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02일 월요일)
태풍(루사)이 휩쓸고 지나간거리엔
가을이 채 오기도 전에
끝내 버텨내지 못하고 저버린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광경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엔
단풍으로 곱게 물들어서 아름다워야 할 산하가
바람에 꺾이고 폭우에 씻겨 짙뭉게진 상처를 보며
자연의 엄청난 힘에 대한 두려운 생각에 소름이 돋습니다.
들녘에서 이제 막 이삭이 패거나 아니면, 고개숙일 벼가
거센 비바람에 쑥대밭이 되어버린 처참한 광경을 보며
내 어릴 적에 태풍이 휩쓸고 간 들녘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계시던
내 아버님 어머님 모습이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자연으로 부터 오는 시련은
항상 자연과 함께하는 이들로 부터 시작이 되는 것 만 같아
비가 내리고 천둥과 바람이 거셀 때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램하며 마음 졸이곤 합니다.
자연에 묻혀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쓰러진 곡식을 일으켜 세우고 휩쓸려 간 터전을 다시 복구하며
시련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일 줄도 압니다.
9월이 시작되면 제일먼저 가을의 소식을 전하고 싶었는데
때 늦게 찾아와 온 산하를 휩쓸고 간 태풍 때문에
마치 내 자신이 할켜지고 휩쓸려 간 듯
안타까움을 실어보냄이 썩 내키지가 않습니다.
바램이 하나 있다면
게으른 태풍으로 인해 그 동안 구석구석에 찌들어 있던 묵은 떼는 물론
심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근심과 걱정까지도 말끔히 씻겨져 내려서
맑게 정화된 마음으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남겨진 곡식들 만이라도
비바람이 지나간 뒤에 시작될 맑은 햇살과 시원한 바람에
더욱 충실하게 영글어
상처받은 영혼들을 조금이나마 달래 줄 수 있기를 빕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글 - 허공에 쓴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7, 지리산으로 떠나며 (0) | 2007.07.29 |
---|---|
26, 할미꽃 사진을 보며 (0) | 2007.07.29 |
24, 컴퓨터와 인터넷 음악방송 (0) | 2007.07.29 |
23, 내 친구녀석 첫번째 이야기(친구 부부) (0) | 2007.07.29 |
22, 비움과 채념 (0) | 2007.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