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산길에서 힘에 겨운 이들의 베낭을 대신 메어 주거나 다리가 아프다며 엄살(?)을 부리는 한 아낙을 업고 내려온 적도 있었다.
부실하기 그지없었던 내 몸에 남들 만큼이나 튼튼한 다리가 있다는 건 무척이나 다행스러울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언제부턴지 산에 갈 때면 베낭의 무게에 신경을 쓰거나 좀 더 쉬운 길을 걸을 수 없는지 궁리해 대는 걸 보면 내게 얹혀진 연륜의 무게도 이제 만만찮다는 걸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산행계획을 세우면서 지난해처럼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화대종주가 아닌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그리고 백무동으로 내려오겠다는 것도 그런 이유이고, 꼭 한 번만 데려가 달라던 아낙들에게 산엘 간다는 사실조차 숨긴 채 친구 복영이랑 두 사람만 대피소 예약을 해 놓았던 것도 지친 산길에서 아낙들의 물병 하나라도 대신 짊어 줄 자신이 없기때문이다.
새벽 3시, 잠에 취해있는 아내를 깨워 승용차에 태우고 길을 나섰다.
산에 가는 게 대단한 일도 아니건만 여덟 번의 종주 중에 다섯 번씩이나 이 짓을 해대고 있는 남편이 귀찮을 법도 하다.
변명같지만 평소 산길을 걷는 일보다 산의 초입까지 가는 일과 하산을 해서 집에 돌아오는 일이 무척이나 번거롭게 여겨지곤 했었다.
가까운 무등산엘 가더래도 시내버스가 아닌 승용차로 가고 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성삼재에 도착해 아내를 집으로 되돌려 보내고 노고단을 향해서 출발을 하려니 4시 50분이다.
동쪽으로 부터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나 구름 낀 날씨라서 노고단에서 일출은 미리 접어 두는 게 마음편할 일이다.
단숨에 노고단재를 오르고 내친김에 임걸령까지 내달으며 앞서 걷는 복영이한테 "지리산 종주는 오르랑 내리랑 능선을 따라 걸으니 걸어 볼만한 산"이라고 했던 건 지리산을 몰라서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몇 번 걸어 본 산이니 만큼 자신감이 서로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임걸령 샘터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반야봉으로 향하는 노루목과 삼도봉을 지나 화개재까지 내려갔다.
야생화에 심취해 있을 때였다면 길섶에 피어있는 꽃들을 놓칠세라 눈으로 샅샅이 훑느라 더듬거리며 걸었겠지만 오늘은 숲도 보고 시야가 확 트인 곳에선 산 아래의 풍경도 내려다 보며 걸으니 지리산의 초록이 무척이나 싱그럽다.
6월은 봄꽃이 지고 여름꽃이 필 준비를 하는 시기인지 끝물인 연철쭉 꽃송이가 눈물지듯 툭툭 떨어지는 광경 말고는 스치듯 걷는 길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게 별로 없다.
대피소 예약에 있어 6월을 비수기로 분류해 놓은 것도 그때문일까?
화개재에서 지루하게 토끼봉을 오르고 다시 거친 산길을 헐떡거리며 명선봉에 오르는 동안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쉼없이 닦아내고 있음에도 함께 걷는 복영이는 도무지 땀이라곤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걸 보면 두 사람의 생리적인 현상이 참으로 대조적이다.
누구든 힘에 부치면 땀이 흐르게 되어 있음에도 단 한 방울도 땀을 흐르지 않고 산길을 걷는 복영이가 무척이나 대단하다.
천왕봉까지 가는데 있어 토끼봉에서 명선봉 구간과 벽소령에서 세석의 구간이 늘 지치게 만들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태양이 이글거리던 몇 해전 8월, 복영이랑 함께 이 구간을 지나면서 소문만을 듣고 더듬거려 어렵사리 찾아냈던 총각샘의 시원한 물로 타는 목을 촉촉하게 축였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에 하도 혼쭐이 났던지라 그 다음부턴 연하천까지 가는데 필요한 물을 임걸령에서 충분하게 채워서 걷곤 했었다.
명선봉에서 내려와 연하천에 닿으니 10시가 넘었다.
등산객으로 초만원을 이루던 어느해 여름, 대피소 예약을 못한 채 산엘 왔다가 명선봉 언저리에서 복영이가 가로 누운 주목에 머리를 부딛혀 이마에 상처를 입은 덕(?)에 환자로 분류되어 잠 자릴 얻어 쉬어갔던 곳이라서 두 사람에게 있어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아직 점심은 이르나 힘든 구간을 지나온 탓인지 지치고 뱃속이 허전해서 간식으로 허기를 면하고 물병에 물을 채워 다시 길을 재촉했다.
벽소령에서 점심을 먹고 힘을 재충전해 제일 힘들게 여겨지곤 하는 세석까지 가겠다는 심사다.
연하천에서 2km 남짓에 있는 형제봉을 지나고 다시 1.6km를 더 걸어 벽소령에 도착할 때까지의 구간은 비교적 평탄하고 시야가 확 트이는 곳이 있어 초록의 산하를 내려다 보며 걷는 느낌도 괜찮다.
벽소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마치고 식수를 뜨려니 대피소 아래에 있던 샘터는 보이질 않고 100여m나 아래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게 조금 심난스럽다.
산길에서 마실 물이 없다는 건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편히 쉬며 힘을 재충전해야 할 때에 100m나 아래로 내려가고 다시 올라와야 하는 건 썩 내키는 일이 아니다.
이곳에서 부터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까지는 도상거리(=지도상 거리) 6.3km에 불과하지만 걸으면서의 느낌만으론 10km도 훨씬 더 되는 것만 같다.
이 구간은 그 만큼 굴곡도 많고 산길이 거칠 뿐만 아니라 덕평봉과 칠선봉과 영신봉을 오르내리다 보면 체력은 어김없이 바닥이 나고 말아서 이 구간을 걸을 때면 끈기와 오기까지 다 동원해야 한다.
벽소령에서 2.8km거리에 있는 선비샘에 이르니 샘 주변 그늘에서 두 사람의 산객이 버너에 불을 피워놓고 취사를 하고 있다.
지친 산길에서 먹지 않으면 안 될 일이긴 해도 하지 말라는 짓을 하고 있는 이들이 보기좋을 리가 없다.
오죽 배가 고프면 그러랴 싶어 그냥 지나치려는데 마침 지나가던 한 등산객이한 마디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왠 걸, 도둑이 매를 든다고 했던가?
"40년을 지리산에서 살아서 괜찮다"고 되지도 않는 말로 오히려 큰소릴 치는 이에게 한 마디 참견하려다 말고서 자리를 뜨고 말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와 말을 섞다 보면 짜증이 나거나 내 기분만 잡치고 마는 경우를 수도 없이 겪어봤기 때문이다.
선비샘에서 1.6km를 더 걸어 칠선봉에 오르니 오후 세시 20분이다.
칠선봉에 올라 설 때면 늘 그랬듯이 멀리 한 눈에 들어오는 연화봉 능선과 재석봉과 천왕봉이 오늘도 무척이나 반갑다.
바로 눈앞에 버티고 있는 영신봉에 오를 일이 심난스러울 일이긴 하나 유람을 하듯 쉬엄쉬엄 걷는다 해도 두 시간이면 족할 오늘의 목적지가 바로 그 너머에 있고 해가 질려면 아직도 4시간이나 더 남았다는 생각에 마음은 오히려 느긋하다.
칠선봉에서 내려와 영신봉을 오르는 가파른 계단에 서니 세석까지 1.3km가 남았다는 팻말이 지친 다리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것만 같다.
계단을 오르며숨이 차오를 때마다 난간에 기대어 숨돌리기를 몇 번, 가까스로 영신봉에 올라서니 초록의 산하와 내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다.
세석을 지척에 뒀다는 생각때문인지 갑자기 긴장이 풀리고 다리에 힘이 다 빠져나간 듯 후들거린다.
성삼재에서 세석까지 12시간동안 도상거리 23km를 걸었으니 이 나이에 그럴만도 하다. 세석대피소로 향하는 길섶엔 지리터리풀이 이제 막 꽃대를 올리기 시작하고 갓 피어난 승마가 석양빛을 받아 무척이나 곱다.
대피소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산행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저녁준비가 한창이다.
저녁은 따뜻한 국물이 좋을 것 같아 아내가 챙겨 준 찰밥을 두고서 매점으로 올라 가라면 두 봉지를 사다 끓이니 밋밋했던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샘터로 내려가 수건에 물뭍혀 몸을 닦고나니 몸은 개운하나 산기운에 한기가 느껴진다. 지쳐서 피곤한 탓이다.
이럴 땐 그냥 다른 생각 필요없이 잠 자리에 드는 게 상책이라서 두 사람이 모포 네 장으로 깔고 덮고 베게를 만들어 누우니 하룻동안 쌓였던 피곤이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것 같다.
다음날 아침 4시 반에 대피소를 나와 어둠이 걷혀가는 세석평전을 지나 촛대봉에 오르니 우뚝솟은 천왕봉 넘어로 부터 맑은 서광으로 하루가 열리고 있다.
지리산에 올 때면 으레 천왕봉에서의 일출만을 생각하며 무리하게 야간산행도 서슴치 않았으나, 몇 해 전 천왕봉에서 일출을 복영이랑 함께 접견한 적도 있었고 이번만큼은 무리한 산행은 하지 않겠노라 마음먹었던지라 일출접견 행사같은 건 처음부터 염두에 두질 않았다.
하지만 촛대봉에 올라서는 순간 연화봉과 재석봉과 우뚝솟은 천왕봉이 어우러진 멋진 산그리매를 무대삼아 누군가가 쉼없이 마술을 펼쳐대는 듯 변화무쌍하고 황홀하기 그지없는 여명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만다.
날마다 하루 한 번 꼭꼭 뜨고 지는 해이지만 어디서 어떻게 맞이하고 보내냐에 따라 의미도 느낌도 다 다른 것 같다.
황홀한 여명과 장엄한 일출경에 푹 빠진 채 반 시간쯤을 촛대봉에서 그렇게 머물었다.
천왕봉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4km 남짓, 일곱 번째 종주 중에 대부분을 야간산행으로 지나다녔던 연하봉 구간이라서 내겐 지리산의 다른 구간에 비해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구간이다.
한참을 걸어 키큰 나무의 숲길을 빠져나오는 순간 풀잎마다 맺힌 이슬방울들이 맑은 햇살에 영롱한 빛을 반짝이니 갑자기 환상속의 세계로 들어 선 느낌이다.
더구나 촉촉하게 젖은 초록과 맑고 시원한 산바람이 어우러지니 "연하선경"이라는 단어 하나로 이름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것만 같다.
이곳은 틀림없이 신선과 선녀가 사는 곳이다.
만약 아리따운 선녀가 길을 막아 서며 내 옷소매를 붙잡는다면 성삼재까지 바래다 주고 집으로 돌아 간 아내한테는 뭐라고 말을 할까 고민스럽기도 하다.
세석을 출발할 때 장터목에서 아침을 먹자고 했으나 내친 김에 재석봉을 오르고 천왕봉으로 향했다.
천왕봉을 지척에 두고 복영이가 배가 고프다기에 어제 먹다 남은 걸꺼내 허기를 면하니 한결 힘이 나는 것 같다. 그
래서 사람들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거늘......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을 지나 몇 개의 철계단과 가파른 길을 오르느라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발걸음이 멈춰지질 않는 건 하나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오르면 그곳이 바로 천왕봉이기 때문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왕봉에 올라서니 처음 왔을 때나 지금 이 순간이나 느낌만큼은 유별나다.
어렵게 먼 길을 걸어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스럽고 작은 일 하나를 해냈다는 사실에 기분도 좋다. 이런 느낌 이런 마음을 꼭 전해주고 싶어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내 아내와 내 딸과 내 아들........
그러고 보면 연화봉에서 선녀를 안 만났던 건 참 다행스러운일이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이틀밤 째가 되면 집에 가려고 안절부절하는 내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내 식솔들에게 있어서도........^^
2011, 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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