에 더 나겠는가?

이유불문하고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일단은 밖으로 나가고 보는 것이다.
밖에 나가면 반드시 어디로든 통하는 길이 있으니까......

"일단은 나가자"는 결정이 내리고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물론, 아내에게 사전 양해조차 구하지 않고서 무례(?)를 범할만큼
내 간은 크질 못하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곤 하는 나의 치밀함은
모두 과거의 쓰디쓴 경험으로 부터 얻은 지혜다.
후환이 조금이라도 두려울 땐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최상책이다.

"어~이! 아홉시 반까지 어제 그곳으로 나와~! 알았제?"
".....그래 알았어~!"
일방적인 나의 통보는 그에게 선택을 위한 망설임의 틈조차 주지 않았다.
누구에게든 생각할 틈을 주면 다른 궁리를 하게 마련이니까.....

승용차의 뒷 자석에 나란히 앉은 아내와 그녀,
두 사람은 첫 대면을 하는 사이였지만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어색함같은 것은 느껴지질 않는다.
내 입장에선 다행스럽고 또 고마울 일이 아닐 수 없다.

두사람이 화재거리 바꿔가며 대화가 끊임이 이어지는 사이에
쉼없이 쏟아지던 빗방울도 점차 가늘어지고
남녘 하늘에서부터 먹구름의 틈새도 보이기 시작한다.



"백련이 활짝 핀 무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작정(?) 오다보니 우리들의 고향 무안이다.
마침 연꽃축제가 끝난 다음날이었기에 북적이지는 않을 것이리라......
예쁜꽃이 두 송이 씩이나 곁에 있으니
다른 꽃을 더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만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아니했던가?

계획했던 홍도여행도 포기한 마당에
오늘하루만큼은 아름다운 꽃속에 푹 파묻혀 살리라~!

금계국이(이 놈들은 봄이건 가을이건 시도 때도 없이 핀다.) 피어있는 길을 따라서
구불구불 아스팔트길을 20여분 달렸을까?



하얀연꽃이 핀다고 해서 "백련지"라 불리우는 넓디넓은 화산방죽엔
몇 몇 무리의 사람들이 방죽을 가로질러 놓여진 다리위를 오가며
연꽃을 구경하거나 연방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을 뿐
비가 갠 연꽃방죽이 평온하고 상큼하다.

수련, 백련, 가시연, 부레옥잠, 물양귀비,
불청객처럼 한쪽 귀퉁이에 숨어서 피어있는 몇 송이의 홍련....
방죽에 빽빽히 들어찬 연잎들은 제각각
지나가는 실바람에 몸을 내 맏긴 채
간밤에 내린 빗방울을 모아 만든 커다란 은구슬을 굴리며
흐느적거리는 풍경을 보는 마음이 느긋하고 여유롭기까지 하다.

문득, 짓궂은 한 오라기의 바람이
흐느적거리던 연잎의 긴 다리를 툭 치며 지나가는 순간
노리갯감 은구슬을 방죽에 통째로 쏟아버린 연잎이
화가 난 듯 고개를 쭈삣 일으켜 세우며
멀어져가는 바람을 향해 노발대발 소릴 지르듯 한 광경이 재미있다.

비가 갠날의 연방죽을 한바퀴 도는 동안에
점심때가 되었는지 뱃속이 허전하게 느껴질 무렵
그녀가 건네주는 연잎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연방죽을 바라보는 것 만큼 시원하고 달콤하고 상큼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그래~! 먹는 즐거움만큼 큰 것이 세상살이에 또 무엇이 있더냐?
여행을 떠나지 못한 서운함을
근사한 점심으로라도 보상하고 싶은 생각에
왔던 길을 되돌아 무안읍으로 길을 재촉하는데
무엇이 그리도 급한 것인지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요란스럽기만 하다.

(2004, 9,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