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제 작년 여름날 화대종주를 힘겹게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다시는 같은 짓을 되풀이 하지 않겠노라던 마음속 다짐을 잊어버린 건 아니다.
그러나 길고 지루한 산길을 여섯 번째 걸었다는 의미 말고는
순간순간의 느낌과 기억들은 날이 갈수록 옅어지고
그 빈자리엔 그곳을 향한 생각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는 건
의학이나 심리학적으로 볼 때 평생 동안 치유될 수 없는 고질적인 병일 수도 있는 일이다.
일상의 어떤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선 결코 못 배겨난다는 걸
내 스스로가 잘 안다.
더구나 30년 만에 자유를 얻었으니
언제 어디로든 훌쩍 떠난다 해도 걸릴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느긋하지 못한 성격 탓에 사흘 전부터 산행지도를 펴서 계획을 세우고,
배낭에 담아야 할 물건들을 방바닥에 깔아놓으니
가짓수로는 만물상이나 다름이 없다.
그나마 2박 3일 동안의 식량을 포함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등에 짊어질 무게로 걱정 같은 건 되지도 않았다.
새벽시간에 화엄사까지 어떻게 가야할 것인지는
지리산엘 갈 때마다 으레 아내의 도움을 받아왔던지라 미안스럽고 고마울 뿐
집을 떠나선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 말고는 걱정할 게 없다.
어둠이 막 걷힐무렵 화엄사에 도착하니
고즈넉한 절집과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5월의 연초록과 잠에서 막 깬 산새들의 지저귐이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한다.
길눈이 어두운 아내에게 조심히 가라는 당부를 되풀이 하는 건
올 때마다 수고를 끼치는 일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화엄사에서 노고단의 코재까지 끊임없는 오르막을 걷는 일은
화대종주에 있어 힘든 구간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으나
세 번째 걷는 길이라 여기저기 눈에 익은 풍경들이 반갑기만 하다.
2년 전 여름, 7km쯤 되는 이 오르막길을 너무 서둘러서 걸었던 탓에
옆구리가 결려서 산행을 포기하려했던 고통을 겪은 뒤부턴
산길을 걸을 땐 결코 서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지라
함께 온 낙진을 앞에 세운 채 산길을 따라 갓피어난 연초록의 새싹들을 눈으로 훑으며 걸으니
비록 걸어야 할 길이 까마득하나 마음은 조급하지 않아서 좋다.
이마엔 땀방울이 치솟고 계곡에 햇살이 들 무렵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미리 준비해 온 아침을 먹으니
비록 반찬은 없어도 밥맛이 꿀맛이다.
가끔씩 스치는 산바람에 흐르는 땀이 씻겨가는 느낌도 좋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초록을 대신해서 막 피어난 진달래가 산객을 반긴다.
산 아래엔 철쭉이 한창인데 이제 막 시작되는 봄의 풍경을 새삼스러워 할 틈도 없이
어느새 노고단 대피소가 지척인 코재다.
화엄사에서 부터 코재까지는 4시간을 계획하고 걸었던 구간이나
2년 전 옆구리 통증까지 견뎌내며 서둘러 걸었던 시간보다 겨우 5분쯤 더 걸린 셈이라서
느리고 여유롭게 사는 게 삶의 지혜라는 걸 새삼 느낀다.
대피소에서물을 채우고 노고단재에 오르니
불이 난 듯 피어난 진달래가 온 산에 가득하다.
지난 4월의 늦은 꽃샘추위에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죽어갔던 진달래를
다시 보는 마음이 무척이나 황홀하고 반갑다.
오늘 산행계획 중에 반야봉 오르는 일과
지리산에 올 때마다 조금은 지루하고 힘들었던 토끼봉과 명선봉을 지나는 일 말고는
첫날밤을 지낼 연하천대피소까지는 12km의 거리라서 미리부터 여유가 생긴다.
한 여름의 노란 원추리와 보랏빛 모시대를 비롯한 온갖 꽃들을 대신해서
탐스러운 현호색과 노랑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 반긴다.
겨울의 지리산은 아직 만나보질 못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만
봄여름 가을의 지리산은 천상의 화원임에 틀림이 없다.
지리산 구간 중에 제일 평탄하여 걷기 쉬운 피아골삼거리와 임걸령을 지나
반야봉으로 가는 길목인 노루목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2003년 여름날 친구 복영이와 종주할 때 무척이나 힘겹게 올랐던 반야봉엘 올라서니
이제 막 맺은 진달래 꽃봉오리의 연분홍 속살이 부끄럽기만 하다.
때를 잘 맞췄더라면 진달래꽃으로 뒤덮인 반야봉도 볼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을 그곳에 내려놓고
삼도봉으로 내려 와 점심을 먹었다.
정상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아서 낫날봉 또는 날라리봉이라 불려졌던 봉우리를 두고
전남북 경남 등 삼도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라 하여 삼도봉이라 붙였다니
산 능선마다 금을 그어댄 듯하여 삭막해지는 느낌은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삼도봉을 지나서 뱀사골로 하산하는 길목인 화개재까지
길고 지루한 나무계단을 내려오는 일이 조금은 지루할 일이다.
또한 내려 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화개재의 길고 긴 계단은 종주를 할 때마다 썩 반갑지가 않다.
더구나 기나긴 오르막길의 토끼봉과
오르락내리락하며 산객을 지치게 하는 명선봉이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는 터라
계단 하나를 내려설 때마다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행히 토끼봉을 지나면서 부터
길섶 여기저기에 무리지어 피어난 얼레지가
"바람난 처녀"라는 꽃말처럼 치마를 홀라당 걷어 올린 채 산객을 유혹하며
이틀 후 대원사계곡으로 하산할 때까지 더없이 좋은 벗이 되어주었다.
온통 진달래로 빨갛게 덮인 토끼봉을 지나 명선봉으로 오르던 길목에서
우리처럼 연하천에서 1박을 한다며 발걸음이 천근만큼이나 무거운 한 남정네가 하도 걱정스러워
지난번 무등산에 갔을 때 내 친구 미경이가 준 우황청심원을 그에게 건네주고
첫날밤을 지낼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니 오후 네 시다.
해가 질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다.
5월도 어느덧 중순에 접어들었으나 산 공기가 차가워
저녁을 서둘러 먹고서 대피소 안으로 들어오니
우리보다 일찍 자릴 잡은 사람들이 벌써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다.
귀마개는 챙겨가지고 왔으나
집을 떠나선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내 생리적인 문제를 모르는 건 아니라서
미리 체념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옆에 누운 이의 코골이가 유난히도 요란스러워
날이 샐 때까지 옅은 잠조차 들지 못한 채 뒤척이다 말았다.
피곤하면 잠은 오게 되어있다는 말이
결코 누구에게나 통하는건 아닌가 싶다.
2010, 5, 13
둘째날
아직도 동면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붉게 치솟는 연하천의 태양이 무척이나 곱다.
잠을 자지 못한 탓에 맵고 시린 눈을 대피소 앞의 맑은 샘물에 씻으니
쌓인 오물이 맑끔히 씻기는 느낌이라서 개운하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몇 번의 지리산 종주를 하는 동안
새벽길을 떠나지 않고서 대피소에서 아침해를 맞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왕 느긋하게 마음먹은 김에 아침밥까지 먹고 나설까하다
그러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식전에 벽소령대피소까지 걷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맑고 시원한 기운이 아침햇살과 함께 산길에 가득하고
잠에서 막 깨어난 새들의 우짖음에
잠을 설친 무겁던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삼각봉과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하니
5시 40분에 연하천을 나선 지 1시간 40분만인 7시 20분이다.
햇반을 사서 뜨거운 물에 익힌 다음
아내가 챙겨 준 돼지고기에 김치를 넣고 끓인 찌게로 밥을 먹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산행 중에 베낭에서 먹거리를 꺼내 먹고 나면
같은 무게임에도 등에 질 때보다 몇 배는 더 힘이 들곤 해서
목마를 때 목을 축이는 일 말고는 왠만해선 잘 먹질 않으나
지리산에서 만큼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벽소령에서 덕평봉 초입까지는 완만한 경사라서 수월하지만
덕평봉을 지나는 길은 가쁜 숨을 쉼없이 헐떡거려야만 한다.
잠시 쉬었다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눈앞에 불쑥 나타나는 선비샘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벽소령에서 세석대피소까지 6.5km 산길의 중간에
덕평봉을 비롯하여 칠선봉과 영신봉을 쉼 없이 오르락내리락 거려야 하는 산길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구간이다.
하지만 오늘은 천왕봉을 지척에 둔 장터목대피소까지만 가면 될 일이라서
앞서서 걷는 낙진의 발걸음을 늦추려고
일부러 뒤에 쳐진 채 길섶에 핀 얼레지와 노랑제비꽃과 현호색에 눈길을 주며쉬엄쉬엄 걷는다.
영신봉에 오르기 직전에서 길섶에 피어있는 처녀치마 한 송이를 만났다.
야생에선 처음 만난 꽃이라서 무척이나 신기하고 반가웠으나
세석평전 초입에서 부터 촛대봉에 오르는 길섶에서는 제법 흔하게 눈에 띈다.
미리 세웠던 계획엔
세석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었으나
아직 열한시도 채 되질 않은 시간이라서
대피소 아래에 있는 샘으로 내려가 물통에 물을 채우고 촛대봉엘 올랐다.
철쭉이 필 때라면 훨씬 더 아름다웠을 세석평전을 상상하며
우리가 걸어온 산 능선을 따라 눈으로 훑으며 되돌아 가본다.
때마침 촛대봉 정상부근에서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내려오는
서른이 갓 넘었을 국립공원 사무소 직원을 불러 세워놓고
운해가 내려앉았을 때의 아름다운 풍경이 어떤지를 전해 들었다.
한번 올라오면 꽤나 여러 날을 대피소에서 지내야 한다는 젊은이,
가끔씩 산 아래에선 볼 수 없는 아주 멋진 풍경도 볼 수 있다지만
삶을 위해서 가족과 떨어져 일상을 산위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외로움으로 때로는 그리움으로 심난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촛대봉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장터목대피소까지는 불과 한 시간 남짓의 지척에 있다.
더구나 지리산 구간 중에 제일 멋진 삼신봉과 연하봉을 신선놀음 하는 듯 걸으니
마음은 여유롭기 그지없으나
세석에서 부터 조금씩 시큰거려 오던 오른쪽 발목이 장터목에 도착하자마자
움직이기 조차 불편스럽다.
오른 발목의 시큰거림은 여러 날 전 무등산을 오르내릴 때부터 시작되었던 터라
행여 큰 고장이 난 건 아닌지 은근히 긴장하며 걱정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서도 아직 오후시간이 통째로 남아있어서
천왕봉에 다녀오겠다는 낙진을 홀로 보내놓고
대피소 안에 누워 두어 시간 휴식을 취하니 발목이 한결 수월해진 것 같아
카메라만 챙겨서 천왕봉엘 올랐다.
올 때마다 늘 북적거리던 천왕봉엔 해질녘이 가까워 온 까닭에
인적이 뚝 끊어져서 오금이 저릴 만큼 고요하기만 하다.
혼자서 천왕봉 표지석을 다 차지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하산을 하려니
제석봉 부근에 내려앉은 구름이 예사롭지가 않다.
눈앞에 펼쳐지는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장면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제석봉까지 내려왔다.
실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구상나무를 배경으로
제석봉의 해질녘 풍경을 담아 볼 속셈이었으나
뜻하지 않게도 구름이 그려준 풍경을 만날 수 있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적잖은 행운이 아닐까 싶었다.
해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리자
일몰풍경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대피소로 다시 내려왔다.
하룻밤을 묵어가기 위해 몰려 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대껴야 할 일이 까마득하나
내일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마음이 그리 무겁지가 않다.
자려고 마음만 먹으면 잠을 이룰 수 있다는 사람들이 부럽다.
옆에서 무슨짓을 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죽은 듯 잠에 곯아떨어지는 사람들 또한 더욱 부럽다.
매사에 날을 세우지 않고
무딘 듯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더더욱 부럽다.
2010, 5, 14.
셋째날
지리산을 종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터목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으려는 뜻은
다음날 아침 천왕봉에서 일출을 맞이하려는 게 첫째 이유다.
세석대피소에서 일출시간에 맞춰 출발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야간산행을 허용하지 않는 한
일출시간을 맞추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나라 어디든 하루 한번 해가 뜨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채
수평선에서 지평선에서 그리고 산 능선위로 치솟는 일출을 맞이하는 일을
나큰 행사처럼 여기기도 한다.
새벽 3시쯤 화장실을 가려고 대피소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어서
잘 하면 멋진 일출을 다시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없질 않았다.
그러나 일출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장터목대피소를 나서려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그 많던 별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제석봉에서 부터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엔
산행객들이 밝힌 불빛으로 긴 행렬이 이어지고 있으나
하늘 하는 모양새로 봐선 기대를 일찌감치 접는 게 마음 편할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새벽 찬 바람에 몸을 웅크린 채
동녘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을 무렵
먹구름 틈새로 잠시 동안 빼꼼하게 내밀다 사라져버린 태양이 그나마 반가울 일이다.
일곱 번째 종주를 하는 동안
2006년 여름날 국민학교 친구들과 함께 왔을 때
천왕봉에서 일출다운 일출을 딱 한번 접했던 일을 두고
남들에게 내세울만한 일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우습기도 하다.
사람들이 일출맞이의 바램을 채 접지 못하고 있을 무렵
더 이상의 미련을 떨쳐내고 대원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중봉과 써리봉을 오르내리는 동안 숨이 가파질 때마다
차츰 멀어져가는 천왕봉을 바라보는 마음이 시원섭섭하다.
내가 살아갈 날들 동안
천왕봉엘 몇 번이나 더 올라 설 수 있을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산길이 재미없고 힘에 부칠 때면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생각이 앞서지만
지금까지 그랬듯이 또 다시 마음의 병이 도지지 않는다는 자신은 할 수가 없다.
천왕봉을 출발한 뒤 1시간 40분 만에 치밭목대피소로 내려오니
이른 아침 맑은 햇살에 연초록빛 잎사귀들이 싱그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산길을 걷는 동안 줄곧 즐겁게 해 줬던 얼레지가
하산길 어디쯤에서 부터 갑자기 사라지고 말아 못내 서운하다.
문득 겨울로 시간여행을 떠났다가 되돌아 온 느낌이다.
대피소 앞마당에 놓인 탁자에서 마지막 남은 김치로 찌개를 끓이고
햇반을 뜨거운 물에 익혀 이번 지리산 산행 일정 중에 마지막 밥을 먹었다.
치밭목에서 6km 남짓의 거리에 있는 유평마을까지는
비록 하산하는 길이라지만 오르락내리락하는 곳이 수없이 많아서
가볍게 생각하고 걸어선 낭패를 경험하기 딱 좋은 구간이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계곡의 산길을 걸으며 몸도 마음도 지치는 어느 순간부터
다시는 이 길을 걷지 않겠노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세재와 유평의 갈림길에서 차라리 세재로 갈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일 또한
몇 번씩은 하게 되는 참으로 지루한 구간이다.
세재와 유평 갈림길을 지나 한참을 더 내려오고 있을 무렵
계곡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곱게 피어난 금낭화를 만났다.
이 꽃 또한 야생에선 처음 만난 지라 신기하고 반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베낭속에 들어있는 카메라를 꺼내는 일조차 귀찮아서
눈으로만 가득 담고서 지나오고 말았다.
어쩌면 이 일을 두고서
또 다시 이 계곡을 마음에 담아둘런지도 모르겠다.
치밭목대피소에서 여덟시쯤 출발하여
잠시 시큰거리는 발목을 계곡의 시원한 물에 담근 일 말고는
쉼 없이 걸어서 유평마을에 도착하니 두 시간 만인 열시다.
다 왔다는 뿌듯함과 먼 길을 걸었다는 성취감도 잠시일 뿐
햇살에 달궈진 포장된 도로를 걷다보니 봄에서 성큼 한 여름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유평마을에서 부터 대원사를 지나
진주를 오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번씩 출발한다는 유평매표소까지
산길보다 재미가 없는 3.5km의 거리를 쉬엄쉬엄 한 시간이나 더 걸었다.
버스가 출발하기까지 남은 30여분 동안
2박 3일의 화대종주를 마무리하는 행사라도 하려는 듯
차표를 파는 가계에서 막걸리 한 독아지를 샀다.
그러고 보면 술에 대한 호감과 매력을 잃어버린 지도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이럴 때 하산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키는 기분이 어떻다는 것까지
잊어버린 건 아니다.
한 잔을 거침없이 들이키고 나서 또 한 잔을 더 마셨더니
뱃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치솟는 것 같다.
이제 남은 일이라곤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기만 하면 된다.
어떤 이는 단 하루 만에 걸었다는 길을
사흘 동안씩이나 걷기로 계획을 세웠던 건
30년 만에 얻은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느리게 걷다보면
그동안 잊고 살았던 마음의 여유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비록 처음 의도했던 일들을 이루지 못했다 할지라도
30년 동안이나 여유 없이 살아왔던 내 인생길에서
사흘씩이나 세상일 까마득히 잊은 채 외도를 해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10,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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