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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下)꼬이고 꼬였던 2006년 지리산 종주산행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2. 23. 00:45

2) 둘째날.

세석에서 장터목대피소를 거쳐 천왕봉까지는 6.8km, 부지런히 걸어도 세시간은 족히 걸리기에 일출시간을 맞추려고 새벽 2시에 짐을 챙겨 대피소를 나섰다. 그러나 촛대봉 쪽을 향해 가고 있는데 어둠속에 길을 막고 서 있는 검은 그림자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일출과 일몰 2시간 전후론 야간산행 금지"라며 다시 숙소로 들어가서 3시 30분 이후에 출발하라고 한다. 대피소에서 근무하는 요원인 듯 싶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난감해 하며 우리의 입장을 전했으나 "나는 시키는대로 할 뿐"이라며 본인 스스로를 아무런 권한도 없는 허수아비로 비하를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이라서 대피소로 다시 내려왔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포기할 수는 없어서 대피소 뒷길로 돌아나와 랜턴을 모두 끈 채 촛대봉쪽으로 어두운 길을 더듬거리며 다시 올라가려니 길 한복판에 30여명 쯤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누가 설명을 안 해줘도 야간산행을 하다 잡혀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다. 그 무리들 중 누군가가 우리들을 향해서 "그 자리에 앉아서 산행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세요"라고 강압적인 어투로 명령을 한다. 아까 그 산지기인 듯 싶었고 난감한 일이었지만 시키는대로 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누군가에게 잡혀서 주저앉혀 있기란 초등학교 다닐 때 길 가장자리에 있는 가마니에서 고구마를 빼먹다 잡혀 본 이래로 처음있는 일이라서 내 꼴이 우습기만 하다. 이 정도면 1년을 벼르며 기다렸던 천왕봉의 일출, 아니 5년동안 꼭 한번은 접해보고 싶었던 천왕봉 일출은 포기해야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은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우리가 아니라 산지기라서 아쉬운 위치에서 협상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산객들 때문에 밤잠을 설치며 고생한다"는 취지에서 부터 시작해 "예전에 하지 않았던 짓을 왜 새삼스레 누가 시켜서 하는 짓이냐?"며 고성도 오갔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아쉬운 사람이 샘을 판다"고 했다. 서로 협조하고 양보를 하자며 산행이 가능하다는 시간까지 남아있는 90분을 양쪽에서 반반씩 나누자는 나의 제안에 산지기가 가까스로 수락을 한다. 일행들은 결국 45분 동안 어두컴컴한 산길에 잡혀있다가 2시 45분에야 천왕봉을 향해 출발하게 되었고 서둘러 가면 일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간산행은 주변의 풍경을 볼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반면에 앞 사람의 발뒤쿰치만 보며 걷는 일이라 더운 한 낮에 하는 산행에 비해서 훨씬 힘들지가 않고 산행속도 또한 한낮에 비해 오히려 빨라서 산행거리만 따진다면 오히려 더 능률적일 수 있다. 천왕봉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 산행객들이 주로 투숙을 하는 장터목대피소까지 단숨에 걸었다. 장터목에서 고사목이 서 있는 제석봉까지, 그리고 마지막 난코스인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가 힘겹긴 해도 바로 눈앞이 목적지이고 그곳에 올라서면 그토록 소원했던 천왕봉의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은 들지만 주저없이 걸었다.

그러나 일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아니, 이미 출발할 때부터 일은 터져있었다고 해야 더 정확한 말이다. 앞서가던 내가 뒤를 따르는 친구들에게 마지막 힘을 다 내라는 뜻으로 "여기서 뒤쳐지면 산에 놔두고 그냥 갈거다"라는 반협박성 농담을 하자 뒤에 따르던 은숙이가 "승용차 열쇠는 내게 있는데 그게 무슨 말씀?" 하면서 되받아 치는 순간과 동시에 터져나온 외마디 비명 "아이고 승용차 열쇠!!!" 그러면서 하는 말 "호텔의 가방속에다 열쇠를 놓고 와버렸다"고 한다. 그 순간 제발 농담이길 바라는 다섯명의 일행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동시에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서 서로의 얼굴만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승용차 열쇠가 없으면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것인데 그렇다고 그 먼길을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승용차가 있는 곳은 첩첩산중이고 지리산 천왕봉 부근에선 전화통화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이런 상황을 두고 설상가상이라고 하는 것일까? 실로 난감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으로 천왕봉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일찍 도착해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발디딜 틈도 없다. 겨우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지리를 잡고 동녘을 바라보니 붉게 물든 아름다운 서광에 승용차 열쇠 걱정은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동녘의 하늘빛이 하도 아름다워서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을 잊어버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20여 분을 그렇게 넋을 잃고 동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동그랗고 붉은 덩어리 하나가 구름위로 불쑥 솟아오른다. 그 순간에 사람들이 일제히 "와~!!!"하는 함성을 지르며 하루를 열어주는 해를 천왕봉에서 맞이했다. 해는 하루도 어김없이 뜨고 지며 어느 곳에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지리산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선 3대가 덕을 쌓아야만 한다"고 할 만큼 아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며, 실제로 지난 4년동안의 종주를 할 때마다 천왕봉에서의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한번도 일출을 볼 수 없었는데 종주 다섯번째인 오늘에야 처음으로 일출다운 일출을 맞을 수 있기에 그 감격이란 유별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천왕봉 표지석을 앞세우고, 일출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몇 장을 찍고 난 다음에야 모두들 제 정신으로 돌아 온 듯 싶었다.



어찌 되었든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하산을 해야만 될 일이었다. 전화통화가 되는 위치를 찾아서 은숙이가 가입해 있는 자동차 보험회사로 전화를 했으나 보험에선 열쇠를 가져다 주거나 만들어 주는 일은 자기들의 업무영역이 아니라는 답변만 있을 뿐 우리가 원하는 도움은 조금도 되어주질 못했다. 결자해지라 했던가? 일을 저지른 은숙이가 퀵써비스를 생각해 냈다. 전화안내의 도움을 받아 남원에 있는 퀵써비스와 어렵싸리 연결이 되어 구례 산동의 온천지구에 있는 호텔에 문을 열고 들어가 열쇠를 가지고 200km는 족히되는 거리인 경남 산청의 대원사 계곡에 있는 하늘아래 첫동네로 아침 9시 30분까지 가져다 주는 일을 해 주는 댓가로 5만원을 주기로 했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거저 먹는 셈이라서 일행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또 하나, 경남 산청의 대원사 계곡으로 하산을 하려면 빨리 걸어도 6시간 이상 걸린다는데 퀵써비스와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까지 하산을 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할 일이라서 하는 수 없이 일행들은 천천히 내려오라 하고 혼자서 뛰기 시작했다. 중봉과 하봉, 그리고 써레봉에서 한참을 더 내려와 치밭목대피소에서 타는 목을 축이고 이끼 낀 계곡을 뛰어내려 오며 두번씩이나 미끄러운 바위를 밟아서 넘어졌다. 산을 오를 때보다 땀으로 온 몸이 축축하게 젖었다. 이때부터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도데체 이게 무슨 짓인가?"라며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승용차를 세워 둔 곳, 즉 퀵서비스를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10여 분 늦게 도착을 했다. 그러나 약속대로라면 먼저 와서 기다려야 할 퀵서비스가 10시를 넘기고 10시 30분이 되어도 모습을 나타내기는 커녕 전화통화 조차도 되질 않아서 울화가 치밀었다. 친구들이 하산을 한 뒤에도 한참만인 11시 30분이 되어서야 나타난 퀵서비스, "오다가 길을 잃어버려 헤메다 늦어졌다"는 그의 변명치곤 유치하기만 했다. 어찌되었건 승용차 열쇠가 있어서 숙소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지만 호텔을 비워줘야 하는 12시 까지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또 한번 속이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크고작은 일들로 꼬이기만 했던 산행이었지만 계획대로 무사히 마무리는 되었다. 산행 후 일상으로 되돌아온 한참 뒤 어느날 복영이가 "앞으로 지리산 종주를 하면 차라리 마누라를 데려가겠다"는 푸념을 내려놓는다. 왠만한 건 그냥 삭히거나 넘겨버리곤 하는 그가 무등산 중머리재 정도나 오르내릴 연약한 부인을 데리고 종주를 하겠다니 이번 산행을 하면서 적잖게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첫 산행때만 빼놓고는 4년동안 8월 초 제일 무더울 때 종주를 해 왔던 터라 "내년엔 철쭉이 피어날 무렵인 5월하순이나 6월초가 좋지않겠냐?"고 넌즈시 물었더니 앞으로 종주를 하려면 짐을 최대한 줄이고 하잔다.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라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나의 여섯번째 지리산 종주 계획이 세워진 셈이다.

하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산행이었기에 잊어버리지 않을려고 지루하게 산행을 했던 만큼 지루하게산행기를 썻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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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上)꼬이고 꼬였던 2006년 지리산 종주산행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2. 23. 00:26

1,준비와 출발.

5년 전 처음으로 지리산 종주를 시작한 이래로 매년 꼭 한번씩 어김없이 해 왔던 산행이라서 극심한 악천후가 아니라면 길을 더듬거리거나 잃어버릴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출발지에서 부터 시작해 하산지점까지 등산로의 샘터, 쉴 곳, 도착시간, 출발시간 등 어느 해 종주계획 보다 더 세밀하고 완벽하게 계획을 짜야했던 이유는 평생에 한번이라도 지리산 종주를 꼭 한번 하고 싶어 했던 산행이 그리 익숙치 못한 초등학교 여자친구들을 셋씩이나 데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2006년 8월 2일 오후, 한참 폭염이 쏟아 내릴 시간에 광주에서 친구들을 태우고 지리산 온천지구에 정해놓은 호텔이 아닌 경남 산청의 대원사로 향해야 했던 이유는 하산 후 숙소로 귀환하기 위해 서울에서 오는 은숙의 승용차를 그곳에 두고 은숙을 숙소로 데려오기 위함이다. 규정속도 80km에 10%를 더해서 최고 88km 이상으로 달려선 안 되는 88고속도로를 타고 경남 함양까지 가서 그곳에서다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해산청IC로 빠져나와 어두워진 산길을 버벅거리며 대원사 계곡의 하늘아래 첫동네에도착하니저녁 여덟시다.그곳의 한 음식점에 양해를 구하여 주차를 시켜놓고 다시 120여 km 거리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열한시가 넘었다. 여행을 온 것도 아니건만 세화와 미경이가 몇날 몇일을 먹어도 다 못 먹을 만큼 가져 온 짐 중에 산으로 가져갈 것만 가려서 각자의 베낭에 챙겨놓고 나니 새벽 한시가 다 되었다.

힘든 산행을 하기 위해선 충분히 잠을 자 둬야 할 일이건만 집에서 나서면서 부터 300km 이상을 쉼없이 운전을 해서 피곤한 상태였음에도 긴장을 해선지 잠에 들지 못하고 몽롱한 상태로 출발하고자 했던 네시를 맞았다. 세화친구가 가져온 보신탕으로 아침을 서둘러 먹고 남은 건 돌아와서 먹을 심사로 냉장고에 넣어 볼려고 했으나 조그마한 냉장고 속엔 이미 다른 것들로 빼곡하게 차 있어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신랑한테도 주지않고 친구들을 위해 챙겨 왔다는 걸 버리게 생겼으니 세화의 마음이 많이 서운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상황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승용차로 산행깃점인 성삼재까지 올라와 그곳에 친구들을 내려놓은 다음 주차료를 아낄 심사로 시암재 휴게소로 내려와 주차를 해놓고 그곳에서 택시비 5천원을 주고 성삼재까지 다시 올라와 친구들과 합류를 하니 다섯시 반. 산행에 동참키로 했던 서울의 윤석친구가 뜻하지 않았던 일로 불참을 하면서 여러가지 크고작은 일들이 자꾸 꼬이기 시작했만 상쾌한 산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행을 시작하고 해가 뜨기 직전에 노고단에 도착하여 멀리 반야봉 능선으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순간 조금은 혼란스러웠던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워진다.


노고단재에서 임걸령에 이르는 순탄한 산길엔 산객들을 환영이라도 하려는 듯 길 양옆으로 무수히 피어난 노란 원추리와 보라빛 모시대와 우유빛 박새와 붉은 동자꽃엔 맑은 이슬을 송알송알 매달아 놓은 채 아침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이며 황홀경을 이루고 있다. 비록 일년 중 가장 무더운 시기라 할지라도 산길에 피어난 아름다운 들꽃들과 이른 아침의 맑고 깨끗한 산기운 덕분에 날아갈 듯 상쾌한 기분이라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산에 잘 왔다는 생각과 산에 대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여름 산행 중 가장 먼저 챙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물이다. 지리산 종주를 처음 할 무렵엔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출발할 때부터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운 채 산행을 시작해서 적잖게 힘이 들었으나 종주를 되풀이 하는 동안 성삼재, 노고단, 임걸령, 뱀사골, 총각샘, 연하천, 벽소령, 선비샘, 세석, 장터목 등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터 빈 물병만 챙겨서 산행을 시작하곤 했다. 갈증이 느껴질 무렵에 도착한 임걸령 샘터엔 몇 무리의 사람들이 물을 담아 서둘러 출발을 하거나 끼리끼리 모여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몇년 전 친구 복영이와 둘이서 화엄사에서 출발하는 2박3일 산행을 할 때 연하천대피소의 훨씬 전에 있는 총각샘을 찾을 때까지 적잖은 낭패도 경험했던지라 자신의 물이 떨어지면 남에게 얻어마실 안일한 생각을 하지 않도록 힘들더라도 반드시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울 것을 친구들한테 권했다. 여름의 아침햇살은 일찍부터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비록 산길이 그늘진 숲이라 할지라도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 금새 한 낮의 온도만큼 올라버린 산길을 걷다보면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적셔버리고 물을 금방 마셨는데도 갈증이 생긴다.

임걸령에서 연하천대피소까지는 약 7.3km, 지리산에서 산행 속도는 1시간에 보통 2km를 걷는 것으로 할 때 연하천까지는 세시간 반 이상을 걸어야만 하는 거리, 그 사이엔 반야봉으로 오르는 노루목과, 뱀사골대피소로 내려가는 화개재가 있고, 화개재에서 쉼없이 올라도 1시간 쯤 걸려야 올라갈 수 있는 토끼봉을 오를 땐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바람마져 불어주지 않아서 친구들의 거친 숨소리만 요란하다.

여름산행을 하다보면 다리가 힘들어 보다는 숨이 가파 쉬어 가곤 하는데 이땐 물 한모금 오이 한조각도 자기의 베낭속에 든 것을 꺼내 없애므로써 등에 진 짐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어지는 건 평소에 약삭빠르지 않은 사람들도 산길에선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등산을 할 때 목적지가 가까워 올 수록 베낭의 무게는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나 복영이와 나의 베낭은 오히려 더 무거워져 가는 이유는 힘들어 하는 여자친구들이 낙오되지 않도록 그들의 짐을 덜어 대신 짊어진 때문이다.

연하천 대피소는 50명 밖에 수용할 수 없는 비좁은 곳으로 2004년도 2박3일 종주산행을 할 때 복영이가 산길에 가로 누워있던 주목의 공이에 이마를 찧어 상처를 입은 덕(?)에 대피소 예약이 되어있지 않았음에도 환자라는 구실로 한 자리를 차지하고 밤을 새웠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한 여름 밤이면 산객들이 대피소의 앞마당에서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싶은 보석같은 별들을 헤며 하룻밤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벽소령까지는 약 6km로써 3시간 쯤의 거리지만 성삼재에서 연하천까지 13km를 걸었으니 이때부턴 심신의 피곤함이 밀물처럼 몰려 올 때다.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임에도 다음 물을 구할 수 있는 대피소인 벽소령까지 가기엔 어중간하기 때문인지 많은 산객들이 제각각 이른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숙소를 나설 때 챙겨온 주먹밥이 있었기에 연하천에서는 물만 보충해서 그곳에서 1시간 반쯤 거리(3.5km)에 있는 형제봉까지 와서 바위 그늘에 점심을 폈다. 하루만 하고 하산을 할 산행이라면 갖가지 음식을 싸와 여유롭게 맛을 음미하며 점심을 즐길 수 있으련만 갈길이 먼 우리들에게 있어서 점심이란 오늘의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힘을 축적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일 뿐이었다.

등에 짊어진 짐을 꺼내 뱃속에 넣었을 뿐인데 산길에서 뭘 먹고나면 왜 더 힘이 드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친구들의 일그러진 표정과 거친 숨소리를 조절하면서 형제봉에서 1시간을 더 걸어 벽소령에 도착하니 마치 목적지에 다 온 듯 반갑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선비샘까지는 순탄한 길이나 그곳을 지나고 부터는 지리산 종주코스 중에 제일 난코스가 있다. 이 힘든 코스를 통과하기 위해선 충분한 휴식으로 힘을 축적해야만 했기에 "20분만 쉬어가자"고 했더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은숙과 미경이 긴의자에 길게 눕거나 탁자에 머리를 대고 토막잠에 빠져들고 세화는 등산화를 벗어서 발맛사지를 한다. 등산을 할 때마다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해 주곤하는 복영이가 친구들의 물통을 모두 가지고 대피소 아래에 있는 샘터로 내려가 물을 길러온다. 복영이라고 어찌 힘이 안 들겠는가?





벽소령 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 까지는 직선거리로 6km 남짓, 어떤 이들은 이 코스의 거리를 대략 10km쯤으로 잡곤 한다. 벽소령에서 40분쯤 거리에 있는 선비샘에 이르니 지치거나 목마른 산행객들이 목을 축이거나 앉아서 휴식을 하고 있다.

선비샘엔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지리산의 한 기슭인 덕평마을에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우지 못하여 무식한데다가 얼굴마저 추하게 생겨 사람들로 부터 홀대를 받고 사는 한 노인이 있었다고 한다, 선비처럼 고결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 소원인 이 노인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여인네를 만나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게 되었으나 끝내 소원도 이루지 못한 채 가난한 일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한다. 이 노인이 "내가 죽으면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뜨자 자식들은 유언대로 장례를 치뤘다한다. 이날 이후 지리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저마다 샘터에서 물을 마실 때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합장을 하게 되니 죽어서나마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게 되었다는 전설이 바로 그것이다. 직장 친구와 첫 종주를 하던 해의 이른 새벽에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가 1시간 동안이나 어두운 산 속을 헤마다가 가까스로 선비샘까지 되돌아와 길을 찾았던 일이 있어서 이곳에 올 때마다 그때의 무용담을 늘어놓곤 한다.

선비샘을 출발하여 한참동안 거친 숨 헐떡이며 힘겹게 오르다 보면 시야가 툭 트이는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덕평봉이다. 이곳에서 서면 동북쪽으로 멀리 천왕봉이 바라보이니 그 모습만으로도 어찌나 반가운지 마치 천왕봉에 다 온 착각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바로 앞에 지금껏 왔던 산길보다 훨씬 가파른 칠선봉과 영신봉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기분을 만끽할 여유가 생겨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덕평봉에 이르러 잠깐 쉬는 사이에 쵸콜렛을 꺼내 뜯어먹는 모습이 과자를 먹는 게 아니라 마치 씁쓸한 칡뿌리를 씹는 듯 싶은 미경의 표정을 보며 웃었지만 초행길 산행에 악천고투를 하면서도 친구들한테 미안할까봐 한가닥 내색조차 하지않고 묵묵히 따라와 주는 그가 무척이나 고맙고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산길이 험할수록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일곱선녀가 노닐다가 간다는 칠선봉, 온갖 형태의 기암들과 그 암벽에 당당히 자리잡고 서 있는 늘푸른 노송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풍경을 바라볼 땐 내가 마치 선계에 와 있는 듯 넋을 잃어버리기에 충분하고, 영신봉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면 숨은 턱까지 차 오르는데 이럴 때 말을 시키는 사람들이야말로 얄밉기 그지없다. 이럴 때 쯤이면 하고픈 말이 있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걸었다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아서 계단의 한 중간쯤에 가쁜 숨을 고른 다음에 올라야만 한다. 계단의 끄트머리가 보이는 순간엔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세석대피소가 지척에 있다는 생각에 지칠대로 지친 다리에서 새로운 힘이 불끈 솟아오르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영신봉에 오르고 나면 넓게 트인 세석평전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에 겹겹이 쌓인 피로가 말끔히 씻어내리는 듯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넓다란 세석평전엔 댕기처럼 길게 늘어뜨리며 빨갛게 피어난 산오이풀, 한 여름인데도 탐스럽게 피어난 가을꽃의 대명사인 구절초, 지리산에만 있다는 지리터리풀, 길다란 꽃대 끄트머리에 보라색 꽃무리를 매달고 핀 비비추, 바위틈새마다 뿌리를 박은 채 노랗게 피어난 바위채송화 등 온갖 꽃무리들이 산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야 말로 이 시기가 아니면 또 볼 수 있을까?

새벽부터 시작해서 부지런히 걸어온 탓에 낙오자 없이 목표했던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수많은 사람들이 저녁식사와 밤을 새우기 위한 준비로 여념이 없다. 사실 지금에야 속마음을 털어놓건데 초행자들을 데리고 성삼재에서 세석까지 왔다는 것은 너무 무리한 산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5년동안 지리산 종주를 매년 꼭 한번씩 해 오면서 매번 일출시간에 맞춰서 천왕봉에 올랐지만 한번도 일출다운 일출을 보지 못했던 터라 이번 산행에서 만큼은 꼭 일출을 접하고 싶은 생각에 일출시간을 맞출 수 있는 세석대피소로 목표를 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이 잘 따라와 주고 여유있게 도착해 준 것에 대해 고맙고 다행스러울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둠이 내릴 무렵 대피소 아랫쪽에 있는 샘터로 내려가 간단하게나마 몸을 씻고나니 이대로 아무곳에나 누워도 잠이 잘 올 것만 같다. 밤하늘엔 남쪽에서 북쪽으로 은하수가 선명하게 흐르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초롱초롱한 별들로 수놓아진 풍경이 내 어릴적 모깃불이 피어오르는 고향집 마당 멍석에서 어머님 무릅을 베고 누워 바라보곤 했던 그 밤하늘처럼 정겹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여름날 밤은 산중에서 그렇게 깊어만 가고 내일 새벽 이른 시간에 이틀째 산행을 위해서 숙소에 들어가 잠을 청해야 했다.

산행 첫째날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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