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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3 31, 몸살이 틀림없었다. 4
  2. 2009.03.05 217, 내 누님같은 친구에게

31, 몸살이 틀림없었다.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9. 3. 13. 21:34

참 이상할 일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몸살은 육체적으로 지쳐있을 때만 치루곤 했던 행사였으나

피곤할 일 하나없는 나날의 연속에서

갑자기 초저녁부터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밤이 깊어 갈 수록 손끝에서 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쑤시고 힘이 빠진다.

듣기론 몸에서 열이 나는 건 몸의 어디에선가 생긴 문제에

스스로 저항을 하는과정에서 생겨나는 현상이라고 들 하던데

그런 열이 아니라 과로를 하여 몸살이 났을 때의 증상이 틀림없다.

뚜렸한 이유나 예고도 없이 시작된 몸살이

병원엘 안 가고 며칠동안 몸으로 버텨낼 때처럼

단 몇 시간만에 나를 지치게 하고 만다.

남들은 감기나 몸살같은 건

몸으로 버티며 이겨낸다고 들 하지만

내 경우에 있어선 시작했다 하면 시늉만 하고 지나가는 법은 없었던 터라

느낌이 이상할 때면 일찌감치 병원을 찾는 게 상책이었다.

그러나 자장이 가까워 오는 시간에

동네 병원이나 약국이 문을 열어놓고 있을 리가 없다.

약상자를 뒤져

언제 사 놓은지도 모를 해열제 한 알을 먹었으나

방을 뜨겁게 달구고 이불을 둘러 써도

춥고 온 몸이 쑤시는 건 마찬가지다.

날이 샐 때까진 아직도 멀었고

병원에 문을 열기 까지는 세월이라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밤새 끙끙 앓다가

새벽녘 쯤에 가까스로 잠이 들었나 보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꿈을 꿨다.

두분 모습을 더 또렸하게 보고 싶어

꾸었던 꿈을 다시 더듬으려니

꿈속에서 봤던 그림들이 희미하게 흩어져 버린다.

아내가 머리맡에 앉아서

간밤에 이마에 얹었던 물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며

병원엘 가야하지 않겠냐고 한다.

땀을 흘려버린 탓인지

아직 힘은 없으나 머리는 개운하다.

마음같아선 지금이라도 밖에 나가

시원한 바람이라도 쏘이고 나면 말끔히 나을 것만 같았다.

아침을 준비하려는 아내에게

"이유없이 하룻밤 몸살을 앓고 해열제 한 알로 나아보긴 또 처음"이라며

도데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어제 오후에 있었던 일로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 건 아니냐"며 묻는다.

아내가 어제의 일을 지금까지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는 갑자기 중요한 약속이 생겨

퇴근을 하자마자 그곳으로 출발할 수 있도록

아내에게 승용차를 가지고 회사 앞으로 와 달라고 했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아내는 오히려 10여 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평소에도 자주 막히는 길에서 난 사고때문에

어쩔 수 없이 늦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늦게 와 준 아내에게 짜증이 났고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몹시 긴장했던 것은 사실이나,

가까스로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해 일을 마치고 난 뒤엔

어판장에 들러 싱싱한 횟감과 꼬막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 와

모초롬만에 포만감을 느낄만큼 맛있게 먹기도 했었다.

아내의 걱정처럼 어제의 그런 일로 몸살을 앓는다면

날마다 싸메고 누어 지내도 부족할 일이다.

나는 누구보다 내 자신을 더 잘 안다.

그러나 마음이 아프면 심난스럽거나 침울해 지는 걸로만 알고 있었지

몸살을 앓을 수 있다는 건 솔직히 몰랐다.

그걸 미리 알고 있었다면

처음부터 "참 이상할 일이다"라고 시작할 게 아니라

"우울증이 올 줄 알았는데 하룻밤 몸살을 앓았다"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밤에 앓았던 몸살은

"내가 만들어 씌웠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몸부림을 쳐댈 때 생겨난 진통이었노라"고 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우울증인지 몸살인지가 중요한 건 아니다.

며칠동안 양심이라는 저울에 올려져 있느 무거운 짐을

이젠 내려놓아도 초연해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게

더 중요하다.

냉장고를 열어

대접에 냉수를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탄산음료가 아닌 맹물을 마셨는데도

꺼억하고 트림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2009,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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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내 누님같은 친구에게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9. 3. 5. 12:35

6년 동안 한 교실에서 머릴 맞대고 공부를 했던 사이에

두살 더 먹은 내 누님에겐

혈연이라는 근엄한 질서가 있어 그리 할 수는 없으나,

내 누님보다 한 살이나 더 먹은 자네에겐

동창이라는 명분을 앞세워감히 친구라 부름을 용서 해 주시게나.

내 기억속엔 함께했던 그 시절 6년 동안

단 한번도 짝꿍으로 함께 앉아 본 적이 없음에도

곱게 따서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뜨린 댕기머리와

웃을 때면 유난히도 실눈이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편하게 해 주던 친구의 어렸을 적 모습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네.

지금으로 부터 6년 전,

학교를 졸업하고 헤어진 지 35년 만에

부산에 사는 친구의 초대에서 자넬 처음 만났을 때

내 두 손을 덥썩 잡으며 반기던 모습은

세살 더 먹은 누님이 아니라 분명히 나의 옛 친구가 틀림이 없었네.

그로 부터 1년 쯤 뒤,

자넬 포함해서 여덟명의 친구들과 함께 단풍이 곱게 물든 설악산 산행을 할 때

좁디 좁아서 불편하기 짝이 없던 희운각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고

이른 새벽녘에 공룡능선을 걷기 시작해서 산행을 거의 마무리 할 무렵

정말 우연히남편을만난 자리에서서로 반가워 부부가환호성을 질렀었지.

산을 좋아해서 시도 때도 없이 산을 다니시는 동안

산을 닮아버려 산만큼이나 마음이 너그럽다던 분,

우리들 보다 한참은 연배이시면서도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해 주셔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셨던 분,

계곡에서 몸을 씻은 뒤

아내의 친구들에게 일일이 하산주를 부어 주며 너털웃음을 웃으시던

누구보다 건강하셨던 남편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네.

"우리 집사람은 나 보다 리찌등반(=암벽등반)에 전문가라오"하시면서

은근히 아내를 자랑하시던그런 그분께서

자넬 혼자 두고 세상을 훌쩍 떠나셨다는 비보는

누군가가 몹쓸 장난을 쳤거나 잘 못 전해 온 소식이길 바랬었는데

그게 벌써 한달 전에 있었던 일이라니 도무지 믿겨지질 않네.

아무리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게 세상사라지만

그렇게 건강하셨던 분께서 그렇게 훌쩍 세상을 떠나셨다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사람의 일일세.

흔히 들 기쁨은 나눌 수록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눌 수록 작아진다는데

친구라 하면서도 평소에 안부조차 묻지 못한 채 살아 온 까닭에

그 슬픔을 함께 나눌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건

참으로 미안하고 애석할 일이 아닐 수 없네.

앞으론 장성한 자식들의 더 많은 관심과 손녀 손주의 재롱이

항상 든든했던 이의 빈 자리를 대신해 주리라 믿지만

그 자리를 다 메울 수는 없는 일이라서 실로 가슴이 아프네.

세상을 살다 보면

아내가 곁에 있음에도 이 세상엔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에

못 견디게 외로울 때도 있데.

아주 가끔씩은 고향에서 함께 자랐던 친구들이 가까이에 있어

고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데.

비록 지금까진 단절한 채 살아 왔으나

앞으론 서로 사는 곳을 가까이 지나칠 때나 언뜻언뜻 생각이 날 땐

스스럼없이 안부라도 전하며 살아가세나.

35년 만에 부산에서 만났을 때 처럼 반갑기만 하고

설악산 공룡능선을 함께 걸을 때처럼 든든해 할 것 같네.

우린 친구니까........

친구의 슬픈 마음을

어떻게위로를 해야 좋을 지 몰라

한참동안 허공만쳐다보다깊은한 숨 내뿜으며 스르륵눈을 감네.

뒤늦게나마

삼가 머리숙여 고인의 명복을 비네.

2009,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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