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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29 43, 편지
  2. 2007.07.29 42, 홀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

43, 편지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7:49
( 2003년 02월 28일 금요일 )

아담한 감방산 바로 아랫녘에 자리한 나의 고향마을은
건너마을에 전기가 들어 온 몇년 뒤까지도 램프와 호롱불을 켜고 살았기에
방학때면 어두침침한 호롱불아래서 잠시 헤어졌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이틑날 아침 10리나 떨어져있는 면소제지의 우체국까지 가서 편지를 부치고 나면,
부지런한 놈들한테서는 일주일여만에 답장이 오기도 하지만
어떤 게으른 놈들한테서 보내온 편지는
방학이 끝나 내가 고향을 떠나온 이후에 도착하곤 해서
개학을 해서 다시 만났을 때 답장을 보냈니 안 보냈니 하면서 티격거리곤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뒤에 도착한 편지는 어머님께서 장농속에 보관해 놓으셨다가
내가 다시 고향에 내려갈 때 건네주시곤 해서
겨울날에 쓴 편지를 화창한 봄이 되어서야 읽을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편지란 상대방이 생각날 때 쓰지 않으면 차일피일 미뤄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
게으른 녀석들에게 있어서 편지를 쓰는 일이란 마음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편지가 늦게 도착한 이유는 보나마나
답장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개학이 가까워 올 무렵에야 나의 질책과 후환이 두려워서
기껏해야 두어줄의 인삿말을 써서 보낸 형식적인 편지일게 뻔하지만
그래도 이런 녀석들은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는 녀석들입니다.

'편지는 써 놨는데 어찌하다 보니 부치지 못했다'는 녀석에겐
내일이라도 그 편지를 가져와 내밀며 증명이라도 해보라 몰아부칠 수 있지만
'편지를 보냈는데 왜 못 받아봤냐?'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놈들에겐
죄없는 우체부를 탓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받았을 땐 답장은 꼭 해줘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던 시절
친구들의 소식을 기다리며 우체부를 기다리는 마음이 참으로 희고 순박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무렵 어떤 친구들의 편지속에는
나름대로의 고민하는 모습들이 가뜩 채워져 있었고
어떤 편지 속에는 참으로 희고 고운 마음도 가뜩 들어있어서
가까이서 지냈을 때 느끼지 못했던 마음을 새로 발견하면서 부터
사이가 더 좋아졌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편지란 함께 있을 때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까지도 전할 수 있어 좋을 일이지만
그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보다 몇배 더 좋을 일입니다.

편지를 쓸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곤 하는 옛 기억들속에
호롱불 아래에서 편지를 쓸 때의 순박했던 마음과
하루에 한번씩 지나가는 우체부를 기다리는 마음과
어머니께서 장농속의 편지를 꺼내주실 때의 포근함까지도 함께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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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홀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7:46
( 2003년 02월 22일 토요일 )

국민학교를 졸업할 당시에 대부분의 여자 동창들이
신체는 물론 의식까지도 조숙했던 탓에
같은 동창 머스마들에겐 친구로 조차 여겨 주지도 않았으나,
그 친구는 일찍부터 외지로 떠나 살았던 탓인지
고향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항상 반기곤 해서
대하기가 편했던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졸업 이후 헤어진 뒤부터 그 친구가 결혼을 한 몇 년 뒤까지도
나와는 꽤 오랫동안 편지로 안부를 주고받던 사이였기에
내게 있어서는 어떤 남자친구들 보다 더 정겹던 친구였습니다.

편지가 왕래하던 꽤나 긴 시간들 동안
서로의 고민거리도 털어놓고 위안을 주고 받으며
다른 친구들의 소식과 함께 살아왔던 어릴 적 고향 이야기도 하면서
좋은 우정을 나눴던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그 친구를 만났던 일은
결혼을 해서 이웃마을인 친정에 왔을 때 한번,
그리고 몇 년 전 그녀의 친척이 별세했을 때 문상을 가서 한번 등,
졸업이후 두번을 만났지만
편지가 오갈 때처럼 편하게 느껴지던 친구였습니다.

그리고선 내가 결혼을 한 이후로 차츰 소식이 뜸해지기 시작하여 아주끊긴 이래
30여년 후인 지난 해 국민학교 동창회가 생기면서 부터 다시 연락이 닿게 되고
모임이 있을 때마다 만날 수가 있었고
옛날의 편지 대신 전화로 안부가 오가게 되었습니다.

어제 초저녁엔 그 친구한테 전화가 와서
이웃에 사는 친구들 다섯명이 1박 2일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기차역으로 나가는 길이라며
저녁 열시쯤에 목포역에 도착해서 찜질방 아무곳에서나 하룻밤을 지내고
내일은 가까운 섬에 갔다가 저녁기차로 다시 올라가겠다고 해서
"서방님은 어떻게 하고 밤기차를 타겠다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나이 50에 이런 자유도 없으면 어떻하냐며 오히려 내게 묻습니다.

내 친구, 여자 나이 50,
삶에 묻어있는 찌꺼기를 훌훌 털어내기 위해서
서방님을 집에 홀로 남겨놓고서
밤 기차를 타고 훌쩍 떠날 수 있는 나이,

여행이란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데 의미있는 일이고 보면
떠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을 일이며,
홀로서 야간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거나
부인을 보내놓고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으며
새로운 날을 준비할 친구 부부가 부럽게 느껴지는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친구의 여행소식을 들으며
"아내가 큰 냄비에 곰국을 끓이기 시작하면 긴장을 해야한다"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 건,
아내가 여행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채
가슴 한 켠에 일렁이는 찬 바람을 미리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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