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편지를 처음 썻던 건
월남전쟁이 한창이던 국민학교 3~4학년 무렵
"파월장병에게 보내는 위문편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북괴와 오랑캐와 삼팔선과 전방'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던 시절에
뜬금없이 나타난 월남이라는 동네는 또 어디인지 조차 모른 채
선생님께서 시키시는대로 얼굴도 알 수 없는 국군아저씨한테 편지를 썻으니,
당시에 썻던 그 편지를 지금 읽는다면
유치하긴 해도 무척이나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무렵엔
한쪽 귀를 막은 채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야만 겨우 알아 들을 수 있는 전화도
면사무소가 있는 우체국에나 가야만 할 수 있고,
멀리 떨어진 이들끼리의 소식은 인편 아니면 편지를 통해서만 주고 받곤 했으니,
가죽가방을 어께에 맨 우체부는 더없이 반가운 손님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전화기가 일반 가정집까지 보급될 무렵까지
나는 한 친구한테 일상에서 겪었던 일들에서 부터 내 주변에서 생겨났던 일까지
소상히 적어 보내곤 했었습니다.
그 친구 또한 나 만큼이나 열심히 담장을 보내오곤 해서
편지를 기다리는 일은 내 일상에 있어서 즐거움이기도 했었습니다.
사람들은 일상을 살면서 수많은 종류의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그 중에 보내지 말아야 할, 받지 않으면 더 좋을 편지를 꼽으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행운의 편지'라는 걸 앞세우겠습니다.
행운을 앞세워 놓고
공갈과 협박을 해대며 불행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행운의 편지'라는 걸 처음받아 봤던 게
중학교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흐릿한 기억속에 남아있는 유일한 내용은
"똑 같은 편지를 써서 세 사람한테 보내면 행운이 오겠지만 안 보내면......"
글씨가 소문날 만큼 엉망이었던 관계로 남에게 편지를 쓴다는 자체도 부끄러울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표를 세 장씩이나 살 돈이라면 그걸로 라면 한 봉지 더 사야 했던 배고픈 자취생에게 있어선
행복이나 불행따위엔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 아는 사람으로 부터 전화를 통해 문자편지를 받았습니다.
"돈으로 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
돈으로 의사는 살 수 있어도 건강은 살 수 없다.
이 것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속담으로 네덜란드에서 유래되었으며
지구를 10번 돌아 당신이 받았으니 이젠 당신이 행운을 가질 차례다.
아무개는 이 메세지를 받아 20통을 만들어 보내 복권에 당첨되었고,
또 다른 아무개는 같은 메시지를 받았으나 보내지 않아.......
만약 당신이 이 메세지를 4일 안에 20통을 만들어 보내면 ....
만약 당신이 이 메세지를 보내지 않으면......"
세 통을 써서 보내라던 옛날보다 스무 통으로 늘어났을 뿐
행운을 가져다 준다면서도 만약 하지 않으면 불행해 질 거라는 공갈과 협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빈 총도 안 맞는 게 낫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불행해질 거라는 암시를 받는다는 건
저주를 받는 만큼이나 불쾌하다고 표현한다면 너무 과장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편지를 몇 번이나 받았는지는 숫자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나
올 들어서만 벌써 두 번째로서
받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해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길이란
오르막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내리막만 계속되는 것도 아니듯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삽니다.
행복이란 마음먹기 나름이라며
행복이란 내 스스로의 선택일 뿐
남이 준다고 해서 얻어지는 건 아니라 생각하며 삽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편지를 만들었는지,
편지에서 처럼 보내면 행운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불행할런지는 모를 일이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맨 처음 만든 사람이나 그걸 또 다른 이에게 전하는 사람에게나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고맙거나 반가움이 아닌 짜증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만든 사람이 몹쓸 사람이라며,
자신이 불행하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순진한 이의 마음을 헤아려 그냥 접어 두면 될 일을 두고
속좁은 사람 티내며 너무 타박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201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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