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평지보다는 며칠 늦게 피는 주암댐이 있는 대원사 계곡에 다녀올 생각으로
퇴근을 하자마자 서둘러 집에 돌아와보니 그럴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공부엔 썩 관심이 없는 고2 아들녀석에게
마지막 남은 끈이라도 붙잡고 싶어 과외선생님을 붙여줬으나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않는다며 불평을 하는 녀석이 심난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녀석의 초등학교 시절엔 "잘"이라는 개념을 접어야 했고,
중학교땐 "어느 정도"라는 개념도 접긴 했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최소한"이라는 마지막 남은 바램을 접지 못한 채 바둥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녀석을 볼 때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먼저 앞서곤 하는 이유는
생김새는 물론이고 초저녁 잠이 많은 것이나 공부에 소질없는 것 까지도
나의 학창시절 모습을 쏙 빼닮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녀석에게 모질게 공부를 강요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쫓기는 쥐도 막다른 곳에선 사람을 물려고 달려든다'는 속담도 있듯이
녀석을 윽박지르다 보면 금방이라도
"아빠는 학교다닐 때 공부 잘 하셨냐"는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입니다.
이런 아비들이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공부를 안(못)해서 이 모양 이 꼴이니
내 자식만큼은 못난 아비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고.......
자기합리화 치곤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과
못난 아비 보다는 자식의 삶이 더 낫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순수한 마음임엔 틀림없습니다.
공부도 안 했고 책도 안 읽은 아비가 볼 때
자랑거리일런지, 아니면 답답할 일일런지 모르나
녀석은 시도때도 없이 독서만 하고 있으니
이런 면에선 나보다 나은 점도 있긴 있습니다.
녀석이 지금까지 학교와 관련하여 상을 받은 건
고등학교 1학년 종업식을 하는 날 받아왔던 '독서상'이 유일한 상인데
전교에서 1년동안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많이 빌려간 사람에게 주는 상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공부엔 관심이 없으면서도 책읽기에 집착만 하기에
한번은 녀석이 나들락거리는 도서대여점에 까지 찾아가서
녀석한테 책을 대여해 주지 말라는 당부까지 한 일도 있었으니
대입 준비에 모든 집중을 해도 시원찮은 판에
책읽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녀석이 심난스럽고 답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으론 기왕 공부는 제쳐놓은 마당에 책이라도 많이 읽어서
교양이나 견문이라도 넓혀놓으면 세상살이를 하는데 있어서
약간의 도움은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으니
차라리 마음이 편할 일입니다.
편한 마음으로 하루쯤 상춘을 즐기고 싶었는데
세상사 모든 것이 뜻대로가 아니란 것을 다시한번 실감합니다.
내가 낳은 자식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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