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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3.21 32, 혹시 치매일까? 10

33, 아내없는 날.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9. 3. 25. 04:37

늦은 꽃셈추위라서
이른 아침 시간에 난실(蘭室) 문을 열어 놓으면 난(蘭)이 동해(凍害)를 입을 것 같고,
한 낮에 햇살이 내리쬐기라도 한다면 온도가 너무 많이 올라가 찜통이 될 일이라서
오늘은 쾌청한 날이 아닌 구름이 적당히 가려주는 날이길 바래며 집을 나왔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런 날
쏟아지는 햇살에 눈이 부시고 시리도록 파란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지금쯤 한증막이 되어있을 난실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10여 년 이상 줄곧 잘 키워오던 난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던 해에 관리 잘 못으로 반토막을 내고
이제 겨우 생기를 되찾아 가는 중에 또 다시 오늘같은 난감한 상황을 맞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난을 잘 키우시는 작은형님한테
줘버리지 못한 게 후회스럽기도 하다.

될대로 되겠지 하며 일에 집중하려는 그 시간에
"등기가 와서 오늘 배달할 예정"이라는 우체국에서 보내는 문자메시지다.
아파트 관리실로 전화를 해서 등기우편물 좀 받아놓으라 부탁 한 후
두어시간 쯤 뒤에 우편배달부한테서 전화가 왔다.

"일반 등기우편물은 관리실에 맏겨도 되지만 신용카드라서
사고가 나면 전달자가 책임을 다 져야하기 때문에
반드시 본인한테 직접 배달해야만 한다"며
어떻게 할거냐고 다그친다.

난감하다.
직장으로 가져오라 할 수도 없고
저녁에 다시 와 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카드회사로 반송을 하라 해놓고 나니 슬슬 짜증이 난다.

쓰고 있는 카드가 없는 것도 아니면서
별로 쓰잘데기 없을 것 같은 카드는 또 뭐할려고 만들자고 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청서같은 건 안 쓰는 건데 하며 후회해 봤자
버스는 벌써 떠나갔다.

집에 돌아오자 마자 베란다로 뛰어들어 갔다.
난실에서 한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이미해질녘이라서 상황은 이미 끝난 셈이다.

통풍이 되지 않아 눅눅한 냄새가 가득한 난실의 창문을 열며 주절거린다.

"오늘 한 낮의 일로 얼마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하겠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라 주인을 잘 못 만난 너희들의 운명이다"

텅 비어있었던 집안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청소기를 돌릴까 하는 생각도 잠시일 뿐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소파에 가로 누우니

간섭없는 세상을다 차지한기분이다.


지금까지 집 안에서 만큼은 대장 자리를 단 한번도
빼앗겨 본 적이 없는데도 이게 왠 해방감인가?
지금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아이들과

재회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아내가 하나도 안 부럽다.

머리맡에 놓인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평소 즐겨 보던 다큐멘터리 프로를 보다가
스르륵 잠이 들어 반 시간 쯤 잤을까?
춥다는 느낌에 눈을 뜨니 창밖엔 어느새 어두움이 짙게 깔려있다.

하루에 세 끼니를 먹고 사는 버릇이 몸에 벤 사람이라서
때가 되면 끼니 어떻게 떼울까 궁리를 하지만
아내가 있을 때도
고구마로 저녁 한 끼니를 떼우는 일이 다반사인데
한 끼 안 먹으면 어떠랴 싶어 저녁은 그냥 건너 뛰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거실과 안방에서 각각 TV를 차지한 채
한 쪽에선 질질 짜거나 발악을 해대는 드라마를,
또 한 쪽에선 뉴스나 오락프로를 보면서 시간을 보낼텐데
오늘은 혼자서 다 차지하니 내 세상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TV에선준 것 없이 미운 얼굴들만 보이고
채널마다 재미없는 프로만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럴 땐 일찌감치 잠이나 자는 게 상책이다.

2층에 살 때 보다는 공기가 건조해 코가 잘 막히는 터라
가습기 하나 사 놓자고 잔소리처럼 해대도
가습기 관리를 잘 못하면 오히려 건강에 안 좋다며
아내는 물수건을 빨랫대에 걸어놓곤 했었다.

아내가 하던대로 수건에 물을 흥건히 적셔서 빨랫대에 걸어놓고
죽부인을 아내삼아 한쪽 팔과 다리로 휘감은 채 잠을 청하려니
시간이 갈 수록 정신이 또렸해는 건 또 무슨 일인가?

평소에도 잠에서 한 번 깨어나기라도 하면
좀처럼 잠을 못 이루고 밤새 뒤척여야 하는 못된 잠버릇이라서
이 기나긴 밤을 어떻게 지새야 하는지 생각하면 심난스럽기만 하다.

잠을 자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5분도 되지 않아 금새 잠에 취하곤 하는 아내는

지금 쯤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2009,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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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혹시 치매일까?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9. 3. 21. 06:58

아내가서울로 출발할 때 까지는 아직 하루의 여유가 있으나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한테 갖다 줄 반찬거리를 미리 챙기느라
분주하게 서두르는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봄나들이나 함께 다녀오자"는 남편과
싫든 좋든 꼬박 하루를 집밖에서 함께 지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말이 봄나들이지 목적이 따로 있다는 걸 모르는 아내도 아니다.

그럼에도 함께 갈 내 친구 부부의 몫까지 간식거리와 마실 음료수를 챙기며
겉으로나마 싫지않은 표정으로 따라나서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다.

약속장소에서 친구부부를 만나

며칠 전에 갔을 때 꽃망울만 맺혀있던얼레지 군락지에 다시 들러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서
곡성의 석곡을 지날 무렵이 점심때라

끼니를 떼우려고그곳 면소재지의 식당에 들렀다.



( 화순의 얼레지가 피어 있는 계곡에서)

마침석곡 장날이라서 거리는 조금 번잡했지만
식당에 들어가니 손님이라곤 우리들 뿐이라서
주인의 심사가 어떻든 간에 한가로워서 마음에 들었다.

평소 뱃살 걱정을 하느라 고기는 왠만하면 멀리 하려고 했으나
며칠 전 아내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
그냥 지나쳤던 게 걸리기도 해서 주저하지 않고 고기를 시켰다.

오랜만에 고기로 배를 채우고
사진을오랫동안 했다는 주인양반의 사진 경험담을 들은 후

식당 문을 나설 때까지도
내가 그곳에서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다.

햇살은 밝지만 연무가 끼어있는 날씨라서 썩 탐탁스럽지는 않았으나
기왕 나선 김에 며칠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구례의 산수유가 피어있는 마을로 거침없이 달렸다.



(구례 산동에서.....)

미리 듣고 있었던 소문대로

현천마을 산수유는 작년에 비해허전해 보였지만

기념이라도 삼으려고 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곳에 올라사진 몇 장을 담고선
곧장 산수유 축제를 한다는 산동으로 향했다.

10여분 남짓 걸려산동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무심결에 주머니를 더듬으니 있어야 할 전화기가 없다.

행여 승용차 안에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차 안을 이잡듯뒤졌으나 없는 전화기가 나타나 줄리 없다.

며칠 전에잊어 먹었던 랜즈 캡을

새로구입을 한 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이젠 전화기까지 잊어 먹었다 생각하니

요즘 내 꼴이참 한심스럽다.



( 위 사진에 있는 동그라미 부분을 크게 보기 위해서 crop,

내 아내는 계속해서 내 전화기로 신호를 보내는 중 *^_^* )

기왕먼 거리를 왔으니기념으로 한 장 담아가고 싶어

예전에 봐뒀던 자리로 가서셔터를 몇 번 눌러대 보지만 재미가 없다.

산수유도 작년만큼 아닌 것 같고

오랜 가뭄에 계곡에 물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전화기까지 잊어먹었다 생각하니

사진 찍는 일이 재미없어지는 건 당연할 일이다.

아내는 혹시 누군가가 남편의 전화기를 주어 보관하고 있을까 싶어
쉼없이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

표정으로 볼 때 아무도 전화기를습득하지는 않은모양이다.

만약계곡이나 낙엽속에 묻혀 있다 할지라도

신호를 보내면 소리가 나기 때문에쉽게 찾을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있어

친구에게 서둘러 사진 몇장찍게 하고선
산동마을을 벗어나왔다.

현천마을에 다시 들러

내가 다녔던 길을 따라 언덕베기를 올라가서 두리번거려 봤지만

있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얼레지를 담느라 엎드렸을 때 빠졌을 거라는 심증을 굳히며
서둘러 화순 한천쪽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친구의 전화에서 벨이 울린다.

"아, 왔다~!!!" 하는 친구의 말에

전화기를습득한 이로부터 온 전화라는걸 직감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었던 음식점의 아짐이 식탁에 올려놓은 전화기를 주어 놓았다가
내 전화기로 마지막 신호를 보냈던 친구의 전화번호를 확인해서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주워서 보관을 하고 연락까지 해준 것으로도고마울 일이거늘

"신호를 수 십번 보냈거늘 왜 이제야 연락을 하는거야!"라며
불편했던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잃어버렸던 전화기는 그렇게나마 찾아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집에 돌아오는 중에도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 한켠이 썩 개운치가 않다.

잃어버린 물건은 이 처럼 다시 찾을 수도 있다.
만약 찾지 못할 땐
금전적인 댓가를 치루고서라도 다시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승용차 문을 잠궜는지 안 잠궜는지,
혼자 있던 집에서 외출하면서 전등을 껏는지 안 껏는지 헷갈려
다시 되돌아 가서 확인을 하는 짓을 해대는 건 정신적인 문제라서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

혹시치매일까?

200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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