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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한 남자, 한 여자, 그리고......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5. 10. 9. 04:20

등산을 어차피 할 바엔

조금 일찍 나서서 같이 가는 게 낫지 않겠냐며 부추기는 진짜 의도를

이 사람이 모를 리는 없습니다.

 

아무리 산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꿀맛같은 새벽 잠을 포기하고 어두운 산길을 헐떡대며 걷자는 제안이

썩 달갑잖은 일이 틀림이 없음에도 냉큼 뜻을 같이 하겠다는 이가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다음 날 새벽,

집 앞에 차를 대겠다는 약속시간 보다 10여 분 일찍 나왔던 건

함께 가겠다는 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입니다.

 

 

 

새벽 세 시 20분,

공장지대가 가까운 탓에 밤이면 4차선 도로의 양쪽 두 개의 차선은

으레 덩치 큰 화물차들이 자리를 차지한 체 밤을 지새는 도로입니다.

 

인도에 서 있으면 이런 차량들 때문에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어

1차선 가까이로 나와서 서성대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처음엔 술에 취한 사람들이 깔깔대는 소리라 여기며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끊겼다 다시 들리곤 하는 소리는

취객들의 웃음 소리가 아닌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가면서

그곳에 더 가까이 가야하는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발길을 돌려야 하는지 무척이나 고민스럽습니다.

 

하지만 손에 든 삼각대가 이 때만큼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내 신변이 위험해 질 때 이걸로 내리치겠다는 생각을 하며 소리가 나는 곳까지 다가가 보니

트럭 사이에 숨어있던 검정색 승용차에서 한 남자가 조수석 문짝에 버틴 채 서 있고

안쪽에선 한 여자가 나오려고 비명을 질러대는 것입니다.

 

겁이 덜컥 나고 두렵기 까지 합니다.

하지만 승용차에 갇혀있는 여자가 나에게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라는 울부짖음을 듣는 순간

이 여자를 구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무슨 일로 이러시냐?"며 더 가까이 다가가서 묻습니다.

 

나는 싸움에 조금도 소질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치고 박는 싸움다운 싸움을 해 본 적도 없지만

했다더래도 일방적으로 얻어 터지는 싸움밖엔 기억에 없습니다.

 

다만 남들보다 큰 덩치라서

그 덩치로 상대를 먼저 기선 제압하거나 한 몫을 먹는다는 생각은 늘 해왔습니다.

이 때 역시 30쯤 되어 보이는 그 남자의 눈엔 내가 싸움께나 하는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무슨 일로 그러세요?"

"집안 일이니 아저씨는 상관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

남자의 말투는 거칠고 단호했지만 나를 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아가씨가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간섭 좀 해야겠다"며 가까이 다가가자

남자가 차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찰라에

안에 갇혀있던 여자가 재빨리 문을 열고 나와 내 허리춤을 꽉 붙잡습니다.

 

자초지종을 묻거나 하여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전화를 꺼내 112를 눌렀습니다.

 

"한 여자가 승용차에 갇힌 채 살려달라고 도움을 청한다"며 급하게 전화를 하고선

이 남자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애인관계인데 이 가시네가 열 살이나 더 먹은 놈하고 바람을 피워서 그러니깐

아저씨는 상관하지 말고 가세요"라고 말을 합니다.

 

그 말이 믿어지지가 않아서 허리춤에 껌딱지마냥 붙어있는 여자에게 물으니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여자가 술냄새 진하게 풍기며 맞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 순간 내 입장이 참으로 난감해 집니다.

내가 미리 짐작했던 강도나 납치가 아닌 남의 일에 간섭을 했다는 생각때문입니다.

하도 황당하여 "애인을 놔두고 바람을 핀 아가씨가 잘못을 했네"라며 나는 갈테니 서로 잘 해결하라며 떠나려 하자

"헤어지자고 할 때마다 때리며 칼로 찌르려 하니 제발 살려달라며 내 허리춤을 잡고 놔주질 않습니다

 

내 눈앞에 있는 서른 쯤 되어보이는 화가 난 남자와

스믈 일곱 먹은 술냄새 찐하게 풍기는 여자와,

이 자리엔 없지만 조금 전까지 이 여자와 밤새 술을 퍼 마셨을 서른 일곱 먹은 또 다른 남자......

 

머리가 복잡해 질 무렵 새벽산행을 함께 할 이가 도착을 하고

그 뒤로도 한참 뒤에서야 경찰차가 오고..........

 

예정했던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봐서 서둘러 그 곳을 떠나왔지만

새벽 산길을 걸으면서도, 산을 내려올 때도, 집에 돌아와서 까지도

그 일로 하루종일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비록 나중에야 상황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고는 하나

치한도 아니고

강도도 아니고

납치도 아니고.......

 

순전히 젊은 남여간의 일에

간섭을 한 게 옳은 일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지나치는 게 옳은 일이었는지..............

 

2015,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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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치매 걱정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5. 6. 26. 15:56

 

먼 거리를 갈려면 마음이 늘 조급합니다.

거리가 먼 만큼 오가는 일이 번거로워

한 번 갈 때면 인근의 연관된 일들까지 다 갖고 가야합니다.

 

때문에 챙겨야 할 서류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젯 밤이 미리 챙겨놓은 가방을 열어 빠진 게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아침 식사가 끝나자 마자 서둘러 집을 나서려는데

꼭 있어야 할 게 안 보입니다.

 

신분증과 명함, 그리고 신용카드와 비상금이 들어 있는 지갑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에게 있어 총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정했던 출발시간과는 상관없이

집안 구석구석 있을만한 곳을 이잡듯 뒤져봐도 도무지 보이질 않습니다.

하는 수 없이 찾는 일을 포기하고 아내에게 비상금을 얻어 길을 나섭니다.

 

130여 km의 거리를 달리는 동안에도 지갑의 행방에 대한 추적을 계속하느라

머릿속에 딴 생각이 들어올 틈새가 없습니다.

 

 

짚히는 곳이 있긴 있습니다.

어제 오후 일과가 시작되기 전에

잠시 텃밭에 들러 무성하게 자란 풀을 뽑느라 앉았다 섰다를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바지의 뒷주머니에 넣어뒀던 지갑이 튀어나왔을 수가 있다는 생각은

거의 확신에 가깝습니다.

 

의심해 볼만한 다른 몇 곳도 있지만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서

일과를 마친 후 늦더래도 텃밭으로 달려갈 생각을 굳힙니다.

 

예정했던 첫 번째 일정을 마치고 두 번째 일정을 쫓아 달려가고 있을 즈음

좀 전에 헤어졌던 업체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방금 다녀가신 자리에 5만원짜리 한 장을 떨궈놓고 가셨는데

제가 가져도 될까요?"라고..........

 

지갑이 없어 주머니에 명함을 넣고 왔던지라

꺼내는 과정에서 아내에게 얻은 비상금이 함께 휩쓸려 나온 모양입니다.

"오늘 내가 왜 이래?"

허둥대며 시작한 하루가 당혹스러움의 연속입니다.

 

 

출장지에서의 일정을 무난하게 마무리하고 서둘러 길을 재촉합니다.

장마가 시작될 거라 해서 빗길을 오갈 생각에 불편을 예상했으나

다행히도 집 가까이에 올 무렵에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땅에서 딩굴고 있을 지갑이 비에 젖을까봐 다시 마음이 조급해 지자

집에 들리지도 않고 곧바로 텃밭으로 달려갑니다.

내 추측이 맞길 바라면서........

 

텃밭에 도착하자 마자 풀을 뽑았던 곳을 눈을 부릅뜨고 샅샅이 훑어 봅니다.

그러나 있어야 할 지갑은 보이질 않습니다.

빗줄기가 차츰 굵어지면서 젖은 머리가 마치 비맞은 장닭이 되었습니다.

 

"신용카드는 분실신고하면 되고,

주민등록증은 재발급 받으면 되고,

지갑속에 넣어뒀던 현금은 주은 이에게 적선한 셈으로 치면 되고........."

 

체념을 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집니다.

 

 

집에 도착하여 바지를 벗어 옷방의 옷걸이에 걸려는데

아침에 입고 갔던 똑같은 또 하나의 바지가 그곳에 걸려 있습니다.

 

순간,

무언가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듯 강한 충격이 느껴집니다.

 

똑같은 바지가 두 개였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아침에 입은 건 어제 입었던 바지가 아니었다는 걸 생각조차 해내지 못했으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지의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들며 쓴웃음을 짓습니다.

 

 

요양병원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을 가끔씩 만납니다.

그 분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암은 걸려도 치매는 걸리지 마라"고들 하십니다.

 

세상사가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일상을 내 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다면

죽은 목숨과 다름이 없다는 걸 그 분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치매.....

아직은 내 일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오늘같은 하루는 알게 모르게 내 일이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201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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