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13일 일요일)
고행일 수도 있는 산길 40여km,
나흘후인 17일 새벽에 홀로 길을 나서서 산길을 하루,
해질녘 쯤 대피소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새벽에 서둘러 밥을 지어먹고서 길을 제촉하여 하루를 더 걷고
해질녘에 하산해서 돌아오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동안 지리산 자락은 수없이 나들락거렸으나
종주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라 두려움이 없질 않으나
하늘에서 폭풍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마음의 변화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작심을 하고보니
전쟁터에 나갈려는 장수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습니다.
봄과 여름을 지나오는 동안
뿌리고 가꾸는 수고에 대한 그 결실을 걷워들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을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요로울 계절이겠지만,
걷워들일 것 하나없을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가을은
마음까지도 가난해 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나의 적지않은 욕심이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
실제로 채워짐 하나 없는 사람이어서 그러는 것인지
결실의 계절인 가을임에도 마음은 텅 빈 듯하여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이런 느낌이 되풀이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번 산행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가능하다면 그 해답까지도 찾아 볼려는 마음입니다.
이제 이 나이정도면 대충대충 살아야 하는데도
작은 일 하나를 두고도 이리 재고 또 저리 재다 보면
하잘것없는 욕심 하나 털어내는 일에도
언제나 힘들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탓에 이번 산행을 하면서
보잘것 없어 부끄러운 내 자신의 내면도 깊숙히 들여다 보고
내 인생에 있어 남아있는 날들 만큼은
지난날들 보다 더 의연하게 살아 갈 다짐도 해 볼 생각입니다.
겨우 하룻밤 이틀낮의 시간동안의 산길에서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어 오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아니지만
가을이면 도지곤 하는 계절병만큼은
다시는 되풀이 하지않으려는 마음만 갖고 올 수 있다면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합니다.
만약 그것도 아니라면
산의 정상을 딛고 올라서는 순간
내가 걸어왔던 길을 바라보며
내 삶에 있어 작은 일 하나를 해냈다는 성취감만으로도 족할 일입니다.
다녀와서 다시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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