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53병동의 일기(3, 수술 후 첫날)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8. 08:12

00시 30분,
내 아내와 아들, 그리고 둘째형님 내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나는 내가 누워있는 곳이 수술실이 아니라 병실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입은 무언가로 움직일 수 없도록 단단히 고정되어져 있었기에

아내에게 팬과 종이를 달라고 해서

누운 채 보지도 않고 글을 써서 내 의사를 전달하기 시작하고

아내는 내가 묻는 말에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00시 40분,
여덟시간이 가까운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깨어났다는 사실과
내 곁에 아내와 아들과 형님내외가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든든했다.
입에서 쉼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아들녀석이 잠 한숨 안 자고 뽑아내며 아침을 맞았다.

10시 00분,
지난밤 늦게 귀가를 하셨던 둘째형님 내외께서 다시 오셨다.

11시 00분,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얼굴 파노라마 사진과 가슴 X-RAY 사진을 찍고 내려오니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아빠곁을 지켜줬던 준영이가
군에 입대를 하기 위해서 초췌한 모습으로 떠난다.
비록 보충역이긴 해도 훈련소까지는 바래다 줘야하건만
하필이면 내 모양이 이꼴이니..........가슴만 쓰리다.


13시 40분,
어제 석양에 수술실로 배웅을 해 줬던 형제들이 시골 누님댁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병원으로 오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어서 일일이 손을 잡았다.
동위의 친구 경남이가 병문안을 와서 반갑고 고맙기 그지 없으나

많이 일그러진 얼굴 보다는
시간이 지나서 조금이라도 더 괜찮아진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8시 00분,
형제들이 모두 떠나고 아내와 나만 남았다.

20시 30분,
주치의(유재식)가 병실로 와서
입을 고정해놓은 테입을 떼어내니

손으로 쓰는 문자대신 비록 불편하긴 해도 입을 통해서 가까스로 의사소통을 하니

답답함이 한결 가셨다.

요로에 끼워놓았던 소변줄을 빼냈다.
내 몸에 달아놓은 줄 하나를 떼어낸 것에 불과하지만
느낌만으론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오줌이 마려울 땐
이제부터 내 발로 걸을 수 있겠다 싶으니
그것만으로도 좋다.

이젠 골반뼈를 떼어낸 곳에 피를 고이지 못하도록
밖으로 피를 유도해 내는 핏줄과
팔에 꼽아놓은 링거만 떼어내고 나면 되는데.......

2007년 6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