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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부부생활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7:55
(2003년 03월 11일 화요일)

지난 일요일,
시외로 바람이나 쐬러가면 좋겠다는 아내의 바램도 묵살을 하고
다리에 힘이 받쳐주질 않아서 쉬고 싶다는 친구녀석을 억지로 끌어내
산으로 향했던 게 실수였습니다.

번잡한 곳을 싫어하는 친구나 여유로운 산행을 하고싶은 나나
포근한 날씨라서 사람들로 붐비는 산길이 썩 마음내키지 않았던지라
집에 있던 아내들을 나오라고 해서 점심이나 하는 게 좋겠다며
중간에서 하산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스게소리 중에 "짚세기도 없는 놈이 신고 다니면 추하게 보이지만
있는 놈이 신고 다니면 멋있게 보인다"고 하듯
어렸을 때 질릴만큼 먹고 살았던 꽁보리밥도
오랜만에 봄나물에 한그릇씩 비벼 먹으니,
고기반찬에 흰쌀밥보다 감칠맛이 나는 건 물론이요
값싼 꽁보리밥 한그릇으로 아내에게 생색내는 것도 괜찮습니다.

비록 아내가 바랬던 시원한 바닷바람과 싱싱한 회는 아닐지래도
외식을 싫어하는 남편이라서 매 끼니를 집에서 챙겨야만 했던 번거로운 일을
하차잖은 꽁보리밥 한그릇으로 덜어줄 일이라 생각한다면,
아침에 아내의 바램을 묵살한 것에 대해서
너무 옹색하게 자기변명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흔히들 부부는 오래일 수록 닮는다고 들 하지만
나는 나이가 들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바로 부부생활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혼때 곧잘 양보를 할 줄 알던 사람이
나이가 들 수록 자기주장을 앞세우거나
감춰놓고 홀로 삭히곤 했던 하차잖은 불만도
날이갈 수록 스스럼없이 털어놓곤 하는 것을 보면
당연스러운 변화라 여기려 하면서도 내심 당혹스러울 때가 더러 많습니다.

어떤 유머에
"결혼은 '판단력' 부족으로 인해 이루어지며,
이혼은 '인내력' 부족으로 인해 이루어지고,
재혼은 '기억력' 부족으로 이루어진다"는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이유는
결혼이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순간 보다는 심난했던 일들이
기억속에 더 오랫동안 남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세가지 중에 어느것 하나 쉽지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쉬운 것처럼 쉽게쉽게 이뤄지는 것을 보면,
세상의 변화에 다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여길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부부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좋을 때에 잘 지내는 것보다는
헝클어졌을 때 빨리 엉킨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요령이라며
일상에서 언쟁이 아닌 진솔한 대화를 자주 해야 한다며 버릇처럼 주절거리지만
막상 부닥치고 나면 나의 입 안에는 거품이 먼저 물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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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술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7:53
(2003년 03월 07일 금요일)

술이란 묘한 심술을 부리는 놈이라서
언짢을 땐 더 아래로 밀어내리거나 좋을 땐 더 위로 올리고,
평소의 소심한 사람들에겐 만용까지도 부릴 수 있도록
두둑하게 뱃심도 넣어주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 보면
감추고 싶어했던 내면까지도 훤히 들춰보이니
아주 고약한 심술통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술에 관해서 만큼은 사연이 많은 가문이기에
술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이 있거나 당당하지 못합니다.
할아버님과 아버님께서 말술을 드셨던 집안의 내력 영향을 받은 탓인지
나 또한 남들보다 주량이 결코 뒤지지 않는 편입니다.

다만 한가지
할아버님의 그리 개운치 않으셨던 술취한 뒷모습 보다는
술을 드시고서도 그리 헝클어지지 않으셨던 아버님을 닮아선지
술을 마신 이유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아직껏 싫은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아온 것은
내 스스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나의 일상이 재치나 유머완 상관없이 살아서인지
"아빠는 술을 마시면 재미있다"라는 아내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술을 마시고서 추한 모습을 드러내는 짓은 하지않은 것 같으나
"술과 매에 장사가 없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내게도 술에 얽힌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몇 년 전 늦은 여름에 고향바다로 망둥어낚시를 갔다가
바다속에서 마신 술에 취해서 친구와 아내가 나를 부축해 끌고 나와
승용차에 테우고 집에 까지 데리고 왔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집의 안방 천정이 눈에 보이던 부끄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보다 적게 마시고도 그토록 취하게 된 이유를 아직도 알 수 없으나
그날 함께 갔던 친구의 부인께서
아직까지도 그 아픈 상처를 심심찮게 건드릴 때마다 웃어넘기곤 하지만
그런 과거사 때문에 그날 이후론 술에 관한한 별로 큰소리 치지 못하고 삽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아내는 "당신 술 그만마셔"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남편의 술버릇에 관해서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술에 관해선 그런 점도 있긴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불만과 불평이 많은 내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낙제점의 남편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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