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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새벽에 만나는 사람들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0. 11. 30. 01:57

동녘으로 치솟는찬란한 태양과

강변에피어오르는 환상적인 물안개와

들녘에 내려앉은 멋진 아침안개와

숲으로 내리는 눈부신 햇살과.......

눈앞에 펼쳐질 멋진 그림을 내 맘대로 그려놓고

잠들기 전에챙겨 놓았던 베낭에빠진건 없는지다시 확인을 합니다.

단잠에 취해있는 이가 깰까봐 조심스레 밖으로 나와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길을거침없이 달려갑니다.

그리고 얼마 후 목적지에 도착해서어둠속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그림을 앞에 두고

집을 나서기 전에미리 그렸던그림이 아니라서쓴웃음을 짓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실망할 때가 아니라며,

어쩌면썩 괜찮은 상황으로 바뀔수도 있어 기다려야 한다며,

세상살이에 요행도 있는 거라며,

먼저 와있는이들에게인사를 건네며 적당한 자릴 잡습니다.

이심전심이라서낯선 이들과쉽게 이야기가통합니다.

가끔은 서로 챙겨 온 먹거리나 따끈한 차를 나눠 마시기도 하며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정보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설자리가비좁거나 사람들로북적이는 곳이라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가 됩니다.

좁은틈새를비집고 들어오는이와

자리만큼은고수하려는이가 서로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어쩌다눈치없이앞으로 나가서 머리를불쑥 내미는 사고를 치는 이에겐

누구라 할 것 없이 집중포화를 퍼부어 댑니다.

이런 상황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건

어떤 부류보다도 예민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바로 예술을 하는 이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계로 찍어내든 손으로 그리든 간에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활동의 영역에서 볼 때

사진이 예술이냐 아니냐를따지는건더 이상 의미없는 일입니다.

반면에내 자신이 하고 다니는 짓을예술이라 여겼다면

몸싸움에 소질도없고

무심결에 던지는 남의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마는 사람이라서

구경꾼이 아닌 상처 투성이로벌써 이 짓을접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 했거늘

구경꾼으로써 어느 한 편을두둔하려는 건 주제넘는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나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작품을 만들려고서둘러 나와 자릴 잡았는데

뒤늦게 온 이가작업을 방해한다면짜증이 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오늘 하루만 살 것도 아니면서, 또는오늘이 아니면 안 되는 것 처럼

남의 원성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고몸싸움을 해대는 예술인들의열정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든다'는 서양 속담도 있듯이

비좁은 곳이거나 사람들로 붐빌 것으로 예상을 한다면

남들보다 일찍 서둘러서 자리를 차지하거나,

정중하게 양해를 구해서 허락을 받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비집고 들어오며 남의 작업에방해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게

바른자세가 아닐까싶습니다.

3개월이면 세대차이가 난다는 디지털 시대에

5년이나 케케묵은 카메라는 구석기시대의 돌도끼나 다름이 없지만

예술이 아닌 재미로 즐기는데 있어이것도 내겐감지덕지한 물건입니다.

요즘들어 부쩍이나 '새 카메라언제 살거냐?'며다그치는 아내가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허나 좋은 카메라 갖고 다니면서도남들만큼못찍는다고 타박하지나 않을까 하는 소심함때문에

일을 저지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후환이 두려울 뿐만 아니라

순전히 재미로하는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허름한 이발관에 걸어놓아도 괜찮은그림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족할 일입니다.

2010,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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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적반하장(賊反何杖)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0. 10. 12. 06:54

지나는 길에잠시 그곳에 들렀다 왔다는 아내가

"예전에 약속했던사람을30분이나 기다리게 해 놓고서

만나자 마자 그냥 와 버린 적이 있었냐"며묻는 순간

잔잔했던 내 심사가 몹시도 요동을 칩니다.

몇 년 전에 있었던그 일을아주 잊어버린건아니었지만

약속이라면 상대방이 이해 해 줄 만큼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는걸 신조로여기고 살아 온 사람에게 있어선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특정 직업에 관련된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단체에

당시 종사자로 있던 친구의 권유로약간의 금액을 출자하고 회원이 된지도벌써 십 수년이 흘렀습니다.

그단체는출자금을기반으로 갖가지 수익사업을하는 동안

외형과 자본금이 불어남은 물론

이익금에 대해선회원들에게 서운찮게 배당을해 주는 터라

지금은그곳종사자들의 권유 보다는 스스로회원이 되길 원하는 이들이꽤나 많은모양입니다.

회장은회원들이 선거를 통해4년마다 선출을 하게 되는데

회장이 되는 순간부터지역 내에서 신분상승은 물론이고조직 내인사권과 경영권까지행사할 수 있으니

회장이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력은 절대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경쟁이날로 더해 가는 건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희미한 기억속엔

회장 선출을 위한투표를 지금까지네번 쯤 참여했던것으로 기억되는데

앞선 두어 번의 선거는관심이 없었던 터라회장의 얼굴도 모른 채 지나갔고

세번째선거때 부터는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간다는 걸

여러 정황을 통해짐작할수 있었습니다.

선거를 몇 달 앞에 둔 지금으로 부터 4년 전쯤

식사나 함께 하자는 제의가 들어 올때면

어떤 이유를 앞세워거절을 해야 좋을까 하고궁리만 해댈 뿐이었습니다.

먹으면 찌는 체질이라서저녁만큼은거르며 사는 상황이그리 중요했던 건아닙니다.

나를 만나겠다는취지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평소 사람 사귀는 일에 익숙치 못한 내 입장에선

일면식도 없었던이와마주 앉아서 음식을 먹는다는 게그리 편할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요청에 인사라도 나누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

가까운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선 시간이 되기 전에 미리나갔습니다.

마침 저녁시간이라서 손님들로북적거리는 식당엔 빈자리가 없어서

계산대 앞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약속시간 10분 전부터기다리기 시작해 약속시간이 지나또 다시 10분, 20분, 30분.....

가끔씩빈 자리가 생길 때마다 식당 주인은한 자리를 차지해서앉기를권하지만

느긋하게앉아 밥을 먹기엔 이미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그만 밖으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식당 밖에서서성대며 10여 분쯤더 기다리고 있을 때

어둠속에서정장차림의 한 남정네가 내 앞에 불쑥 나타납니다.

비록 초면이긴 해도나와 약속했던 사람이라는 걸알아채곤

반갑게 첫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심사가 불편했던것도 사실이었으나

한 사람이라도 더만나려고 동분서주하는 이의입장을이해 못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그 무렵 직장에서 야근을하고있을 때라서

출근준비를 서둘러야만 할 시간이었습니다.

저녁에 일을 하러 간다는 걸 내보이기 싫어서

"사정이 생겨어쩔 수 없이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정중하게 양해를 구한 뒤 집으로돌아 오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치룬 선거에서그사람이 당선되었다는 소식은

그가 보내 온 '감사의 말씀'이라는 우편물을 통해서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내 자신이 그곳 회원 신분이라는 사실과

그곳에 맏겨 둔 약간의금전적 상황말고는 다른모든 건 내 관심밖의 일일 뿐입니다.

올 초부터 그곳 종사자로 있는 아내의 친구를 통해

식사나 함께 하자는 말을 전해 듣기 시작하면서 부터

벌써 선거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짐작할수가 있었습니다.

밥이란 마음편한 이들이 아니라면 불편할 뿐이라는생각은 4년 전이나 지금이나마찬가지라서

먹은 거나 다름이 없다며 감사의 뜻을 전해 드리라고 했던 적이 서너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내로 부터

4년 전의 일이 당사자를 통해서전혀 다르게 바뀌어 있는 현실을 확인하는 순간

당시에 그 상황을너그럽게 이해하려 했던 게후회스럽고 우습기만 합니다.

바쁘게 사는 이들에게 있어선기억의 혼돈이일상적일 수도, 그리고 나완 상관없는 일이겠으나

그로 인해 내 자신의이미지가 우습게 되어있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썩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껏단 한번도 세상살이를 가볍거나 우습게 여겨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이렇게 우스운 일도 경험하며 삽니다.

도둑이매를 든다는 뜻으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나무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자기 논에 물 대기라는 뜻으로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도 자주 씁니다.

이 또한 사전에선 "자기에게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차잖은 일을 두고 도둑의 사례까지 들먹거린다는건 지나친 일이라 할 수 있겠으나

나도 사람인지라 황당해서자꾸만옹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객이 전도가 되어버린 그 사람의옛 기억을 다시 되돌려 놓고 싶습니다.

당시의내 사정이야 어찌되었든뵙자마자 왔던 건미안한 일이었다고....

그러나 기다렸던 시간은 30분이 아니라 한 시간이었노라고.....

그리고 기다린 건 당신이 아니라 나였노라고......

적반하장이든 아전인수든 상관없이

저녁은 굶고 사는 게 뱃살걱정 안 해도 되고 마음도 편할 일입니다.

마음 편하지 않을 누군가가그런 일을 두고 또 다시 내게저녁을 먹자고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저는 저녁같은 건안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201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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