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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어머니의 봄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1. 3. 20. 06:35

요즘들어

남정네가 집에서 밥을 한 끼도 안 먹으면 영식님,

한 끼를 먹으면 일식씨,

두 끼를 먹으면 두식이,

세 끼를 다 먹으면 삼식새끼라고 한다지요?

평소 가장의 권위를 고집하며살아 온사람은 아니라지만

차려주는 밥을 앉아서 받아먹는 게 당연한 것 처럼 여기며살아왔던 이의입장에서 볼 때

한갖 우스갯소리로 치부해 버리기엔 왠지 착찹한 느낌이 드는 것이사실입니다.

흔히 들 요즘 세상은

부계사회에서 모계사회로 가는 과도기라지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아무 것도 없듯이

이 또한 자연스러운 변화라 여기며 겸허하게받아 들여야만 할 일입니다.

다만누구든 주도권을 쥐게 되면 그만큼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는 사실도

미리 생각해 둬야만 할 일입니다.

밥 이야기를시작했는데

모계사회와 부계사회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평소 식당밥을 먹고나면 왠지뱃속이더부룩해서

왠만하면밥은 집에서 먹습니다.

세상이 변해 가듯 아내의 심사에도차츰 불평이 쌓여가고 있을런지는 모를 일이나

아직까지는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

눈치보며끼니를 떼우는이들에 비해 퍽이나운이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요즘들어 출장을 가는 날이 잦아지면서 부터

점심 한 끼 떼우는 일이 크나큰 과제가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먹는 밥도 썩 내키지도않지만

혼자서식당 자리를 차지하고 밥을 먹는다는 게 그리 편할 일은 아니라서

이런 나를 이해하는 아내는

점심 대용으로 간편식을챙겨주곤 합니다.


며칠 전, 내장산을지척에둔 농공단지로 출장을 갔다가점심때가 되자

끼니를 떼울만한좋은 곳이 어디없을까 하고 산골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자리를 잡은 곳이

하필이면 저만큼에서김을 메는 한 노인네가바라보이는 곳입니다.

괭이로 밭을 메는 노인네는 괭이질 몇 번 하다 말고는 허리를 펴고,

가끔씩은 먼 산도 바라보는 걸로 봐서무척이나 힘에 겨운 모양입니다.

점심때가 늦어가는 시간인데도일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봐서

모르긴 해도 남은 걸 마져 끝내겠다는 심사거나

아니면 아침을 늦게 먹고 나온 이유일 거라는 내 맘대로의 생각을 하며

아내가 챙겨 준 먹거리를 폅니다.

하지만 일하는 이를 앞에 두고 구경하며먹는다는 게 썩 내키질 않아

떡과 과일을 들고노인네에게 다가가니 무서운 걸 본 것 마냥 화들짝 놀라십니다.

하지만 노인네의 경계심도 잠시일 뿐

"날씨가 따뜻해서 빈 밭에 풀도 뽑고 작년에 씌웠던 비닐도 걷으러 나왔는데

일도 안 하다 하려니 무척이나 힘이 든다"며건네드린 떡 하나를맛있게 잡수십니다.

이 밭엔 뭘 심으려시냐고 묻는 내게

"돈부랑 콩이랑 녹두를심어 아들네랑 딸네한테 보내주고

남은 건 나도 먹고........"

내 자신보다 자식들을 먼저 앞세우시는 이 노인네를 보며

생전에 부모님 마음 다 헤아리지 못했던 불효에

마음 한켠이 아려오기시작합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아버지 어머니는 애틋한 그리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 생전에편히 모시지못하고

가신 뒤에야 후회를 하는나와 같은 사람들은 모두 다 불효자식입니다.

내 자식들 또한

나 떠난 뒤에 내가 했던후회를 되풀이 할지라도

내 부모님이 그러하셨듯이 나 또한 묵묵히 바라보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한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점심을 빼앗아 먹어 어쩌냐며 한사코 미안해 하는 노인네에게

쉬엄쉬엄 하시라며 떠나오는마음은 부모님에 대한향수에촉촉히 젖어 있었습니다.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산골의 한 언덕베기에서

그 노인네를 통해서 내 어머니가 사셨던봄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던 건

참으로 기분좋을 일이었습니다.

2011,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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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두부장수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11. 3. 19. 06:48

찬서리 하얗게 내리는 날은 물론이고함박눈이 소복히 쌓이던 날에도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이면

꿈결인 듯 가물가물 들려오는 맑고 가느다란 종소리에 잠을 깨곤 했습니다.

뗑그렁 뗑그렁.......

종소리가 대문밖까지 다가오길 기다리시던 어머니께선

양푼을 들고 나가셔서 두부 몇 모씩 받아오곤 하셨습니다.

그 시절 두부장수가 겨울 한 철에만 지나다녔던 건

바쁜 농사철엔 손이 많이 가는 두부를 만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겨울철 말고는 보관하는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명절이나제사때면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던 탕국이 생각납니다.

나는 식성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음에도

부드러운 두부와 굴만 쏙쏙 건져먹고선

국물과 질긴 명태포는 아버지께 내밀곤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는 물지게를 진 두부장수의 모습을 딱 한 번 밖에 본 적이 없습니다.

함박눈이 소복히 내려쌓여 있던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이었습니다.

마당에 쌓인 눈을 쓰시던 아버지를 따라 가래를 들고 장난을 치고 있을 때

두부장수의 종소리를 듣고 나오셨던 어머니를 따라 대문밖으로 나섰습니다.

이른 아침이라서 아무도 지나간 흔적이 없는 눈길을 헤치며

양쪽 귀를 두툼하게 감싼 털모자를 깊게 눌러 쓴 채 물지게를지고 가까이 다가오는

두부장수의 거무튀튀한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그만 어머니의 치맛폭에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두부장수 아저씨께선 그런 나를 보면서

어머니에게 "꼬맹이가 잠도 없수다"라며 물동이에서 두부를 꺼내 양푼에 담아 주고선

눈길에 발자국을 남기며 멀어져 가던 모습은

두부를 먹을 때마다 떠오르곤 하는 추억속에 새겨져 있는멋진그림입니다.

그로 부터 몇 년 후 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십여리 학교길의 중간쯤에 있는 바닷가의 오두막집이

바로 그 두부장수 아저씨네 집이라는 사실과

625전쟁때 북에서 피난을 왔다고 해서 피난민이라 부른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고향을 떠나 올 때까지

겨울날 아침이면 가끔씩 들려오곤 했던 종소리가

바로 그 피난민 아저씨의 종소리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며칠 전 남녘의 한 작은 읍내로 출장갈 때의 일입니다.

평소 출장을 가려면 하루나 이틀 전에 미리 약속을 해 두는 게 예의이긴 하나

이날은 계획된 일이 아니라서 내려가는 길에 전화를 걸어서 양해를 구해야만 했습니다.

두 시간 남짓 걸려서 도착해 보니

콘크리트 담벽에 "ㅇㅇ두부"라는 검정색 페인트 글씨가 퇴색된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허름한 건물을 한 바퀴 돌아봐도 인적은 커녕 녹슨 철문까지 굳게 닫혀져 있어

혹시 공장이 딴 곳으로 옮겨간 건 아닐까 싶어 출발할 때 통화했던 이에게 전화를 하니

바로 그 건물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고 철문이 스르륵 열립니다.

두부공장의 유일한 종업원이자 사장이라는 이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가 보니

허름하고 오래된 기계들이 정치된 채 적막에 휩쌓여 있는 풍경이

나를 당혹스럽게만듭니다.

며칠 전 시내의 두부공장에 갔을 때

종업원들이 위생복을 입고 분주히 오가던 광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라서

오늘은 쉬는 날이냐고 물었습니다.

"요즘엔 큰 공장에서 두부를 만들어 지방까지 공급을 하는 터라

나는 이틀에 한 시간씩 두부를 만들어 이틀간 파는 실정"이라며

물탱크에 담가놓은 10여 판 남짓의 두부를 가르킵니다.

나는 지금껏 물지게를 지고 눈쌓인 길을 걸어가는 두부장수와

귓가에 맴도는 맑은 종소리만 그리고 있었지

이른 새벽녘 눈길에서 고무신을 신었던 두부장수의 발은 얼마나 시렸을까에 대해선

단 한 번이라도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내 앞에 서 있는 또 한 사람의 두부장수를 보는 순간

내 어릴적 고향집 대문앞을 지나 다니시던 피난민 두부장수의 삶이야 말로

무척이나 고단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마치못할 짓을 한 것처럼 죄송스럽고숙연해 짐을 느낍니다.

어쩌면 올 안에 문을 닫을 지도 모르겠다는 씁쓰레한 표정의 두부장수.....

추억속의 빛바랜 그림과 함께

또 한 장의 두부장수 그림이 내 가슴속에 새겨지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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