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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늙은 소 길들이기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1. 2. 19. 09:16

소쟁기로 농사를 짓던 시절엔

농사일 뿐만 아니라때가 되면새끼까지낳아주었기때문에

소 한 마리는 재산 목록으로 따진다면단연 으뜸이었습니다.

그시절 농촌에서 소라 하면없어선 안 될 일꾼이자재산으로써차지하는 비중도 컷던까닭에

소를 먹이는 아이를딸려놓아 농사철이아닐 때도 상전 대접을 받으며 십 수년씩이나 장수를 누렸으니,

세상에 와서1년 남짓 머물다도살장으로 끌려가야만 하는 운명의 요즘 소들에 비해선

썩 괜찮은 세상나들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시 소가 귀했던이유 중엔

발정기때숫소와의 짧은 만남이 이뤄질뿐이라서

임신 성공률이 그만큼 낮았기 때문이었을거라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소한테 먹일것 조차 부족할때라

형편이 넉넉치 못한 집에서소를 키우기란

여간해선 쉽지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소위 "씨압"이라는 게 있었는데

송아지를빌려다어미소로 길러서새끼를 낳게 되면

새끼는차지하고어미가 된 소는 주인에게돌려주는 것으로

정성을 쏟아 일 년 남짓잘 기르면 송아지 한 마리는 갖게 되는 것입니다.

소는새끼를 한 마리씩 낳는게 대부분이라서별 문제는 생기지 않았지만

쌍둥이를 낳는 경우엔 길러 준 사람이 두 마리를 다 갖었는지

아니면 한 마리만 갖고 한 마리는 어미소와 함께 돌려보냈는지는잘 모르겠습니다.

송아지가 자라 어미소가 되는 과정 중에반드시 치뤄야 하는 행사가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쟁기질을 배우는일입니다.

코의 생살을뚫어 코뚜레를 하고

목에 멍에를 걸친 채"질박기"라는 이름으로 쟁기를 제대로 끌 수 있을 때까지

주인과 실랑이를 벌려야만 하는, 소위일소라는 이름으로 거듭나는 고난의 행사입니다.


소가 농삿일에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시절이라

장에 내다 팔더래도멍에자국이 제대로 나 있는 소라야

제대로 값을 받을 수가 있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일 중에 공부도 때가 있듯이

소 역시 쟁기질도제 때에 길이 들여져야만 했는데

때를 넘겨버린소에게쟁기질을 가르칠 때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소 역시 무척이나힘들어 하는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에 박아놓은 것 한 가지만을 줄기차게 우려먹으며살다가

갑자기또 다른해묵은 것들을 끄집어 내려고 보니

엉킨 실타레처럼꼬여서 무척이나 당혹스럽습니다.

어쩌다가 나오는 건우려먹을 만한 게 아니라서 심난스럽습니다.

책을 펴놓고 뒤척거려 보나

하얀 건 종이이고 까만 건 글씨일 뿐입니다.

엊그제 부터 코밑이 왠지 불편하다 싶었는데

어제 아침세수를 하면서보니

코밑에도톰하게 물집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정해놓은일정에 맞춰 일을 치뤄내느라

하루의 시간을어떻게 보냈는지 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늙으막에쟁기질을배우는 소가 그랬듯이

제대로 길들여 질 때까지는 비지땀 몇 바가지쯤은 흘려야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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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1. 2. 3. 07:31

머릴 자르지 않고 여섯 달을 살아 봤다.

장발 단속을 하던 시절이었다면

머리 앞뒤로신작로를 내고도 남을 일이다.

10여일동안 수염을 깎지 않고 살아 봤다.

80살을 살면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만한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간섭받을 일이 없어서그냥 그대로 뒀을뿐이다.

그러나사람의 몸에서터럭이 길어지는 만큼

번뇌도늘어난다는 걸 미리 생각지는 못했다.

사막의 한 복판에 내동댕이 쳐진채휘청거리는

영화 속의 한 장면에서 있는 것 같은 그런 날들이 며칠 동안이나 계속되고있었다.

이쯤되면 바닥까지 다 내려간 셈이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주저앉거나, 허우적거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려왔던 길을올려 봐야한다.

왜 여기까지 왔냐고자신에게 물을 일은아니다.

내 의지완 상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사냐고 자꾸 되풀이 해 묻는 건 몰라서가 아니다.

자신에 대한체찍질일 뿐이다.

남한테 두들겨 맞을 때보다

자학할 때의 고통이 몇 배 더 크다.

왠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는어른들을 보면서

나이가 들면 감정이 무뎌져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속으로 우는 방법을 안 뒤로는

사람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남들이 오래 전에 다 아는 사실들을 뒤늦게서야깨닫는다.

남들보다 뒤쳐진 삶을 사는 까닭이다.

사람들은일탈을 꿈꿀 땐머릴 자른다고 한다.

그런다 해서금새 달라질 건 없겠지만

한 번쯤 시도해 봄직도 할 일이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허둥댄다지 않던가?

도저히 견뎌낼수 없을 땐 그렇게라도 해 봐야 한다.

하지만 끝은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의미일 뿐이다.

이 대로 이 자리에서허우적거리는 것 보다는

고통이든 번뇌든가리지 않고 즐겨야만 할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작을기다리며......

340여일을 그렇게 살았고

그 마지막 날은 불과 십여 일 전이었다.

떡국 끓는 냄새에 군침이 돈다.

2011, 2, 3. 설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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