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紅島야 우지마라 (6, 紅島로 가는 길 )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4. 18. 08:34

그저께 해질녘에 만나서 한잔 술로 회포를 풀고,
어제 늦은 아침에 다시 만나서 무안 연꽃방죽,

나와 그녀의 모교현경초등학교,
솔숲이 좋은 홀통 해수욕장, 달이 다섯개나 뜬다는 도리포,

상사화가 피는 함평 해보면의 용천사.......,
그리고 오늘은 새벽 다섯시다.

그녀와 연속 사흘동안에 같은 장소에서 세 번째 만남이
행여 그녀에게 번거로울 일이 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도 없지는 않다.

하지 무렵의 새벽 다섯시쯤이면 날이 환하게 밝았겠지만
벌써 8월 하순이니 아직도 한 시간은 더 있어야만 날이 샐 것이다.

비록, 날씨 때문에 접을 수밖에 없었던 1박 2일의 홍도와 흑산도 여행대신
당일코스라도 홍도에 다녀오겠다는 고집스런 집착,
하루의 수고를 감수함으로써
일상에서 아내의 불만을 삭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홀가분하며 기분좋을 일인가? ^^*

둘이 함께 할 때의 오붓함도 '신혼시절에나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라면
아내가 서운해 할런지는 모르겠다.




언제부턴지 알게 모르게 둘만의 여행길에서 생겨나는 침묵의 시간들,
그 때마다 침묵을 깨뜨려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녀와 함께 할 오늘의 홍도행은
나에게 있어서는 도랑치고 가재잡고, 꿩먹고 알먹고, 누이좋고 매부좋고,
일석이조, 금상첨화가 아니던가? ^^*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한적한 새벽시간,
새벽길을 바쁘게 오가는 차들이 간혹 있었지만
국도 1호선(목포에서 신의주 맞나?)을 혼자서 독차지 하고 가는 느낌은 또 처음이다.
새벽하늘엔 어제 지나간 비구름 무리에서 뒤쳐진 놈들이
밝아오는 새날에 쫓겨감이 억울하기라도 한 듯
실비를 몇 방울씩 뿌리곤 하지만 개는 날씨라서 걱정할 일은 아니다.




한 시간 남짓 걸려서 도착한 목포의 여객선 터미널엔
휴가철이 다 지난 탓인지 생각보다는 한가롭다.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밖으로 나오니

맞은편 식당의 주인양반이식사를 하고 가라 청한다.

그러나 안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댁의 잠에서 덜 깬 듯 싶은 표정도,
콩나물해장국이 아닌 돼지뼈를 넣은 시레기해장국도 썩 탐탁스럽지가 않다.

식사 한 끼 아무렇게 떼우면 어떠랴?
평소같았으면 버릇처럼 투정도 한번쯤 했을 만 한데도
행여 헤프게 보여질까 싶어 묵묵히 입안에서 밥톨을 굴리고 있었던나를
그녀가 눈치채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고무보트가 되었든, 통통배가 되었든, 나룻배가 되었든간에
물 위를 간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쪽빛처럼 곱고 시린 바다위에 하얀파도 일으키며 달린다는 생각만으로도
시원하고 상쾌한 일이다.

그러나, 바다는 잔물결조차 일지않아서 호수처럼 잔잔함에도
밖으로 얼씬도 못하게 문을 잠근 채 목포항을 떠나는 배,
배의 유리창은 하필이면 반투명 비닐로 코팅을 해 놓고서
바깥 풍경조차 제대로 볼 수 없도록 해놓은 이유는 또 무얼까?
차라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도록 아예 커튼을 쳐버리든지......




홍보용 테잎을 켜 놓은 모니터를 보는 것 말고는
아무런 흥미거리도 없는 배 안에서의 두시간 반은,
막연히 '바다위에 떠 있다'라는 밋밋함과 지루함 뿐,
'쾌속선'이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함과 짜릿함같은 것은
단지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이다.
파도라도 높게 일렁거렸다면 흔들거리는 재미라도 있을텐데
잔잔한 바다가 오히려 재미없게 느껴지는 건 또 처음 일이다.

홍도,
목포에서 115km거리에 있는 섬,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170호로 지정되어 있어서
돌 하나 풀 한포기도 마음대로 손을 댈 수 없는 곳,
일몰 때 섬 주위에 있는 바위들이 성분상의 특징으로(규암 및 사암)붉게 보인다 하여
붉은 홍(紅)자를 써서 홍도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섬,



유행가의 '홍도야 우지마라'에서
홍등가에서 몸을 파는 여자 '홍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섬이
아내와 그녀가 내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가지 말라"며, "절대로 갈 수 없노라"며,
"하룻밤만 함께 머물다 가야 한다"며,
옷소매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을 줄을 내 어찌 알았으랴~~!!!

(2004, 9, 9 )


되돌아오는 길을 가까운 나주쪽을 택하지 않고 현경면 소제지에서 현화를 지나
함평쪽의 먼 길을 택했던 것은 내심 두가지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하나는, 내가 살았던 현화에 대한 아무런 기억도 없는 그녀에게
친구들이 살았던 동네가 어디쯤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서다.
노두목 바닷가를 지나오면서
"저 건너편 아스라히 보이는 작은 동네에 맹금, 두석, 영상, 수복이가 살았고,
은숙이네 옛 집이 저기고, 현화 5구는 여기, 3구는 저쪽,
그리고 저쪽 산 밑 동네는 내가 살았던 곳 4구......."



아주 실감나게 설명을 해 줘도 생소할 수밖에 없는 그녀에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내 기억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옛 생각과 옛 풍경 속에
내 스스로를 흥건히 젖게 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열심히 주절거렸다.
이런 내 속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열심히 들어주는 그녀가 고마울 일이다.

또 하나는, 여름의 끝자락에 피어나서 산골짜기 전체를 빨갛게 물들인다는 꽃,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가슴아플 꽃,
잎과 꽃이 평생동안 만나지 못해 애타게 그리워만 한다해서 붙여진 이름 상사화,

그 꽃이 만개했을 때를 맞춰서 그 산골짜기에 꼭 가보고 싶었으나
그곳에 갈 때마다 번번히 때를 맞추지 못해 아쉬워했던 기억들.....
잘 하면 그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녀에게 의향도 묻지 않은 채 그곳으로 향했다.

내가 어릴적에 "산중"이라는 곳에 사시는 집안의 아저씨벌 되는 분들께서
곧 잘 우리집에 오시곤 했다.
아주 가끔씩은 아저씨를 함께 따라왔던 쬐끄마한 아이가 나랑 동갑내기였지만
나 보다 생일이 몇 달 빠른 탓에
어머니의 추상같은 불호령으로 마지못해 형이라 불러야만 했던 억울했던 일도
내 기억속에 아직까지 또렷히 남아있는 그 산중이라는 곳.......

그 "산중"이 함평군 해보면이라는 것을 안 것은
우연히 "용천사"라는 곳에 드라이브를 갔었던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광주의 송정에서 월야를 지나 문장을 막 벗어나면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 이정표대로 좌회전하여 인적하나 없는 산 속 길을 약 7km정도 더 가면
산골짜기 끄트머리쯤에 용 한마리가 하늘을 향해 물을 뿜고 있는 아담한 저수지,
바로 그 저수지 위엔 용천사라는 절이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첩첩히 겹쳐진 산 뿐이니
"해보" 보다는 "산중"이라는 지명이 더 살갑게 느껴지는 곳,
우리집을 다녀가곤 하셨던 아저씨는
지금쯤 이 산 속 양지바른 어드메쯤에 고이 잠들어 계시리라.

세상 모든 일이 바램대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확신 보다는 혹시나 하는 불확실성의 기대를 갖고 왔었던 것이 한편으론 다행스러울 일이다.
해질녘이라서 바쁘게 달려왔던 용천사 계곡으로 가는 길목엔
"꽃무릇 축제 - 9월 10일부터 12일까지"라는 현수막이 우릴 반겨맞을 뿐
꽃 한송이 피어있지 않은 계곡의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은 아쉬움으로 가득하다.

하도 아쉬워서 숲속에 올라가 흙을 헤집거리는 순간
통마늘보다 작은 알맹이들이 깊은 잠에 취한 채 아직도 깨어날 생각조차 않고있다.

이 놈들은 참으로 묘한 놈들이다.

현수막에 써진대로라면 보름쯤 후에 일제히 꽃대를 올리며 꽃을 피워댈 것이다.
그리고 꽃이 진 가을날에 파란싹을 올리고 추운 겨울동안 무성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봄이되어 온갖 생명들이 새 잎을 올릴 때 이 놈들은 잎을 떨구었다가
여름엔 다시 흙속에 몸을 감추는 짓을 반복할 것이다.

이 처럼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꽃무릇,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꽃무릇에 애틋한 이야기로 포장을 하여 상사화라 이름을 부쳤겠지만
꽃 치고는 아주 짜임새가 있거나 썩 아름답게 느껴지지도 않는 이 꽃이
봄에 뿌리를 내려 싹을 올리고 여름과 가을에 꽃을 피우는 다른 생명들에 비해
조금은 특이한 삶을 살아가는 탓에 서글픈 이미지로 기억되는지 모를 일이다.



1년만에 딱 한번 만났다가 헤어져야 하는 견우와 직녀의 별 이야기와
한 몸에 붙어 살면서도 일생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해 이름지어진 상사화의 꽃이야기 중
어느것이 더 슬픈 것인지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꽃은 꽃대로 별은 별대로
사람들의 가슴속에 서로 다른 애틋함으로 곱게 자리메김 되어있으면 될 일이니까.....


하루종일 장대비가 쏟아지던 지난 9월 11일 토요일,
상사화 축제가 열린다던 그날 혼자서 그곳엘 갔었다.
비가 쉼없이 쏟아진 탓에 사람들이 많지가 않아서 좋았지만
양지바른 곳만 상사화 꽃이 듬성듬성 피어있을 뿐
대부분은 이제 막 꽃대를 올리느라 분주한 모습들이다.

서로 때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은
상사화의 잎과 꽃이 그렇고,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또한 그렇고,
그녀와 아내에게 꽃이 핀 풍경을 보여주지 못한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아쉬움 남긴 채 발길을 되돌릴 수 있는 이유는
"언젠가는"이란 불확실성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2004, 9,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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