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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28 1, 춘란에 물을 주며
  2. 2007.07.14 15, 해남의 달마산 2

1, 춘란에 물을 주며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28. 11:41
( 2001년 06월 14일 목요일 )

봄빛이 화창한 날
盆위로 春蘭의 새촉이 뾰족하게 고개를 내밀면
일년동안 애타게 기다린 이가 나를 찾아온 듯
반갑고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녀석들은 게으른 탓인지
봄이 다 가고 여름의 초입에 이르러서야 새촉을 올리곤 해서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곤 합니다.

이처럼 기다림이 지루했던 만큼
한 분에 한촉이 아닌 두 세촉씩 올라오면 좋으련만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분에 한촉씩만 올려 놓는 모습을 보며
녀석들을 향해 아쉬운 듯 눈총을 보내곤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장마가 시작되기 이전까지는
무더위와 과습에 견딜 수 있는 耐性도 갖춰야 할 일이라서
여러 촉이 한꺼번에 올라와 연약하여 시달림을 받는 것 보다는
비록 한촉이지만 튼튼하게 자라는 것이 더 유리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쉬웠던 마음도 추스리곤 합니다.

蘭石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새촉을 바라볼 때마다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지 않고 잠을 자는 듯 정지된 모습이라서
나처럼 성질이 조급한 사람으로선 답답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춘란과 함께 했던 지난 날들 동안
느림보 거북이처럼 더디게 자라는 녀석들을 보면서
이들과 처음 만난 이후 함께하며 지나 온 시간들 속엔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튼튼하게 자라는 당당함과,
연약하지만 잘 버텨내며 견디는 끈기와,
병약한 모습에서 끝내 쓰러지고 마는 안타까움과,
시달림에서 벗어나 차츰 생기를 찾아가는 의연함이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상쾌한 이른 아침에 春蘭에 물을 주는 마음은
지난 해 여름처럼 올 여름의 무더위도 잘 이겨낸 뒤
초가을엔 뾰족히 꽃대를 올리는 녀석들을 미리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로 바라 보는 마음이 정겹습니다.

이제 앞으로 오는 날들 또한
애정어린 나의 보살핌 속에
한 녀석도 도퇴됨이 없이 튼튼하게 잘 자라서
해마다 탐스러운 꽃을 피워주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입니다.

그래야만
"죽더래도 자연에서 죽게 놔둬야 한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놔뒀으면 죽어없어질 녀석들을 집으로 가져와 살려놨다"라는
변명아닌 변명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5, 해남의 달마산

Posted by 虛手(허수)/곽문구 글 - 허공에 쓴 편지 : 2007. 7. 14. 03:26

(2001년 11월 22일 목요일)

두륜산, 흑석산, 달마산은
언제 가도, 어디서 바라봐도좋은 산이지만
나는 해남에 있는 산에 가는 날엔
알게 모르게신경이 곤두서곤한다.

나는 남들한테 내세울만큼 많은 산을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껏 등산을 다녀왔던 산 중에
해남에 있는 산만큼 등산로에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지 않은 산도 없다.

모르긴 해도
행정구역상 관할 구역에 있는 산은
군에서 관리를 하는 걸로 알고있는 나로선
이곳 군수님께서 등산로에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
자연을 홰손하는 짓이라 여기며
있는 것조차 없애버렸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흑석산의 호미동산 천길 낭떠러지에 밧줄하나 메어있질 않고
흑석산은 물론 두륜산 달마산 등 어디에 내 놔도 자랑할만한 산에
이정표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완도에서 해남쪽으로 바라볼 때마다
능선이 예사롭지않고 아름답게 보였던 달마산이었기에
언젠간 꼭 한번은 등산을 하고싶었다.

등산을 즐기는 동료 셋이서
미황사에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절 뒷길을 돌아 어렵지않게 정상의
완도쪽 바다가 보이는 능선(불썬봉 옆)까지
어렵지 않게 올랐다.

비록 한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오르긴 했어도
갑자기 눈앞에 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고
그곳으로 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니
막힌 가슴이 뻥 뚫린 듯 개운하다.

크고작은 바위덩어리가 엉켜있는 이런 곳엔
당연히 이정표가 세워져 있거나
눈에 띌만한 곳에 리본이라도 몇개쯤 메어놓았을텐데
그런 표시마져 눈에 띄지 않아
산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세사람이 한참을 더듬거렸다.

어떤 산이든 대부분의 산길이 능선을 따라 나 있고
이곳에서도 비록 바위덩어리가 엉켜있는 능선이었지만
희미하게나마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도 있어서
망설이지 않고 능선방향으로 진행을 하다보니
가면 갈 수록 암벽과 낭떠러지가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암담하기만 했다.

세사람이 암벽 낭떠러지 길을 더듬거리기를 한 시간쯤 했을까?
뭔가 잘못되었다 싶어 시야가 확 트이는 곳에서 뒤를 돌아보니
능선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곳에서 아직 50m도 채 진행을 못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처음으로 되돌아 나와
능선 반대쪽으로 기웃거리다 보니
바위 몇개를 지나서 아랫쪽으로 확연하게 나있는 산길이 보였다.

그러고 보면 능선으로 나 있던 희미한 흔적은
우리들처럼 길을 헤멨던 사람들의 흔적이 분명했다.
절기상으론 겨울의 초입이라지만
남녘이라서 아직 햇살은 따뜻한데다
절벽을 오르내리느라 마음졸이며 땀을 흘렸던 게 억울하여
목청껏 해남군수를 불러댔다.

되돌아 오는 건 메아리일 뿐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쌓인 감정을 삭히고 싶어 야호를 대신해서

"해남군수님! 회만 드시지 말고 산에 이정표하나 세우시지요~!!!"라외쳐댔지만
낭떠러지 앞엔 아무것도 없어서 메아리조차 되돌아 오지 않았다.

한 시간동안 50m도 채 앞으로 못가고 헤메보긴
내가 등산을 시작한 이래, 또 해발 500m도 채 안 되는 낮은 산에서
이런 낭패를 경험해 보는 것도 처음이지만,
솔직히 그건치욕의 등산역사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손에 낀 장갑은 구멍이 다 뚫리고 어깨엔 힘이 빠져서 벌써 지쳤다.
앞으로 힘들게 간 것보다 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기를 쓰고 길을 잃었던 곳까지 되돌아온 동료가
'등산을 포기하고 하산을 하면 어떻냐기에
가깝지도 않은 곳까지 와서 그냥 내려가기란 너무 아깝다며
동료들을 어렵사리 설득하여 능선 반대쪽으로 향한 산길을 걸었다.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남에게 내 보일만한 유일한 오기가 발동하여
차츰 연무가 끼기 시작해 시야도 별로 트이지않은 풍경을 보며
송신탑이 세워져있는 도솔봉까지 밥먹는 시간만 빼고 네 시간을
앞만보고 걸었다.

하산을 했으나 승용차가 세워져 있는 미황사 주차장까지
걸어서 되돌아가기엔 길이 너무 멀어
인근마을에서 운행하는 택시를 불러서 승용차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왔다.

갈 땐 조수석에 한 친구가 앉아서 재잘거리기라도 하더니만,
오는 길엔 두 사람이 아예 처음부터 뒷자석에 자리를 잡아놓고 코를 곤다.
달마산을 가자고 했었던 장본인이라서
갈 때도 올 때도 인력거꾼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가 고생을 했는데도

다리보다어깨가 더 아프다.

그곳 능선에 이정표 하나만 세워져 있었어도......
해남군수님~!!!

********

달마산에 간지도 벌써 6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도 달마산 옆을 지나갈 때마다

지금쯤 산길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2007, 7,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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