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上)꼬이고 꼬였던 2006년 지리산 종주산행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2. 23. 00:26

1,준비와 출발.

5년 전 처음으로 지리산 종주를 시작한 이래로 매년 꼭 한번씩 어김없이 해 왔던 산행이라서 극심한 악천후가 아니라면 길을 더듬거리거나 잃어버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출발지에서 부터 시작해 하산지점까지 등산로의 샘터, 쉴 곳, 도착시간, 출발시간 등 어느 해 종주계획 보다 더 세밀하고 완벽하게 계획을 짜야했던 이유는 평생에 한번이라도 지리산 종주를 꼭 한번 하고 싶어 했던 산행이 그리 익숙치 못한 초등학교 여자친구들을 셋씩이나 데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2006년 8월 2일 오후, 한참 폭염이 쏟아 내릴 시간에 광주에서 친구들을 태우고 지리산 온천지구에 정해놓은 호텔이 아닌 경남 산청의 대원사로 향해야 했던 이유는 하산 후 숙소로 귀환하기 위해 서울에서 오는 은숙의 승용차를 그곳에 두고 은숙을 숙소로 데려오기 위함이다. 규정속도 80km에 10%를 더해서 최고 88km 이상으로 달려선 안 되는 88고속도로를 타고 경남 함양까지 가서 그곳에서다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해산청IC로 빠져나와 어두워진 산길을 버벅거리며 대원사 계곡의 하늘아래 첫동네에도착하니저녁 여덟시다.그곳의 한 음식점에 양해를 구하여 주차를 시켜놓고 다시 120여 km 거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열한시가 넘었다. 여행을 온 것도 아니건만 세화와 미경이가 몇날 몇일을 먹어도 다 못 먹을 만큼 가져 온 짐 중에 산으로 가져갈 것만 가려서 각자의 베낭에 챙겨놓고 나니 새벽 한시가 다 되었다.

힘든 산행을 하기 위해선 충분히 잠을 자 둬야 할 일이건만 집에서 나서면서 부터 300km 이상을 쉼없이 운전을 해서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긴장을 해선지 잠에 들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로 출발하고자 했던 네시를 맞았다. 세화친구가 가져온 보신탕으로 아침을 서둘러 먹고 남은 건 돌아와서 먹을 심사로 냉장고에 넣어 볼려고 했으나 조그마한 냉장고 속엔 이미 다른 것들로 빼곡하게 차 있어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신랑한테도 주지않고 친구들을 위해 챙겨 왔다는 걸 버리게 생겼으니 세화의 마음이 많이 서운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승용차로 산행깃점인 성삼재까지 올라와 그곳에 친구들을 내려놓은 다음 주차료를 아낄 심사로 시암재 휴게소로 내려와 주차를 해놓고 그곳에서 택시비 5천원을 주고 성삼재까지 다시 올라와 친구들과 합류를 하니 다섯시 반. 산행에 동참키로 했던 서울의 윤석친구가 뜻하지 않았던 일로 불참을 하면서 여러가지 크고작은 일들이 자꾸 꼬이기 시작했만 상쾌한 산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행을 시작하고 해가 뜨기 직전에 노고단에 도착하여 멀리 반야봉 능선으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순간 조금은 혼란스러웠던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워진다.


노고단재에서 임걸령에 이르는 순탄한 산길엔 산객들을 환영이라도 하려는 듯 길 양옆으로 무수히 피어난 노란 원추리와 보라빛 모시대와 우유빛 박새와 붉은 동자꽃엔 맑은 이슬을 송알송알 매달아 놓은 채 아침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이며 황홀경을 이루고 있다. 비록 일년 중 가장 무더운 시기라 할지라도 산길에 피어난 아름다운 들꽃들과 이른 아침의 맑고 깨끗한 산기운 덕분에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라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산에 잘 왔다는 생각과 산에 대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여름 산행 중 가장 먼저 챙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물이다. 지리산 종주를 처음 할 무렵엔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출발할 때부터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운 채 산행을 시작해서 적잖게 힘이 들었으나 종주를 되풀이 하는 동안 성삼재, 노고단, 임걸령, 뱀사골, 총각샘, 연하천, 벽소령, 선비샘, 세석, 장터목 등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터 빈 물병만 챙겨서 산행을 시작하곤 했다. 갈증이 느껴질 무렵에 도착한 임걸령 샘터엔 몇 무리의 사람들이 물을 담아 서둘러 출발을 하거나 끼리끼리 모여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몇년 전 친구 복영이와 둘이서 화엄사에서 출발하는 2박3일 산행을 할 때 연하천대피소의 훨씬 전에 있는 총각샘을 찾을 때까지 적잖은 낭패도 경험했던지라 자신의 물이 떨어지면 남에게 얻어마실 안일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힘들더라도 반드시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울 것을 친구들한테 권했다. 여름의 아침햇살은 일찍부터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비록 산길이 그늘진 숲이라 할지라도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금새 한 낮의 온도만큼 올라버린 산길을 걷다보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적셔버리고 물을 금방 마셨는데도 갈증이 생긴다.

임걸령에서 연하천대피소까지는 약 7.3km, 지리산에서 산행 속도는 1시간에 보통 2km를 걷는 것으로 할 때 연하천까지는 세시간 반 이상을 걸어야만 하는 거리, 그 사이엔 반야봉으로 오르는 노루목과, 뱀사골대피소로 내려가는 화개재가 있고, 화개재에서 쉼없이 올라도 1시간 쯤 걸려야 올라갈 수 있는 토끼봉을 오를 땐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바람마져 불어주지 않아서 친구들의 거친 숨소리만 요란하다.

여름산행을 하다보면 다리가 힘들어 보다는 숨이 가파 쉬어 가곤 하는데 이땐 물 한모금 오이 한조각도 자기의 베낭속에 든 것을 꺼내 없애므로써 등에 진 짐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어지는 건 평소에 약삭빠르지 않은 사람들도 산길에선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등산을 할 때 목적지가 가까워 올 수록 베낭의 무게는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나 복영이와 나의 베낭은 오히려 더 무거워져 가는 이유는 힘들어 하는 여자친구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그들의 짐을 덜어 대신 짊어진 때문이다.

연하천 대피소는 50명 밖에 수용할 수 없는 비좁은 곳으로 2004년도 2박3일 종주산행을 할 때 복영이가 산길에 가로 누워있던 주목의 공이에 이마를 찧어 상처를 입은 덕(?)에 대피소 예약이 되어있지 않았음에도 환자라는 구실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밤을 새웠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 여름 밤이면 산객들이 대피소의 앞마당에서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싶은 보석같은 별들을 헤며 하룻밤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벽소령까지는 약 6km로써 3시간 쯤의 거리지만 성삼재에서 연하천까지 13km를 걸었으니 이때부턴 심신의 피곤함이 밀물처럼 몰려 올 때다.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다음 물을 구할 수 있는 대피소인 벽소령까지 가기엔 어중간하기 때문인지 많은 산객들이 제각각 이른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숙소를 나설 때 챙겨온 주먹밥이 있었기에 연하천에서는 물만 보충해서 그곳에서 1시간 반쯤 거리(3.5km)에 있는 형제봉까지 와서 바위 그늘에 점심을 폈다. 하루만 하고 하산을 할 산행이라면 갖가지 음식을 싸와 여유롭게 맛을 음미하며 점심을 즐길 수 있으련만 갈길이 먼 우리들에게 있어서 점심이란 오늘의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힘을 축적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일 뿐이었다.

등에 짊어진 짐을 꺼내 뱃속에 넣었을 뿐인데 산길에서 뭘 먹고나면 왜 더 힘이 드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친구들의 일그러진 표정과 거친 숨소리를 조절하면서 형제봉에서 1시간을 더 걸어 벽소령에 도착하니 마치 목적지에 다 온 듯 반갑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선비샘까지는 순탄한 길이나 그곳을 지나고 부터는 지리산 종주코스 중에 제일 난코스가 있다. 이 힘든 코스를 통과하기 위해선 충분한 휴식으로 힘을 축적해야만 했기에 "20분만 쉬어가자"고 했더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은숙과 미경이 긴의자에 길게 눕거나 탁자에 머리를 대고 토막잠에 빠져들고 세화는 등산화를 벗어서 발맛사지를 한다. 등산을 할 때마다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해 주곤하는 복영이가 친구들의 물통을 모두 가지고 대피소 아래에 있는 샘터로 내려가 물을 길러온다. 복영이라고 어찌 힘이 안 들겠는가?





벽소령 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 까지는 직선거리로 6km 남짓, 어떤 이들은 이 코스의 거리를 대략 10km쯤으로 잡곤 한다. 벽소령에서 40분쯤 거리에 있는 선비샘에 이르니 지치거나 목마른 산행객들이 목을 축이거나 앉아서 휴식을 하고 있다.

선비샘엔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지리산의 한 기슭인 덕평마을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우지 못하여 무식한데다가 얼굴마저 추하게 생겨 사람들로 부터 홀대를 받고 사는 한 노인이 있었다고 한다, 선비처럼 고결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 소원인 이 노인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여인네를 만나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게 되었으나 끝내 소원도 이루지 못한 채 가난한 일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한다. 이 노인이 "내가 죽으면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뜨자 자식들은 유언대로 장례를 치뤘다한다. 이날 이후 지리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저마다 샘터에서 물을 마실 때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합장을 하게 되니 죽어서나마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게 되었다는 전설이 바로 그것이다. 직장 친구와 첫 종주를 하던 해의 이른 새벽에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가 1시간 동안이나 어두운 산 속을 헤마다가 가까스로 선비샘까지 되돌아와 길을 찾았던 일이 있어서 이곳에 올 때마다 그때의 무용담을 늘어놓곤 한다.

선비샘을 출발하여 한참동안 거친 숨 헐떡이며 힘겹게 오르다 보면 시야가 툭 트이는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덕평봉이다. 이곳에서 서면 동북쪽으로 멀리 천왕봉이 바라보이니 그 모습만으로도 어찌나 반가운지 마치 천왕봉에 다 온 착각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바로 앞에 지금껏 왔던 산길보다 훨씬 가파른 칠선봉과 영신봉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기분을 만끽할 여유가 생겨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덕평봉에 이르러 잠깐 쉬는 사이에 쵸콜렛을 꺼내 뜯어먹는 모습이 과자를 먹는 게 아니라 마치 씁쓸한 칡뿌리를 씹는 듯 싶은 미경의 표정을 보며 웃었지만 초행길 산행에 악천고투를 하면서도 친구들한테 미안할까봐 한가닥 내색조차 하지않고 묵묵히 따라와 주는 그가 무척이나 고맙고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산길이 험할수록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일곱선녀가 노닐다가 간다는 칠선봉, 온갖 형태의 기암들과 그 암벽에 당당히 자리잡고 서 있는 늘푸른 노송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을 바라볼 땐 내가 마치 선계에 와 있는 듯 넋을 잃어버리기에 충분하고, 영신봉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면 숨은 턱까지 차 오르는데 이럴 때 말을 시키는 사람들이야말로 얄밉기 그지없다. 이럴 때 쯤이면 하고픈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걸었다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아서 계단의 한 중간쯤에 가쁜 숨을 고른 다음에 올라야만 한다. 계단의 끄트머리가 보이는 순간엔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대피소가 지척에 있다는 생각에 지칠대로 지친 다리에서 새로운 힘이 불끈 솟아오르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영신봉에 오르고 나면 넓게 트인 세석평전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에 겹겹이 쌓인 피로가 말끔히 씻어내리는 듯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넓다란 세석평전엔 댕기처럼 길게 늘어뜨리며 빨갛게 피어난 산오이풀, 한 여름인데도 탐스럽게 피어난 가을꽃의 대명사인 구절초, 지리산에만 있다는 지리터리풀, 길다란 꽃대 끄트머리에 보라색 꽃무리를 매달고 핀 비비추, 바위틈새마다 뿌리를 박은 채 노랗게 피어난 바위채송화 등 온갖 꽃무리들이 산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야 말로 이 시기가 아니면 또 볼 수 있을까?

새벽부터 시작해서 부지런히 걸어온 탓에 낙오자 없이 목표했던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저녁식사와 밤을 새우기 위한 준비로 여념이 없다. 사실 지금에야 속마음을 털어놓건데 초행자들을 데리고 성삼재에서 세석까지 왔다는 것은 너무 무리한 산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5년동안 지리산 종주를 매년 꼭 한번씩 해 오면서 매번 일출시간에 맞춰서 천왕봉에 올랐지만 한번도 일출다운 일출을 보지 못했던 터라 이번 산행에서 만큼은 꼭 일출을 접하고 싶은 생각에 일출시간을 맞출 수 있는 세석대피소로 목표를 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이 잘 따라와 주고 여유있게 도착해 준 것에 대해 고맙고 다행스러울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둠이 내릴 무렵 대피소 아랫쪽에 있는 샘터로 내려가 간단하게나마 몸을 씻고나니 이대로 아무곳에나 누워도 잠이 잘 올 것만 같다. 밤하늘엔 남쪽에서 북쪽으로 은하수가 선명하게 흐르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초롱초롱한 별들로 수놓아진 풍경이 내 어릴적 모깃불이 피어오르는 고향집 마당 멍석에서 어머님 무릅을 베고 누워 바라보곤 했던 그 밤하늘처럼 정겹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여름날 밤은 산중에서 그렇게 깊어만 가고 내일 새벽 이른 시간에 이틀째 산행을 위해서 숙소에 들어가 잠을 청해야 했다.

산행 첫째날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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