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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28 13, 애기사과
  2. 2007.07.28 12, 쵸콜렛과 식당 아주머니

13, 애기사과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8. 12:45

( 2002-02-16 )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겪는 고민거리가 하나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해결책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날만 보내고 맙니다.

따지고 보면 고민거리라 하기조차 대수롭지 않은 것이긴 해도
봄이 오기전에 연례행사처럼 빼놓지 않고 겪는 일이라
적잖은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10여년 전 쯤에 사과를 먹다가
그 속에서 나온 씨를 화분에 심어 싹을 틔워서 잘 키우고
그 이듬해에 애기사과의 접수를 얻어다가 사과나무에 접을 붙여 키우다 보니
비록 분에서 키우긴 했지만 해가 묵은 탓에 밑둥이가 제법 굵어져
모양새는 그럴 듯한 분재가 되어있습니다.

애기사과나무는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따뜻한 기운이 돌면 곧바로 싹을 트고
아주 이른 봄에 벌써 꽃이 피웠다가 다른 꽃들이 피우기 훨씬 전에 꽃이 져버리니
수정할 틈이 없어서 열매를 하나도 맺지 못하고 해를 넘기곤 합니다.

분재에 대해 해안이 있거나 귀한 손님이 오면
자랑도 해 볼 만큼 모양새를 잘 갖춘 분재 몇개가 있으나
주택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온 뒤론
그 분재들때문에 적잖은 문제가 생기곤 했습니다.

밖엔 아직은 봄이 멀었는데도 햇볕 잘드는 베란다가 따뜻한 때문에
봄으로 착각을 하고 이 놈들이 일찍 동면에서 깨어났다가
여름내내 시달림을 받곤 했던 이들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특별히 다른 뾰족한 수도 없어 이들에게 깊은 잠을 더 자게 하려는 심사로
겨울이 끝나 갈 쯤에 아파트 밖으로 내놨다가
하룻밤새에 몇 개 씩이나 한꺼번에 도둑을 맞고 말았습니다.

십여년 이상 마음 붙이고 정성을 쏟고 또 깊은 정이 들었던 놈들,
그 중에서도 아주 잘 생긴 놈들만 골라서 가져갔으니
도둑도 보는 눈은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제 물건 잃은 놈만 욕을 얻어먹는 세상이라서
뉘 탓도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마냥 냉가슴도 앓아보고
몇 날을 쓰린 속 추스리느라 마음고생도 해 봤던 터에
다시 밖으로 내 놓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제 작년 늦은 겨울쯤 경남 매화산을 등산을 할 때
한 남정네가 "개나리와 진달래중에 누가 먼저 꽃을 피우냐?"고 묻자
그 일행들이 개나리가 먼저 피니 진달래가 먼저 피니 하며 우기던 중에
문제를 냈던 사람이 "성질 급한 놈이 먼저 핀다"라고 해서
한참동안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개나리와 진달래 뿐만 아니라 예쁘게 꽃을 피우는 것들은
굳이 열매를 맺지 않고 꽃만 피워줘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해 주지만
그렇지 않은 나무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뭔가는 허전할 수밖에 없는 일이어서
베란다에서 벌써 싹을 틔우려 하는 성질급한 애기사과를 보면서
곱지않은 눈총을 맨날 주면서 내 스스로는 또 다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시합에서는 빠른 사람이 이겨서 기쁠 일이지만
세상살이엔 함께 어우러져 살지를 못하고 앞서서 설치다 보면
따돌림을 당하여 외톨이가 되거나 아니면 뭔가 손해를 보곤 합니다.

온갖 정성 다 들여서 키우는 것은 다른 나무들과 마찬가지인데도
성질 급해서 미리 꽃을 피고 져버리는 저 애기사과는
잠이 부족해서 여름내내 시달리거나
열매를 맺지 못해 제 역할 다 못하는 탓에
잎이 질 때까지 또 다시 곱지않은 눈총만 받을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함께 어우러져 꽃을 피워야만
꽃가루를 서로 나눠 수정하고 열매를 맺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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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쵸콜렛과 식당 아주머니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8. 12:43

( 2002-02-14 )

밥 생각이 별로 없었으나 끼니는 떼워야 할 것 같아서
터덜거리며 식당으로 갔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식사를 하러 온 모든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공손히 하며
식판에 500원짜리 쵸콜렛 한 봉지를 얹어 주십니다.

오늘이 바로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쵸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라고 합니다.
나는 아직도 이 날의 유래는 물론 의미조차 잘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받는 여유로움을 갖고 사는 것도
좋을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평소에 쵸콜렛은 살이 찐다해서
가능한 먹지않으려는 과자 중에 하나라
앞자리에서 식사를 하고있던 동료에게 건네주고 나왔으나
글쎄 이 아주머니가 초콜렛을 두개나 인편으로 보냈습니다.

기왕 줄려거든 직접 건네 줄 일이지
인편으로 보내면서 "다음에 꼭 갚으라"는 말까지 첨부해서 보냈다니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원하지도 않았던 빚을 진 셈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밸런타인데이와 반대로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도 있다고 하던데
행여 그날에 갚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론
식당에 가면 늘 식판에서 눈길 한번 떼지않고
식판에 얹어주는 밥만 다소곳이 먹고 나오곤 해서
"고맙습니다"라는 인사 정도는 하고
밥을 받아 먹을 줄 알라는 메세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주 대수롭잖은 일상적인 일 하나를 가지고
내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떻거나 오늘부터는 식당 갈 일이 꽤나 불편스럽게 생겼습니다.
인사를 하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지만
안하던 짓을 초콜렛 받은 뒤로 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아무런 인사도 하지않는다는 것도 뻔뻔할 일인 것 같습니다.

아침에 회사 버스가 지나가버린 줄도 모르고 기다리다가
택시로 부랴부랴 출근을 했던 일로부터 시작해서
식당의 쵸콜렛까지 몸과 마음이 정신없던 하루였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쫓기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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