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그친 아침 (2003, 4, 14)
늦은 저녁무렵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밤새 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셔 놓고
동틀 무렵엔 구름도 말끔히 걷혀서
상큼하기 그지없는 아침입니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계절풍을 따라서 대륙의 뿌연 황사가 불청객으로 오곤 했으나
올 봄은 때를 맞춰 내려주는 비 덕분에
어느 해 봄 보다 새 생명들의 꿈틀거림으로
더 분주하고 상큼합니다.
나는 일년을 사는 동안에
갈증을 삭혀 줄 여름날의 소나기와
풍요를 가져다 주는 가을비와
쌓인 먼지를 씻어내리는 겨울비를 기다리곤 하지만
동토를 녹여 생명이 있는 만물의 잠을 깨고
설레임까지 주는 봄비라서 더 간절하게 기다리곤 합니다.
비가 갠들녘엔봄빛도한층 푸르러 싱그럽고
논도랑으로 모여든 빗물이샛강을 향해흘러갈 때
나도샛강을 따라쪽빛바다까지 유유히 흘러가는 상상도 합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면삶의 과정에서 거칠어진 마음도
물처럼 그렇게 유연해지기도 한다던데......
푸르다 못해서시린 쪽빛의 맑은 물을 바라 보고 있노라면
마음속의 응어리와 탁한 찌꺼기들도 모두 녹고 또 씻겨진다던데........
실제로 그러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돌아설 때못내 아쉬워서
"생각날 땐 하늘을 보겠노라"했던 그 날 그 말 한마디가
행여 아직까지도 응어리로 남아 있다면
오늘같은 봄빛 푸르른 들녘에 서서
숨 한번 크게 내 뱉어 허공중에 흩날려 버리거나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내도 좋을 일입니다.
서둘러 핀 꽃이 비바람에 져 아쉽고 애처로울 수 있으나
그 자리에 새잎이 돋고 열매를 맺기 위한 진통이라 생각하면
비에 젖은 채 썩어가는 그 뒷모습까지도 아름답게 보이듯이,
내 안에 머물던 상념을 훌훌 털어내 버리고
그 빈자리엔,
봄빛처럼 상큼한 일들로 가득 채워 넣어 새 살을 돋게하고
알찬 열매로맺힐 수있도록바램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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