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게 왜 이런 일이(5)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5. 29. 13:06

신경치료를 위해서 동네의 치과병원에 예약시간을 맞춰서 갔다.
첫날 열개의 이 중에 일곱개에 구멍을 뚫어신경을 죽이는 약을 넣어 놓았기에
이 날은 나머지 세개만 하면 되는 거라서부담은 없었지만
긴장이 되는 건 첫날이나 마찬가지다.

진료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날씨 탓인지 머리에선 땀이 솟아나 흘러 내리고
모니터에 비춰놓은 구멍뚫린 턱뼈와 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내 신세가 참으로 심난스럽다.

"오늘은 갯수가 적으니 부분마취만 하겠습니다"라며
의사가 잇몸에 마취제를 주입하고 30여분 쯤 지날 때 치료가 시작되었지만
나도 모르게 겁을먹고 있었는지
"심장이 뛰는 모습이 보이네요"라며 의사가 웃는다.

내 스스로를 생각하기에도 나는 참 겁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 주사를 맞기 시작하면서 부터 생겨났던

주사에 대한 두려움이 이 나이들어서도 여전하니

병원에 갈 때마다 내가 감수해야 할 일들에 대해
죽을 때까지 의연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

기다렸던 시간에 비해서 치료시간이 짧다고 해서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신경치료를 시작하려고 다음 예약을 하려는데

6일 후인 다음주 수요일에나 가능하다니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 내 입장에선 답답할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차례를 정하는 건 병원측의 사정과 권한이라 어쩔 수 없다.

첩첩산중,설상가상......
이 모든 것들이 요즘 나를 두고 만들어진 말들인 것 같다.

곧 아물테니 걱정말라고 했던 조직검사 부위에서 솟아나오는 고름은
날이 갈 수록 농도가 더 짙어지는 듯 싶고
양도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느낌이라서

심난스럽기 그지없다.

지난 해에 무성히 뿌리를 내렸던 쑥과 잡초를없애기 위해
이른 봄에 제초제를 뿌려놓은 이후 가보질 못했던 산소에
수술을 하기 전에 한번 다녀오고 싶어 아내에게 의향을 물었더니

함께 다녀오자고 한다.

한달에 한번있는 모임에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없지않겠지만
남편 혼자 내려보내고 걱정하는 것 보다는
따라가 주는 것이 더 마음편했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미리 예상은 하고 왔지만잡초가 무성한 산소를 보는 순간

속이 뒤틀린다.
형제 중에 누군가 단 한번만이라도 산소에 들러봤더라면
보기싫게 자란 잡초 쯤은 뽑아 없애버렸을 법도 하건만
그런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어서 서운하기 이를데 없다.

아직도 정리조차 되지 않은부모님의 유산은 물론이고

부모님 살아 계실 때부터관심조차 두지않은 산소를 생각할 때마다

내 스스로가 피곤해지곤 해서 아예 생각을 하지 않으려거나

생각이 난다고 해도 털어버리려 애를 쓰는 건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다른사람들은 아무런 걱정도 없이 잘만 사는데
나 혼자만 심난해 하면서 사는 건 참으로 억울할 일이니까.....

조상님의 산소를 십 수년간 혼자서 벌초를 해 오면서

뼈저리게 느낀 사실 하나는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을 해야한다는 사실이며,
자식들의 성의가 있다면

자식들의 대까지만 뼈가루를 적당한 곳에 보관을 하던지
아니면 산이나 강에 뿌려야만 할 일이다.

산소란 후손들이관심을 갖지않을 땐
두번 죽거나 죽어서도 추한 꼴로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양심은 남아있고 입은 살아서
"조상의 음덕은 너 혼자서 다 받겠다"라는 말을 던지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너무 화가 나고 싫다.

조상의 음덕을 받고자 하는 게 아니라
후손으로써 당연히 해야만 할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무는 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제 몫을생각하는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데 대한 불만이다.

모든 속담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세상사의 일들을

잘 표현해놓았는지 감탄을 하면서도
그 중에 단 한가지단호하게 부정하고 싶은게 있다면

그게 바로형과 아우와 관련된 속담이다.

매사에 자기의의무를 다 하는 과정에서

권리를주장하는 것이 순리이고떳떳할 일일진데

그렇지 않을 땐짜증이 날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내와 함께 보기싫게 자란 잡초를 손으로뜯다

땀을 식힐 겸 허리를 펴니

논배미를 사이에 두고 지난 이른 봄에 묻혔던 친구녀석의 묘가 빤히보인다.

녀석의 묘에 덮었던잔디가멀리서 봐도 제법 파란 옷을 입었다.

아내는 내게 "풀을뽑고나서 한번 들리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지만

"빈손으로 가기가 부끄럽다"며 바라만 보다 떠나오고 말았다.

집에 돌아오니 밤 아홉시다.
조직검사를 하느라 떼어낸 곳에선 쉼없이 고름이 나오고
급기야는 턱이 많이 부어오른 상태에서 통증까지 생겨나

도무지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약 상자를 뒤졌으나 진통제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비상약으로 사 놓은 감기약 두알을 입에 털어넣고 잠을 청했다.
아무래도 내일은병원에 전화라도 해 봐야 할 것 같다.

2007,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