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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29 27, 지리산으로 떠나며
  2. 2007.07.29 26, 할미꽃 사진을 보며

27, 지리산으로 떠나며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7:08

(2002년 10월 13일 일요일)

고행일 수도 있는 산길 40여km,
나흘후인 17일 새벽에 홀로 길을 나서서 산길을 하루,
해질녘 쯤 대피소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새벽에 서둘러 밥을 지어먹고서 길을 제촉하여 하루를 더 걷고
해질녘에 하산해서 돌아오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동안 지리산 자락은 수없이 나들락거렸으나

종주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라 두려움이 없질 않으나

하늘에서 폭풍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마음의 변화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작심을 하고보니
전쟁터에 나갈려는 장수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습니다.

봄과 여름을 지나오는 동안
뿌리고 가꾸는 수고에 대한 그 결실을 걷워들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을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요로울 계절이겠지만,
걷워들일 것 하나없을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가을은
마음까지도 가난해 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나의 적지않은 욕심이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실제로 채워짐 하나 없는 사람이어서 그러는 것인지
결실의 계절인 가을임에도 마음은 텅 빈 듯하여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이런 느낌이 되풀이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번 산행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가능하다면 그 해답까지도 찾아 볼려는 마음입니다.

이제 이 나이정도면 대충대충 살아야 하는데도
작은 일 하나를 두고도 이리 재고 또 저리 재다 보면
하잘것없는 욕심 하나 털어내는 일에도
언제나 힘들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탓에 이번 산행을 하면서
보잘것 없어 부끄러운 내 자신의 내면도 깊숙히 들여다 보고
내 인생에 있어 남아있는 날들 만큼은
지난날들 보다 더 의연하게 살아 갈 다짐도 해 볼 생각입니다.

겨우 하룻밤 이틀낮의 시간동안의 산길에서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어 오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아니지만
가을이면 도지곤 하는 계절병만큼은
다시는 되풀이 하지않으려는 마음만 갖고 올 수 있다면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합니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산의 정상을 딛고 올라서는 순간
내가 걸어왔던 길을 바라보며
내 삶에 있어 작은 일 하나를 해냈다는 성취감만으로도 족할 일입니다.

다녀와서 다시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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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할미꽃 사진을 보며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9. 07:07
( 2002년 9월 06일 금요일 ) 몇 해 전 이른 봄에 春蘭 산채를 하러 깊은 산골을 헤메다가 우연히 양지녘에 피어있는 할미꽃을 발견하던 순간 고향의 언덕베기 양지녘에 피어나던 꽃을 다시 본 듯 하도 반가워서 한참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봤던 일이 있었습니다. 내 어릴적 이른 봄이면 고향의 들녘이나 묘지 등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든 피어났다가 꽃잎이 진 다음 은빛 머리카락 풀어헤친 채 봄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어 머리가 하얗게 쇤 내 할머니를 생각나게 했던 꽃이었지만 요즘엔 어찌된 영문인지 들녘에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볼 수가 없습니다. 진달래와 할미꽃을 함께 생각하면 의례 봄이 먼저 떠오르곤 하나 봄날 양지바른 묘지엔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이었기에 산소에 갈 때면 계절에 상관없이 할미꽃이 피어있는 산소의 옛 풍경을 회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흙만 있으면 뿌리를 내려 자리를 다 차지하고 마는 잡초들 때문에 햇볕만 잘 닿으면 잘 자란다는 잔디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밀려나는 터에, 묘지 주변에 피어있을 때 잘 어울리는 연약한 할미꽃이고 보면 억센 잡초들에게 쫓겨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산소의 잔디밭에 무성히 자라곤 하는 잡초를 없애려 이른 봄부터 늦은 여름까지 몇 차례 산소에 다녀오곤 하지만 뽑아도 뽑아도 없애지지 않는 잡초를 결국 추석무렵에 벌초를 하며 잘라내곤 합니다. 추석을 앞두고 고향의 산소에 벌초를 하러 다닌지도 15년 남짓, 몇년 전엔 벌초하는 일이 하도 고달퍼 아들놈을 데리고 갔다가 갈퀴질에 힘에 겨운 녀석이 불쑥 "아빠는 형제들도 많은데 왜 혼자 벌초를 하세요?"라는 한마디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어서 당황했던 이후로 또 다시 아들녀석을 데리고 갈 수는 없어 줄 곧 혼자서 다니다 보니 이 때만 돌아오면 나도 사람인지라 형제들에 대한 서운함이 없을 순 없습니다.
며칠 후 벌초를 하며 힘겨울 생각에 조금은 심난하기도 하지만 나를 더 심난하게 하는 건 주인을 잃고 오랫동안 텅 비어서 허름해져버린 옛집과 잡초에 무성히 덥혀있는 산소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나는 옛 기억속의 아련한 고향만 그리워 할 뿐 지척에 두고도 자주 가지않은 까닭입니다. 
지난 봄에 아내와 호수가 있는 음식점에 갔다가 그곳 마당 한켠에 할미꽃이 피어있어 사진을 찍어뒀던 적이 있었는데 사진을 정리하려다 그 사진을 발견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허튼 시간만 보내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선 이번 벌초하러 갈 때 야생화 화원에 들러서 한 포기 사다 산소에 심어놓고 싶은 생각도 없질 않습니다. 산소를 찾아 온 내 형제들도 할미꽃을 보며 옛 생각에 물씬 젖어 볼런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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