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공에 쓴 편지'에 해당되는 글 340건

  1. 2007.04.29 12, 철쭉산행과 보성여행
  2. 2007.04.18 11, 紅島야 우지마라 (7, 紅島야 잘 있거라 )

12, 철쭉산행과 보성여행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4. 29. 15:45

( 2005년 5월 06일 금요일 )

짙은 먹구름과 마파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아 마음이 바쁜 아침,
점심 대용으로 김밥을 사 오겠다는 사람은
출발예정시간을 30분이나 넘기고서야 허겁지겁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내심 은근히 짜증도 나지만 겉으로 드러내서 언짢게 할 일은 아니다.

남녘의 산하에 철쭉이 피었다길레
일찌감치 친구 일행과 꽃구경을 겸한 산행을 계획했었으나
연일 화창하던 날이 공교롭게도 오늘같은 날엔 잔뜩 흐려지고
산 밑에 도착하기도 전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연이란 게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라 그리 흔할 일은 아닌데도
실제론 자주 생겨나곤 해서
그럴 때마다 이상한 일이라 여기곤 한다.

어린시절의 경험 중에
맑은 날만 계속되다가도 소풍을 가거나 운동회를 하는 날이면 비가 오곤 해서
적잖이 실망을 하곤 했던 일이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일이 되풀이되곤 하니
하루쯤 편하게 즐기겠다는 인간의 심사에
하늘이 시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장흥에서 이름난 산 중엔
가을 억새의 천관산과 봄의 철쭉으로 유명한 제암산이 있어
사람들은 이른 산행을 마치고서 강진의 마량항이나 보성의 율포 바닷가로 가서
싱싱한 회에 술 한잔씩 하고서 되돌아오곤 한다.



( 장흥의 제암산 정상 )

그러나 장흥쪽으로 철쭉산행을 하다 보면
철쭉군락지는 제암산에서 능선으로 각각 연결되어 있는 사자산(666m)과
군의 경계를 넘어 보성의 일림산에 있음에도
왜 '제암산의 철쭉'으로 알려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 사자산 정상에서 바라본 제암산 정상 ------> 멀리 능선의 제일 높은 암봉이 제암산 정상이다 )

제암산 휴양림에 주차를 해 놓고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행을 시작하여
제암산과 사자산의 갈림길에 이르니
빗줄기가 점차 굵어지고 구름마져 짙게 드리워져서 시야마져 흐릿하다.



( 사자산의 철쭉 ------>건너편으로 보이는능선이 제암산이다.)

그러나 화려하게 피어난 철쭉의 군상들이
구름속에서 빼꼼히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아!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산이나 들에 피어난 꽃들 중에
철쭉이나 진달래만큼 화려하거나
늘 봐도 싫증나지 않은 꽃이 또 있을까 싶은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런지도 모르겠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 때문에
능선에 펼쳐진 철쭉화원은 볼 수 없어 아쉬우나
따가운 햇살에 지친 모습 보다는
비에 촉촉히 젖은 채 활짝 피어있는 자태가
오히려 생동감이 있어서 좋다.



( 사자산의 철쭉 )

비옷을 챙겨갔기에 산행하는데 그리 큰 문제는 없었지만
길이 질퍽거릴 뿐만 아니라 비좁은 산길이 상춘객들로 붐비고,
지금 눈에 보이는 철쭉만으로도 아름답기 그지없어서
철쭉을 보기위해 정상까지 기를 쓰고 올라가는 것은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아
중간쯤에서 잠시 머물다 솔숲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떼우고 하산을 하려는데
내리막 길이 미끄러워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우성들이다.



( 보성 일림산의 철쭉 )

요즈음엔 집 주위나 길 거리에 개량종 철쭉이 형형색색으로 피어나는데도
비가 오는 날임에도 이 처럼 많은 사람들이 산에 핀 철쭉을 보겠다며 몰려드니
인위적인 것 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더 좋아하는 건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인가 보다.

비를 촉촉히 맞으며 제암산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오니
아직도 시간은 한나절이나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두고 지나가지 않듯이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 보성 대한다원의 차밭 풍경 )

일행과 함께 율포쪽으로 한참을 가다가
연두빛 새싹이 한참 돋아나는 차밭에 잠시 들렀다.
오가는 길에 편한 마음으로 차 한잔 사 마시고 지나다녔던 차밭도
수년 전 이곳 향나무 숲길이 어떤 회사 광고의 배경이 된 뒤로부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여 년중 어느때건 끊임없이 사람들로 몰려들면서
이제 얼마후 주차장이 단장되면 입장료를 내고 들락거려야 한다니
인심이 각박해지는 건 시대의 흐름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기야 전국의 유명산을 국립공원이라 지정해 놓고
그 안에 있는 사찰의 사유물을 문화재니 국보니 하며 지정해 주고
사찰이 어디인지 조차 모르고 지나치는 산행객들에게
입장료와 사찰관람료 또는 문화재관람료에 적지않은 주차료까지 받아 챙기는데 비하면
이런 경우는 그래도 시원한 구경거리라도 재공해 주니
훨씬 더 양심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 보성 봇재 차밭 전경 )

차밭을 나와 봇재에 이르니
시야는 흐리지만 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이 율포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해수욕장 소나무숲을 거닐다
바다가 바라보이는 횟집에 들어가니
휴일임에도 비가 와서 그러는지 손님들이 그리 많지않아서
모초롬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농어회와 광어회를 네 사람이 넉넉하게 먹을만큼 시켜
술을 곁들이니 뱃속이 점차 따뜻해지고
마음의 긴장도 풀려서 그러는지 빈 술병이 탁자에 줄을 서고 있다.



( 맑은 날의 사자산의 철쭉)

세사람이 술에 취해 제 발로 걷든 말든
운전을 해야 할 한 녀석은 딱 한잔만 마셔야 한다는,
그리고 어떻게든 차에 태워 집에까지 데리고 와야만 한다는 것 말고는
횟집에 들어가기 전에 각 한병씩만 마시자 했던 약속은
한갖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걸 모를리 없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행여 남들에게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하고 어제 기억을 더듬거릴 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만 마셔야 한다는 것은
내 스스로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무겁고 속이 쓰린데
아내는 아직도 꿈속이다.
이런 날 술국이라도 한그릇 끓여주면 오죽 좋으련만....

어제 기억을 더듬거려 보니
탁자에 세워진 빈 술병을 여덟개까지 샜던 일과
승용차 안에서 오랜만에 목청껏 노랠 불렀던 일만 가물거릴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울 일이다.



(맑은 날의 사자산의 철쭉 )

비가 그치려나 보다.
이 비에 송홧가루가 다 씻겨갔으면 하는 바램이나
아직은 시기상조일 듯 싶다.

숙취로하루종일부대낄 일이 심난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병만 마시는 건데..........

11, 紅島야 우지마라 (7, 紅島야 잘 있거라 )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4. 18. 08:40

목포에서 부터 배 속에 꼼짝없이 갇혔다가

두 시간 반 만에 홍도 선착장에 발을 막 내 딛으니
두 척의 배가 관광을 온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홍도주민들이 자체 운영하는 듯 싶은 작은 유람선은
"이 배는 동굴 속으로 깊숙히 들어갈 수 있다"며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농협에서 운영한다는 좀 더 큰 유람선은
"이 배는 손님들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모실 수 있다"는 방송을 해 대는 통에
선착장이 온통 떠들석하다.



더구나 가관인 것은 어리둥절 해 있던 우리일행에게
횟집의 주인아낙까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아자씨~!!! 관광은 작은 배로 하시는 것이 더 좋당께~~!"라며
유람을 하고 식사를 할 것인지 아니면 식사를 하고 유람을 할 것인지
요리조리 따라다니며 다그치는데,
목포에서 홍도까지 오는 동안에 배 안에서 짖누르고 있었던 꼬라지가 꿈틀거리더니
드디어 발동을 하기 시작한다.

"아따~~! 아줌마~!! 나 정신 좀 차립시다~~!!! 정신없어 죽것네~~!!! 시방~~!!!"
이 정도면 점잖은(?) 신사에게서 교양미가 철철 넘치는 꼬라지가 아닌가?
만약 내 옆에 그녀만 없었더라면 홍도에서 꼬라지 자랑 한 번 걸죽하게 하는 것인디......

어벙한 물주 하나 잡았노라 마음 속으로 쾌제를 부르고있던 아짐씨가
제 집 대문 앞에서 짓으며 달려드는 한 마리의 변견(便犬)에 놀란 듯
멈칫하며 두눈을 휘동그랗게 뜬다.

조금은 지나쳤나 싶은 생각에 "아줌마네 횟집이 어디요?"라고 물으며
"나중에 관광을 마치고 나서 꼭 들릴랑께 먼저 가 계셔라우~!"하며 달래서 보내니
반신반의하면서 뒤돌아서는 아짐씨의 뒷모습이
옛날에 눈물 흘리며 되돌아서던 우리 애인의 뒷모습을 쏙 빼 닮았다. ^^*




(홍도의 풍경)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작은 배를 선택해서 탓던 이유는
횟집 아짐씨에게 조금 지나쳤다는 생각도 물론이려니와
오늘같이 바다가 잔잔할 땐 배멀미 같은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서
구경하는데 있어서는 작은 배가 더 적격일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서 가는 큰 배나 뒤에 따르는 작은 배나
동굴속에 뱃머리를 쑤셔넣는 시늉은 단 한 곳에서 한 번씩 했을 뿐이다.

섬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관광하는 두 시간 남짓은
배에 함께 탄 사람들이 아름다운 섬의 겉모습을 눈으로 훑는 동안에
걸죽한 입담으로 손님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느라 입이 마를 가이드한테
음료수 한 잔쯤 권하는 이도 있을 법 하련만......

어디를 가건 형태를 닮은 이름이 붙여진 바윗돌엔
그것에 걸맞는 이야깃거리가 그럴싸하게 포장되어있게 마련이다.

형제바위, 선녀바위, 망부석, 토끼봉, 거북바위, 코끼리바위......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이라며 들려주는 가이드의 이야기는
누군가가 지어놓은 이야기 줄거리에 살을 겹겹히 붙여놓은 것이겠지만
이 순간 만큼은 잠시나마 세상사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
상상의 세계로 깊숙히 들어가서 전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홍도의 풍경>


홍도(紅島),
기암괴석, 수천년 살아온 듯 싶은 나무들, 맑고 파란 바다, 크고작은 주변의 섬과 동굴들.....
우리들의 고향 가까이에 이 처럼 아름다운 곳이 또 있겠냐 싶어서 더 없이 좋을 일이다.
그러나 홍도 주민외는 철저하게 입산을 통제한다는 말에
바다 보다는 산에 더 관심이 많았던 내 입장에선 아쉬움이 적지가 않다.

한편으론, 그렇게 통제를 하지 않았다면 바위틈에 촘촘히 박혀있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지금쯤 어느 호사스런 주택의 정원에 심겨진 채 시름시름 죽어갔을 게 뻔한 일,
비록 산속엘 들어가보지는 못하더래도
멀리서 바라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스러울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어렵잖게 오갈 수 있는 가까운 곳임에도 참 먼 세월을 건너서 왔다.
또, 어렵사리 온 곳을 두 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만으로 관광을 모두 끝냈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중요한 것을 빠뜨려 놓은 것 같아서 지나왔던 곳을 뒤돌아 보곤 한다.
다시 되돌아온 선착장엔 아까 그 횟집 아짐씨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가 반겨 맞는다.

아짐씨의 끈질기게 기다려 준 성의가 고마워서라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목포로 떠나는 배가 네 시에 있으니 앞으로 남아있는 세 시간 반은
홍도에 온 기념으로 점심 겸 멋지게 한 잔을 해야만 하는 빅 이벤트인 셈이다. ^^*



<홍도의 풍경>

"아줌마~! 목포가는 배 예약해야 하는디........"
"요즘 관광철이 지나서 빈 자리가 많으니께 그런 것은 걱정말고 언능 따라오시랑께~~!"
쓰잘데기 없는 걱정일랑 하지말고 따라나 오라는 듯 아짐씨가 앞장 서 걸으며 하는 말이다.

차광막이 쳐진 횟집마당의 편상에 앉으니 홍도의 쪽빛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농어 한 마리를 시켰더니 소라와 해삼을 썰어서 한 접시를 내 온다.

안주가 있으니 술이 따라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소라 한 점 집어서 겨자 섞은 간장을 듬뿍 찍어 오물오물 씹으니
입 안에서 사르르 녹으며 코끝이 찡하다.

해삼 한 점 초고추장에 듬뿍찍어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으니
달콤새콤함이 혀끝에서 부터 입안 가득 짜르르르 휘감아 돈다.

홍도 온 기념으로 세개의 술잔에 술을 부어 부딪치며 "위하여~~~!!!"를 외치니
세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쪽빛 바다 바라보며 잔을 비우는 그 순간에
뱃속에서 쏴~!하고 뜨거운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함께 와 줘서 고맙노라며 또 한 잔,
같이 있어서 즐겁노라며 또 한 잔,
농어회가 나오자 초고추장에 회를 찍어서 또 한 잔,
누가 만든 주법이던가?

한잔을 마셨으니 세 잔을 마셔야 한다며 또 두잔..........
매운탕에 밥 말아 먹으며 마지막으로 또 한 잔........
이별이 서럽다며 주인댁 아짐씨가 해삼 한 접시를 또 썰어서 오니.....^^*
홍도가 취하고 나도 취하고.....드디어 나와 홍도가 하나가 되었다. ^^*




(홍도의 풍경)

배가 떠날려면 30분이 남았길레 여유있게 나서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매표소에 가서 배표를 살려고 하는데....
"아가씨~! 목포 세장이요~!!!" 하며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는데
"오늘 배 표는 매진입니다.~!!!"

뒤통수에 뭔가 쿵~!하고 내리치더니 하늘에서 별이 무수히 쏟아진다.
"뭐시라고라??????? 시방 뭐시라고 했소????"
"오늘 배 표는 매진이랑께라우~~!!!"
"그럼 어떻혀야 된다요?" 가슴 벌렁거리며 아가씨한테 묻는데
그 아가씨 왈 "내일 가세요~!"라며 단칼에 무 자르듯 한다.
나한테 이 아가씨가 하룻밤을 홍도에서 주무시고 가란다.

"집에서 각시가 눈 빠지게 기다린께로 입석이라도 타고 꼭 나가야 한다"고 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아가씨의 콧방귀 뿐이다.




배표 파는 아가씨의 표정이 어찌나 차갑던지 마셨던 술이 확~!!! 깨는 순간이다.
나는 이 순간 표 파는 아가씨의 어마어마한 권위를 처음으로 실감할 수 있었으며
이 순간 이후론 두눈 똑바로 뜨고 표 파는 아가씨들을 함부로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


아뭏든 여름휴가의 마지막날이고 내일부턴 출근을 해야 하기에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뒤따라 오던 아내와 그녀에게 "배 표가 없어서 오늘은 갈 수가 없다"고 했더니
의외로 담담한 두 사람의 표정에 내가 오히려 당황스러울 일이다.
그리곤 어디론가 사람들 틈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니......
회사엔 전화하면 될 일이라서 내일 아침배로 간다해도 문제는 아니지만
홀몸(?)이 아니라서 난감할 일이었다.



(설명을열심히 하던 안내인이 이 바위 앞에선 입을 꼭 다물었다. "보는 눈이 있으면 느그덜 알아서 생각하세요"라며...그런데 난 도무지 그게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시계를 보니 배가 떠날려면 5분도 채 남지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배에 타고 난 뒤라서 홍도 선착장이 썰물 빠져나간 듯 조용해 졌다.
갑자기 내 신세가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듯 처량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홍도 안 오는 것인디........."
홍도엔 괜히 오자고 했나 싶어서 망막하게 빈 하늘만 쳐다보고 있던 그 순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던 아내가 내게 다가오며 "표를 구했으니 얼른 배있는데로 가자"고 한다.
사색이 되어있던 내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도는데 이젠 그녀가 보이질 않는다.


"그럼 그녀~!, 아니 ㅇㅇ은 어디갔어?"
"ㅇㅇ씨가 횟집 아줌마한테 부탁해서 배표를 구했당께요~~!!!"
위기상황에서 대처 능력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뛰어나던가?
횟집쪽으로 달려가니 그녀가 횟집 아줌마한테 배삯을 지불한 뒤 우리를 향해 오고 있다.

배가 떠날려면 이제 불과 1~2분,
그 순간 만큼은 오직 배를 타야한다는 생각만 머리에 꽉 차 있을 뿐이었다.

횟집 아짐씨만 믿고 예약을 해두지 않았다가 쓰디쓴 낭패를 경험해야 했지만
결국엔 그 아짐씨가 배 표를 구해 줬으니 따지고 보면 그 아짐씨도 약속을 지킨 셈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던 내가 잠시동안 방관을 했던 탓이다.

나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와 아내는 횟집 남정네가 매표소 관리소장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데나 어쨌다나?
아뭏든 홍도에서의 탈출,
여름의 끝자락에서 2박 3일간의 휴가는 그런 스릴속에서 마무릴 해야했다.



(홍도의 풍경과 아내와 그녀, 그리고 나.)


홍도를 다녀온지도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아내와 그녀와 함께 했던 고향 나들이와 홍도여행이
추억속에 멋지게 자리메김 해 놓을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을 일이다.

다만, 홍도에서의 유람선과 목포로 오는 배삯을
본의 아니게그녀의 몫으로 몽땅 떠 넘겨버린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해도
여름은 내년에도 또 온다는 자연불변의 법칙과 확신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짐을 짊어진 채 내년 여름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2004, 9, 9 )

 «이전 1 ··· 160 161 162 163 164 165 166 ··· 1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