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下)꼬이고 꼬였던 2006년 지리산 종주산행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2. 23. 00:45

2) 둘째날.

세석에서 장터목대피소를 거쳐 천왕봉까지는 6.8km, 부지런히 걸어도 세시간은 족히 걸리기에 일출시간을 맞추려고 새벽 2시에 짐을 챙겨 대피소를 나섰다. 그러나 촛대봉 쪽을 향해 가고 있는데 어둠속에 길을 막고 서 있는 검은 그림자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일출과 일몰 2시간 전후론 야간산행 금지"라며 다시 숙소로 들어가서 3시 30분 이후에 출발하라고 한다. 대피소에서 근무하는 요원인 듯 싶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난감해 하며 우리의 입장을 전했으나 "나는 시키는대로 할 뿐"이라며 본인 스스로를 아무런 권한도 없는 허수아비로 비하를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이라서 대피소로 다시 내려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포기할 수는 없어서 대피소 뒷길로 돌아나와 랜턴을 모두 끈 채 촛대봉쪽으로 어두운 길을 더듬거리며 다시 올라가려니 길 한복판에 30여명 쯤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누가 설명을 안 해줘도 야간산행을 하다 잡혀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다. 그 무리들 중 누군가가 우리들을 향해서 "그 자리에 앉아서 산행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세요"라고 강압적인 어투로 명령을 한다. 아까 그 산지기인 듯 싶었고 난감한 일이었지만 시키는대로 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누군가에게 잡혀서 주저앉혀 있기란 초등학교 다닐 때 길 가장자리에 있는 가마니에서 고구마를 빼먹다 잡혀 본 이래로 처음있는 일이라서 내 꼴이 우습기만 하다. 이 정도면 1년을 벼르며 기다렸던 천왕봉의 일출, 아니 5년동안 꼭 한번은 접해보고 싶었던 천왕봉 일출은 포기해야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우리가 아니라 산지기라서 아쉬운 위치에서 협상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산객들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고생한다"는 취지에서 부터 시작해 "예전에 하지 않았던 짓을 왜 새삼스레 누가 시켜서 하는 짓이냐?"며 고성도 오갔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아쉬운 사람이 샘을 판다"고 했다. 서로 협조하고 양보를 하자며 산행이 가능하다는 시간까지 남아있는 90분을 양쪽에서 반반씩 나누자는 나의 제안에 산지기가 가까스로 수락을 한다. 일행들은 결국 45분 동안 어두컴컴한 산길에 잡혀있다가 2시 45분에야 천왕봉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고 서둘러 가면 일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간산행은 주변의 풍경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반면에 앞 사람의 발뒤쿰치만 보며 걷는 일이라 더운 한 낮에 하는 산행에 비해서 훨씬 힘들지가 않고 산행속도 또한 한낮에 비해 오히려 빨라서 산행거리만 따진다면 오히려 더 능률적일 수 있다. 천왕봉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 산행객들이 주로 투숙을 하는 장터목대피소까지 단숨에 걸었다. 장터목에서 고사목이 서 있는 제석봉까지, 그리고 마지막 난코스인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가 힘겹긴 해도 바로 눈앞이 목적지이고 그곳에 올라서면 그토록 소원했던 천왕봉의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은 들지만 주저없이 걸었다.

그러나 일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아니, 이미 출발할 때부터 일은 터져있었다고 해야 더 정확한 말이다. 앞서가던 내가 뒤를 따르는 친구들에게 마지막 힘을 다 내라는 뜻으로 "여기서 뒤쳐지면 산에 놔두고 그냥 갈거다"라는 반협박성 농담을 하자 뒤에 따르던 은숙이가 "승용차 열쇠는 내게 있는데 그게 무슨 말씀?" 하면서 되받아 치는 순간과 동시에 터져나온 외마디 비명 "아이고 승용차 열쇠!!!" 그러면서 하는 말 "호텔의 가방속에다 열쇠를 놓고 와버렸다"고 한다. 그 순간 제발 농담이길 바라는 다섯명의 일행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동시에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서 서로의 얼굴만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승용차 열쇠가 없으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것인데 그렇다고 그 먼길을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승용차가 있는 곳은 첩첩산중이고 지리산 천왕봉 부근에선 전화통화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이런 상황을 두고 설상가상이라고 하는 것일까? 실로 난감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으로 천왕봉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일찍 도착해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발디딜 틈도 없다. 겨우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지리를 잡고 동녘을 바라보니 붉게 물든 아름다운 서광에 승용차 열쇠 걱정은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동녘의 하늘빛이 하도 아름다워서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을 잊어버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20여 분을 그렇게 넋을 잃고 동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동그랗고 붉은 덩어리 하나가 구름위로 불쑥 솟아오른다. 그 순간에 사람들이 일제히 "와~!!!"하는 함성을 지르며 하루를 열어주는 해를 천왕봉에서 맞이했다. 해는 하루도 어김없이 뜨고 지며 어느 곳에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선 3대가 덕을 쌓아야만 한다"고 할 만큼 아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며, 실제로 지난 4년동안의 종주를 할 때마다 천왕봉에서의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한번도 일출을 볼 수 없었는데 종주 다섯번째인 오늘에야 처음으로 일출다운 일출을 맞을 수 있기에 그 감격이란 유별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천왕봉 표지석을 앞세우고, 일출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난 다음에야 모두들 제 정신으로 돌아 온 듯 싶었다.



어찌 되었든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하산을 해야만 될 일이었다. 전화통화가 되는 위치를 찾아서 은숙이가 가입해 있는 자동차 보험회사로 전화를 했으나 보험에선 열쇠를 가져다 주거나 만들어 주는 일은 자기들의 업무영역이 아니라는 답변만 있을 뿐 우리가 원하는 도움은 조금도 되어주질 못했다. 결자해지라 했던가? 일을 저지른 은숙이가 퀵써비스를 생각해 냈다. 전화안내의 도움을 받아 남원에 있는 퀵써비스와 어렵싸리 연결이 되어 구례 산동의 온천지구에 있는 호텔에 문을 열고 들어가 열쇠를 가지고 200km는 족히되는 거리인 경남 산청의 대원사 계곡에 있는 하늘아래 첫동네로 아침 9시 30분까지 가져다 주는 일을 해 주는 댓가로 5만원을 주기로 했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거저 먹는 셈이라서 일행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또 하나, 경남 산청의 대원사 계곡으로 하산을 하려면 빨리 걸어도 6시간 이상 걸린다는데 퀵써비스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까지 하산을 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할 일이라서 하는 수 없이 일행들은 천천히 내려오라 하고 혼자서 뛰기 시작했다. 중봉과 하봉, 그리고 써레봉에서 한참을 더 내려와 치밭목대피소에서 타는 목을 축이고 이끼 낀 계곡을 뛰어내려 오며 두번씩이나 미끄러운 바위를 밟아서 넘어졌다. 산을 오를 때보다 땀으로 온 몸이 축축하게 젖었다. 이때부터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도데체 이게 무슨 짓인가?"라며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승용차를 세워 둔 곳, 즉 퀵서비스를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10여 분 늦게 도착을 했다. 그러나 약속대로라면 먼저 와서 기다려야 할 퀵서비스가 10시를 넘기고 10시 30분이 되어도 모습을 나타내기는 커녕 전화통화 조차도 되질 않아서 울화가 치밀었다. 친구들이 하산을 한 뒤에도 한참만인 11시 30분이 되어서야 나타난 퀵서비스, "오다가 길을 잃어버려 헤메다 늦어졌다"는 그의 변명치곤 유치하기만 했다. 어찌되었건 승용차 열쇠가 있어서 숙소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지만 호텔을 비워줘야 하는 12시 까지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또 한번 속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크고작은 일들로 꼬이기만 했던 산행이었지만 계획대로 무사히 마무리는 되었다. 산행 후 일상으로 되돌아온 한참 뒤 어느날 복영이가 "앞으로 지리산 종주를 하면 차라리 마누라를 데려가겠다"는 푸념을 내려놓는다. 왠만한 건 그냥 삭히거나 넘겨버리곤 하는 그가 무등산 중머리재 정도나 오르내릴 연약한 부인을 데리고 종주를 하겠다니 이번 산행을 하면서 적잖게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첫 산행때만 빼놓고는 4년동안 8월 초 제일 무더울 때 종주를 해 왔던 터라 "내년엔 철쭉이 피어날 무렵인 5월하순이나 6월초가 좋지않겠냐?"고 넌즈시 물었더니 앞으로 종주를 하려면 짐을 최대한 줄이고 하잔다.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나의 여섯번째 지리산 종주 계획이 세워진 셈이다.

하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산행이었기에 잊어버리지 않을려고 지루하게 산행을 했던 만큼 지루하게산행기를 썻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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