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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28 7, 춘란 이야기
  2. 2007.07.28 6, 나무의 생리적인 고찰

7, 춘란 이야기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8. 11:54

(2002-02-01)

내가 귀하게 여기며 키우는 춘란 중에는
紫色(보라빛 색갈)으로 꽃을 피우는 蘭이 있습니다.

이 란은 약 5년전 장모님의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장모님의 친구분께서 내게 떠 맏기듯이 내게 盆 하나를 줘서
별 의미를 두지않고 생각없이 가져다가 심어놓은 蘭입니다.

내가 이 란을 처음 볼 땐
야산에 있던 보통의 난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기에
야산에서 가져와 관상용으로 기르고 있으려니 하고 마음조차 두지 않았었으나
그분께 이 란의 내력에 대해서 듣고 난 다음부터는
왠지 예사롭지가 않게 여겨졌습니다.

이 란은 그분의 바깥어르신 생전인 30여년전에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는데
아직 한번도 꽃을 피워본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쉽게 죽어 없어지지도 않아서
그동안 이사를 몇 번씩이나 다니면서도 버리지 않았다 하시며
"盆을 두개로 나눠서 기르고 있기에 하나를 가져다가 키워보라"며
하나의 盆을 통째로 나에게 주셨던 난입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분의 성의가 고맙고 또 외면할 수가 없어서
그분 댁에 있는 남아있는 란을 분갈이해서 다시 심어주고
가져온 것은 다른 란들과 함께 란대에 올려놨습니다.

그 다음해 겨울무렵 어느날
그분께서 우리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란에서 꽃대가 생겼는데 겨울인데도 곧 필 것 같다"며
꽃 색갈이 여태껏 한번도 보지 못했던 색갈같은데
한번 와서 봐줄수 없냐고 하십니다.

마침 특별한 일도 없었기에 전화를 받자마자 그곳으로 가서
꽃대의 끄트머리에 짙은 자주색 꽃잎을 빼꼼이 내밀고 있는 녀석을 보는 순간
꽃 색갈이 하도 예뻐서 그만 탄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여태껏 사진에서나 봤던 그 紫花가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과
그 귀한 蘭이 내 蘭帶에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당시에 내가 얻어온 난은
그곳에서 이미 병이 들어서 거의 죽기 직전이었는데
내 정성이 통했는지 소생하여 건강한 새 촉을 올려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순간 다른 한편으론
내 눈앞에 있는 녀석과 우리집 란대에 올려져 있는 란이
똑같은 것이라는 말을 듣긴 했어도
행여 다른 종류는 아닐까 하는 의심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작년 가을 우리집에 있는 녀석도
꽃을 피우기 위해서 보라색이 짙은 꽃대를 올려놓은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뻣는지 모릅니다.

춘란이란 놈은 강하기도 하지만 까다롭기도 해서
집에서 꽃을 피우기가 여간해서 쉽지않다는 것을
란을 키워본 사람들은 잘 아는 사실입니다.
꽃대가 올라왔다고 해도 다 꽃을 피워주는 것은 아니고
건조해서 말라버리거나 너무 습해서 썩어버리고
겨울동안 온도관리를 잘 못해서 얼어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제는 꽃대가 생겨난 춘란들을 2월도 시작되어 봄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일찍 꽃을 보기위헤 베란다에서 거실 안으로 들여놓다가
문제의 그 란을 들고 들어오는 순간에 뭔가 심상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태로 쌓아놓은 꽃대를 들쳐보고는 그만 탄식을 내 뿜고 말았습니다.

어렵게 올라온 꽃대,
다른 놈들은 괜찮은데 그놈만 말라 비틀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그동안 쏟은 정성이 작지않았음에 실망이란 말로 다 할수가 없었지만
또 다시 일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암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다가도 기다려야 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채념을 하며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쳐먹습니다.

5년 동안의 키워서
꽃대를 봤다는 것도 대단한 일고
내년엔 하나가 아닌 두개의 꽃대가 올라올 수도 있는 일이라서
쓰린 마음을 다독거립니다.

내가 봄을 기다린 뜻 속에는
그 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들어있긴 했지만
이제 또 다시 그 마음으로 일년동안 정성으로 보살피려 합니다.

다음엔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기에,
아니면 다음엔 더 좋으리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기에,
사람들은 때로는 알면서도 속고
또 인내를 갖고 기다리며 세상을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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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무의 생리적인 고찰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8. 11:52

(2002-01-30)

낮에 소사분제의 가지에 가위질을 하면서
나무의 생리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습니다.

만약에 나무들의 단순하기만 한 생리를 미리 알면
감나무도 그렇고 소사나무도 그렇고 어떤 나무가 되었든
가위로 전정이라는 작업을 통하여
내가 의도하는대로 나무의 모양을 쉽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단순하기만 한 그 기본적인 생리를 모른다면
어떻게 가위질을 해야 하는 것인지
또는 가위질의 의미조차도 모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무 또한 주인을 잘 못 만난 탓에
볼품없는 나무가 되거나 결국엔 수명도 짧아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런 나무들은 가지를 자르면
자르는 쪽으로 반발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톡 튀어나와서 볼품이 없는 가지가 있어
적당한 크기로 놔두고 잘라냈는데
그 이듬해 보니 잘라낸 가지보다 훨씬 더 큰 가지가
잘라낸 방향으로 훌쩍 자라있는 것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 가지를 없애버리고 싶다면 흔적없이 잘라내야 하나
그렇지 않고 가지 밑둥이에 눈이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어김없이 잘라낸 것 보다 더 긴 가지를 뻗고야 맙니다.

그와는 반대로 자르지 않은 가지는 위로 또는 길게 자라지 않고
가지에 붙어 있는 눈마다 새로운 가지가 나와 힘을 분산시키며
가지가 무성하게 되니 길게 키우고 싶지않은 가지는 그냥 그대로 놔 두면 됩니다.

물론 모든 나무들이 다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이 겉으로 나타나는 나무들의 생리는
사람에 비해서 아주 단순하기만 합니다.

사람과 나무를 어떤 형태로든 비교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긴 하나
똑같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로만 단순비교를 해 보면
잘려진 방향으로 반발하는 단순한 생리의 나무처럼
사람도 단순하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나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이 생각처럼 되지않을 때나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고민하고 심난스러울 일들이 훨씬 줄어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꼭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잘 자라고 있던 가지가
어느날 갑자기 말라서 죽어가는 건
또 무슨 이유때문인지 몰라 고민스럽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르면 반발한다'라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을 가지고
나무가 어쩌니 저쩌니 하며 나무에 관해서 제법 아는 듯 하다가
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가지가 죽어버리면 볼품이 없어져 버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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